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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직 남녀차별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가족 안에서는 '남아선호사상'이 많이 옅어졌습니다. 우리집은 아들 둘, 딸 하나입니다. 엇그제 초등학교 입학을 한 것 같은데 큰 아이는 올해 중3이 됩니다. 막둥이도 다섯, 여섯살 정도 밖에 안 된 것 같은데 6학년이 됩니다. 세월이 유수(流水)같다고 했는데 갈수록 실감납니다.

어떤 집은 아들만, 어떤 집은 딸만 있습니다. 이런 집은 아들 키우는 재미와 딸 키우는 재미를 잘 모릅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이 얼마나 서로 다른지도 잘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아들과 딸을 모두 둔 우리집은 아들과 딸 키우는 재미 그리고 얼마나 다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들과 딸을 모두 둔 부모들은 아마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아들보다는 딸 키우는 재미가 큽니다.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딸은 우선 자기가 하루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다 말합니다. 한 마디로 "재잘재잘"입니다. 사춘기로 접어들 나이인데 다 말하는 것을 보니 아직 사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춘기때 숨길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직 사춘기가 아닌가요. 재잘재잘 거리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합니다.
아직 사춘기가 아닌가요. 재잘재잘 거리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합니다. ⓒ 김동수

"아빠 오늘 000선생님이 칭찬해주셔서."
"그래 무슨 일로?" 

"내가 친구를 도와주었고, 청소를 잘했어."
"힘든 친구가 있으면 함께 해야지."
"아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데."
"000가 2층에서 떨어졌어요."

"뭐라고? 그래 많이 다쳤니?"
"119가 와서 병원으로 데려갔어요."
"혹시?"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것(자살시도)은 아니에요. 창틀에서 놀다가 그만 떨어졌어요. 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딸 아이를 통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다 알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누가 다쳤고, 아파서 병원에 갔고, 누구는 선생님께 혼이 났다는 말까지. 정말 비밀이 없습니다. 큰 아이는 조금 다릅니다. 아들이라 그런지 갈수록 말이 적습니다.

"학교 다녀왔어요."
"응?"
"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학원 가셨지."

"체헌이는 아직 학교에서 오지 않았어요."
"아직 오지 않았네."

 조금씩 아빠를 의식하기 시작한 큰 아이
조금씩 아빠를 의식하기 시작한 큰 아이 ⓒ 김동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조금 서먹한 느낌까지 듭니다. 다가가려면 조금 반발쯤 뒤로 물러나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조금씩 독립해가는 생각까지 듭니다. 막둥이는 아직도 아빠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잘 때마다 아빠 손을 꼭 잡고 잡니다.

"아빠!"
"왜 오늘 아빠하고 같이 자고 싶어요."
"오늘만?"
"아니 내일도."
"아니지. 너는 만날 아빠하고 같이 자잖아."

"아빠?"
"왜?"
"오늘 영어 방과후 안 가면 안 돼?"
"아빠는 네가 안가고 깊어면 안가도 된다고 생각해. 문제는 엄마야."

"맞아요. 엄마는 만날 가라고해요."

 아빠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둥이. 아직도 다섯살 처럼 보입니다
아빠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둥이. 아직도 다섯살 처럼 보입니다 ⓒ 김동수

겨울방학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만 아침일찍 영어 방과후 학습때문에 놀지를 못하는 막둥이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영어 자체가 싫은데 그것도 아침일찍 가야하니. 솔직히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보내니 어쩔 수 없지요. 정말 공부 안하고 하루 종일 놀고 싶은 만큼 노는 아이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딸은 재잘재잘하니 좋습니다. 그럼 아들이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목욕탕입니다.

"인헌이 아빠 등 좀 밀어줘."
"등밀어 드릴 때마다 힘들어요."
"당연히 힘들지. 아빠는 너하고 막둥이까지 밀면 팔에 힘이 다 빠진다."
"체헌이는 잘 안 밀잖아요."

"아직 어리잖아. 너는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다."
"체헌이도 밀어달라고 하세요."
"막둥이도 아빠 등밀어."
"형아가 방금 밀었잖아요."
"형아가 밀었으니까? 너도 좀 밀어."
"아빠 내가 등 잘 밀죠."
"야 막둥이 팔에 힘이 많이 붙었네. 조금 있으면 형아만큼 힘이 생기겠어."


경상도 지방에는 등밀이 기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너나 할 것이 다 미니까. 조금 꺼림칙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어쩔 수 없이 밀었지만 이제 중학교 3학년쯤 되니 등밀이 기계가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밀어줍니다. 팔에 힘도 많이 생겼습니다. 등밀어 주는 아들들, 가슴이 뿌듯합니다. 아이셋 키우는 재미가 갈수록 좋습니다. 요즘 아이들을 적게 낳는데 낳고 키워보면 괜찮습니다.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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