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지난 12월 초 눈이 온 이래 새벽 기온은 영하 10°c를 오르내렸다.
마당의 눈은 여전히 녹을 줄 모른다.
추위에 부대낀 동백나무의 잎은 추위에 적갈색으로 변했다.
아내도 평생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한다.
다행히 요즘은 밖에서 할 일이 없다.
가끔 비닐하우스 안에 자라는 채소를 뜯거나 눈 덮인 텃밭의 마늘, 양파, 완두콩의 안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일거리이다.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다가 가만히 돌아서서 그 발자국을 보며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밭을 갈 때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어지럽게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라."
가만히 혼자 외우기도 한다.
실내 난방은 화목과 기름 겸용보일러를 사용하는데 예상보다 난방비가 많이 든다.
실내 온도를 20°c로 제한하는 등 나름대로 아끼고 있지만 지난 8월 이사 후 12월20일까지 4개월 동안 들어간 난방비는 월평균 25만원 가량 되는 것 같다. 8월 17일 기름 두 드럼에 52만 8천원, 10월22일 화목 96만원어치를 들였는데, 기름은 지난1월4일까지 두 드럼을 소비했고, 화목은 들인 양의 절반 정도 줄었으니 48만원가량 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화목 난방을 시작했던 10월22일부터 12월 22일까지만 계산하면 난방비는 월평균 약 36만원, 거기에 취사용 가스비를 더하면 40만 원안팎의 연료비가 소요된 것으로 계산된다. 실내 면적이 방3 거실 주방 을 합해 30평인데 어느 곳도 잠글 수 없는 형편이긴 한데 어떻든 난방비는 적잖은 부담이 되고있다.
앞으로 더 심한 추위가 예상되느니 만큼 겨울 한 철을 넘기는데 연료비가 얼마나 들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방안에서 스위치만 올리면 해결되던 도시 난방에 비해 농촌의 난방은 훨씬 불편하다. 물론 기름으로 난방을 하면 실내에서 모든 작동이 가능하지만 시각적으로 쑥쑥 줄어드는 기름의 양을 확인하면서도 기름을 고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의 형편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주머니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난방비 절약차원에서 주로 화목을 피우는데 하루에 몇 번씩 들락거리며 화목을 넣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고 말았다. 한 낮에야 바람도 쏘일 겸 나가보는 일도 재미있지만 매일 새벽 추위 속에서 화목을 챙기는 솔직히 귀찮을 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 혼자 추위에서 잠간 수고를 하면 온 가족이 몇 시간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니 멈출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집을 지으면서 추운 계절에는 실내 공기를 빠른 시간에 덥힐 수 있는 벽난로를 설치했는데 요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벽난로의 타는 불꽃이 주는 훈훈함도 그렇지만 거실 창가에 앉아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며 그야말로 한가하게 노변정담(爐邊情談)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도시에서 찾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고구마 몇 개를 넣고 보면 익어가면서 풍기는 타는 듯 하면서도 시골스러운 구수한 냄새가 아련한 추억을 현실로 끌어오는 것 같고, 거기에 잘 익은 고구마를 이손 저손으로 옮겨가면서 먹노라면 잠시 난방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좋은 점이라고 하겠다.
이곳은 도시처럼 영화관이나 예쁜 조명의 카페는 없다.
가까운 곳에 맥주 한 잔 기우릴 호프집도 없고 미장원이나 목욕탕도 차를 몰아야만 가는 곳이다.
그러나 눈 쌓인 마당, 그 마당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밖에 나가면 상큼하고 청정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하는 곳이다.
옆 산의 소나무, 겨울 추위를 이기고 눈 속에서도 의연한 푸른 마늘을 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곳이다.
해질 무렵에 앞 집 굴뚝에서 솟아나는 연기에는 매콤한 나무 타는 냄새가 풍기는 곳이다.
밤이면 청청한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문명에서 멀어진 조금은 원시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광주에서 날마다 이곳을 왕복했지만 이제는 차를 운행할 일이 적기에 한 번 기름을 넣으면 거의 한 달을 버틸 수 있다.
한 달 기름 값이 10만원 꼴인데 예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전기료는 6만원 내외로 광주 살 때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수도요금은 15,000원 정도인데 광주의 4분의 1수준으로 이라고 한다. 부과되는 하수도 요금도 없지만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에게 어머니와 세 식구가 식비와 난방비를 합하여 기초 생활비가 도시 생활에 비해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채소는 거의 하우스에 기르는 것으로 자급자족하고 가끔 과일과 생선이나 사먹는 편이라 도시에 비해 장보는 횟수가 줄었다고만 한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생활비가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귀촌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 혹은 자치 단체로부터 금적적인 지원은 말할 것 없고 친절한 환영의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농가 주택을 짓는 과정에서도 까다로운 절차와 세금을 따지기만 했다.
내가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요구를 한다고 해도 나처럼 전원생활을 겸한 귀촌인들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었다. 귀촌에 도움이 안 되는 정부, 내 것 없었으면 귀촌의 뜻을 이루기 어려운 나라였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생각한다. 자치단체의 저리 융자도 빚일 진데 그런 빚 없이 산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기 때문이다.
춥다.
숙지원의 오늘 아침 8시 기온은 영하 12°c였다.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또 기온이 내려갈지는 모를 일이다.
추운 날임에도 바깥기온이 오르는 오후 두세 시쯤 운동을 다녀왔다.
마을에서 광주광역시 경계까지 왕복 4.4km가 되는 거리인데 집에서 가는 길을 북풍을 맞는 완만한 오르막길이지만 오는 길은 바람을 등지는 내리막길이이고 차량 통행도 많지 않아 호젓하여 좋다. 아내와 나의 보통 걸음으로 소요 시간은 50분 정도 된다.
예측 불가능한 정치.
양극화로 인해 어려운 서민 경제.
생존을 위해서는 개인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하는 현실이다.
계사년 한해를 보낸 후 어떤 평가와 반성이 따를지는 모른다.
모름지기 내 발자국이 어지럽지 않게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