동장군의 기세가 드세다. 온 산하도 하얗게 뒤덮였다.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겨울을 거뜬히 이겨내려면 영양보충을 단단히 해야 할 성싶다. 이왕이면 몸에도 좋은 제철 해산물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요즘 바다에서 난 것을 떠올리면 굴이 으뜸이다. 통통하게 알도 꽉 차서 맛이 좋다. 굴은 역시 남도가 주산지다. 그 가운데 한 곳인 전라남도 완도로 간다. 고금면 항동마을이다. 항동마을은 약산도와 신지도를 마주하고 있다.
마을 선착장이 분주하다. 바다에서 막 건져온 굴에서 갯벌을 씻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양지녘에선 손을 호호 불며 아낙네들이 굴을 까고 있다.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가장 바쁠 때다.
거칠고 힘든 일상이지만 주민들의 입가에는 시종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굴 덕분이다. 그 사이 배 한 척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온다. 갑판에 굴이 가득 차 있다. 굴이 곧바로 작업장(굴막)으로 옮겨진다.
굴막에선 아낙네 네댓 명이 굴을 까고 있다. 사람 키만큼이나 하는 줄에서 굴을 하나씩 떼어내 속살을 발라내고 있다. 조새를 놀리는 솜씨가 능숙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속살만 쏘-옥 빼낸다. 달인의 경지다.
두툼한 껍질 속에 들어앉은 통통한 굴이 먹음직스럽다. 우윳빛을 잔뜩 머금었다. 군침을 흘리는 걸 눈치 챘을까. 한 아낙이 깐 굴 한 알을 권한다. 소주 한 잔도 따라온다. 덥석 받아먹었다. 물컹한 속살을 씹는 맛이 좋다. 육질도 차지다. 바다내음도 묻어난다.
"우리 마을 굴은 좋아. 갯벌에서 자라거든. 남자한테 정말 좋은 것이여. 이것 많이 먹으믄 애도 쑥-쑥 잘 낳는당께. 처녀들한테도 좋아. 피부가 미끌미끌 얼마나 좋은디."길손을 앉혀두고 한바탕 벌이는 아낙네들의 수다가 정겹다.
항동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굴막에서 하루 내내 굴을 깐다. 겨울 동안 되풀이되는 일상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까는 굴의 양은 13㎏ 안팎. 숙련된 이들은 15㎏까지 깐다.
값은 들쭉날쭉하지만 깐 굴은 1㎏당 1만 원에 팔린다. 갯벌만 씻어낸 굴 한 뭉치(3200g)는 8000원에 판다. 김장철이나 명절을 앞두고선 불티나게 팔린다. 가격도 더 받는다.
"공장 하나 없잖아요. 청정지역이고, 물살도 거세서 바닥에 부유물질이 쌓일 틈이 없어요. 그만큼 바다가 깨끗해요. 이 바다에서 자라는 굴인데, 자연산이나 다름없죠. 게다가 우리 마을 굴은 포자를 붙여 키우는 게 아니에요. 자연 상태에서 포자가 붙어서 커요."굴양식을 하는 주민 배상진(42)씨의 말이다.
항동마을 주민들이 연간 생산하는 굴은 500~600톤 정도. 가구당 20여 톤이 넘는 분량이다. 겨울 한 철 많게는 5000만 원에서 적게는 3500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엔간한 농사보다도 훨씬 낫다.
하지만 올해는 굴 작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수확량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초가을 들이닥친 태풍의 영향이다.
"아마 절반은 떠내려갔을 거여. 처음 태풍 피해를 조사할 때는 몰랐는디, 나중에 굴발을 건져 올려본께 밑이 다 잘려나가고 없더랑께. 조사할 때 밑을 잘 봤어야 했는디. 이럴 줄 몰랐제."한 할아버지가 못내 아쉬운 듯 혀를 끌끌 찬다. 겨울바람이 여전히 차갑다.
덧붙이는 글 | * 이돈삼 기자는 전남도청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전남도청에서 발간하는 도정 소식지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