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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굴. 요즘 제 철을 맞았다.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굴. 요즘 제 철을 맞았다. ⓒ 이돈삼

동장군의 기세가 드세다. 온 산하도 하얗게 뒤덮였다.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겨울을 거뜬히 이겨내려면 영양보충을 단단히 해야 할 성싶다. 이왕이면 몸에도 좋은 제철 해산물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요즘 바다에서 난 것을 떠올리면 굴이 으뜸이다. 통통하게 알도 꽉 차서 맛이 좋다. 굴은 역시 남도가 주산지다. 그 가운데 한 곳인 전라남도 완도로 간다. 고금면 항동마을이다. 항동마을은 약산도와 신지도를 마주하고 있다.

마을 선착장이 분주하다. 바다에서 막 건져온 굴에서 갯벌을 씻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양지녘에선 손을 호호 불며 아낙네들이 굴을 까고 있다.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가장 바쁠 때다.

 항동마을 앞 굴 양식장. 배 한 척이 굴을 채취해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다.
항동마을 앞 굴 양식장. 배 한 척이 굴을 채취해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다. ⓒ 이돈삼

 선착장에 도착한 굴 채취선. 갑판에 굴이 가득 실려 있다.
선착장에 도착한 굴 채취선. 갑판에 굴이 가득 실려 있다. ⓒ 이돈삼

거칠고 힘든 일상이지만 주민들의 입가에는 시종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굴 덕분이다. 그 사이 배 한 척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온다. 갑판에 굴이 가득 차 있다. 굴이 곧바로 작업장(굴막)으로 옮겨진다.

굴막에선 아낙네 네댓 명이 굴을 까고 있다. 사람 키만큼이나 하는 줄에서 굴을 하나씩 떼어내 속살을 발라내고 있다. 조새를 놀리는 솜씨가 능숙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속살만 쏘-옥 빼낸다. 달인의 경지다.

두툼한 껍질 속에 들어앉은 통통한 굴이 먹음직스럽다. 우윳빛을 잔뜩 머금었다. 군침을 흘리는 걸 눈치 챘을까. 한 아낙이 깐 굴 한 알을 권한다. 소주 한 잔도 따라온다. 덥석 받아먹었다. 물컹한 속살을 씹는 맛이 좋다. 육질도 차지다. 바다내음도 묻어난다.

"우리 마을 굴은 좋아. 갯벌에서 자라거든. 남자한테 정말 좋은 것이여. 이것 많이 먹으믄 애도 쑥-쑥 잘 낳는당께. 처녀들한테도 좋아. 피부가 미끌미끌 얼마나 좋은디."

길손을 앉혀두고 한바탕 벌이는 아낙네들의 수다가 정겹다.

 굴을 까고 있는 아낙네.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달인 수준이다.
굴을 까고 있는 아낙네.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달인 수준이다. ⓒ 이돈삼

 굴막 앞에서 항동마을 주민들이 굴을 까고 있다. 굴막 안팎이 굴 천지다.
굴막 앞에서 항동마을 주민들이 굴을 까고 있다. 굴막 안팎이 굴 천지다. ⓒ 이돈삼

항동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굴막에서 하루 내내 굴을 깐다. 겨울 동안 되풀이되는 일상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까는 굴의 양은 13㎏ 안팎. 숙련된 이들은 15㎏까지 깐다.

값은 들쭉날쭉하지만 깐 굴은 1㎏당 1만 원에 팔린다. 갯벌만 씻어낸 굴 한 뭉치(3200g)는 8000원에 판다. 김장철이나 명절을 앞두고선 불티나게 팔린다. 가격도 더 받는다.

"공장 하나 없잖아요. 청정지역이고, 물살도 거세서 바닥에 부유물질이 쌓일 틈이 없어요. 그만큼 바다가 깨끗해요. 이 바다에서 자라는 굴인데, 자연산이나 다름없죠. 게다가 우리 마을 굴은 포자를 붙여 키우는 게 아니에요. 자연 상태에서 포자가 붙어서 커요."

굴양식을 하는 주민 배상진(42)씨의 말이다.

 조새로 깐 굴.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조새로 깐 굴.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 이돈삼

 항동마을 전경. 청정 바다를 안마당으로 삼고 있다.
항동마을 전경. 청정 바다를 안마당으로 삼고 있다. ⓒ 이돈삼

항동마을 주민들이 연간 생산하는 굴은 500~600톤 정도. 가구당 20여 톤이 넘는 분량이다. 겨울 한 철 많게는 5000만 원에서 적게는 3500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엔간한 농사보다도 훨씬 낫다.

하지만 올해는 굴 작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수확량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초가을 들이닥친 태풍의 영향이다.

"아마 절반은 떠내려갔을 거여. 처음 태풍 피해를 조사할 때는 몰랐는디, 나중에 굴발을 건져 올려본께 밑이 다 잘려나가고 없더랑께. 조사할 때 밑을 잘 봤어야 했는디. 이럴 줄 몰랐제."

한 할아버지가 못내 아쉬운 듯 혀를 끌끌 찬다. 겨울바람이 여전히 차갑다.

 항동마을 표지석. 마을 입구에 서 있다.
항동마을 표지석. 마을 입구에 서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 이돈삼 기자는 전남도청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전남도청에서 발간하는 도정 소식지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굴#항동마을#석화#바다의우유#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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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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