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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새벽의 용산참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4년이 흘러도 그 시간에 묶여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평범한 주부는 '거리의 시위자'가 됐고, 중국집 사장은' 테러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돌아왔다. 4주기를 맞아 <오마이뉴스>는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의 실제를 살펴본다. 두번째 기획으로 개발 중단으로 철거촌이 된 경기도 김포의 신곡6지구를 다녀왔다. [편집자말]
14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995번지 일대. 마을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공장 자재와 막걸리병, 박스, 잡다한 쓰레기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창문이 깨진 집, 2층으로 올라가는 난간이 부서진 집, 대문이 없는 집 등 형체를 알 수 없는 주택들이 눈에 띄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Merry Christmas!' 웃는 얼굴이 그려진 벽화는 한때 이곳도 사람들로 흥청거린 마을이었다는 것을 짐작게 했다.

"너무 칙칙하니까 산뜻하게 해준다고 학생들이 찾아와 그린 거예요."

전국철거민연합 신곡6지구 상공(상가·공장) 철거대책위 사무소에서 만난 조규승(58) 위원장은 벽화가 그려진 이유를 씁쓸하게 설명했다. 한때 공장과 상가들로 활기를 띠던 이곳은 지난 2007년 도시 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2008년 봄 철거가 진행됐다.

하지만 시행사인 (주)새날의 자금난으로 4개월 만에 철거는 중단됐다. 그 후 4년 가까이 개발이 중단된 상태에서 (주)새날은 부도를 맞았고 지난해 8월, 김포시는 신곡6지구를 개발지구에서 해제했다. 50만6976제곱미터 부지에 3900여 세대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철거촌으로 변했다.

직원 5명·월 매출 3000만 원이던 공장장... 이제는 부인과 단 둘이 남아

 14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995 번지 일대 전경. 뼈대만 남은 공장들이 버려져 있다.
14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995 번지 일대 전경. 뼈대만 남은 공장들이 버려져 있다. ⓒ 강민수

30년 넘게 기름 밥을 먹어온 조규승 위원장은 2005년 이곳에 자동차 부품 업체, '세신정공'을 세웠다. 하지만 철거가 진행되고 공장 주변 환경이 나빠지면서 사업은 기울었다. 월매출 3000만 원이던 공장은 이제는 월 500~600만 원 하는 규모로 줄었다. 자잿값 등을 빼면 그의 손에 돌아가는 돈은 얼마 안 된다.

 조규승 신곡6지구 상공 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30년 째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던 그는 2005년 신곡리에 공장을 세웠지만 2년 만에 개발로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조규승 신곡6지구 상공 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30년 째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던 그는 2005년 신곡리에 공장을 세웠지만 2년 만에 개발로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 강민수
"원래는 국내 판매용이 아니라 두바이나 홍콩 쪽에 수출하던 회사였어요. 1년에 한 번, 현지 실사팀이 나오잖아요. 와서 휑해진 공장을 보더니 이사 가든지, 아니면 계약을 포기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사를 할 상황이 못 돼서 조금만 기다려보자 했는데 거래가 끊겼어요. 밥줄이 끊긴 거죠."

그의 공장 안에 들어서니 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지잉~'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 옆에서 그의 아내가 완성된 부품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공장 사정이 어려워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현재는 부부 내외가 공장을 지키고 있다.

그와 함께 수십 명의 공장 세입자들이 전철연 신곡6지구 상공 철거대책위를 이뤘지만, 하나둘 떠나고 지금은 열 명이 남았다. 금속에 그림이나 글을 새기는 사출 공장, 비닐 포장지 제조 업체, 화학 약품 처리 공장, 실외 인테리어 공장 등 업종은 다양했다. 남은 이들은 철거로 입은 피해 영업 보상비를 원한다. 또 개발이 재개된다면 인근에 임시 공장단지를 조성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철거로 남은 건설폐기물 곳곳에 방치돼

 14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김포의 신곡리 995번지 일대. 마을 곳곳의 집들은 잡다한 쓰레기들로 쌓여있다.
14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김포의 신곡리 995번지 일대. 마을 곳곳의 집들은 잡다한 쓰레기들로 쌓여있다. ⓒ 강민수

 금속 사출 작업을 하던 공장의 내부. 기계들은 모두 사라지고 공장 기구와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금속 사출 작업을 하던 공장의 내부. 기계들은 모두 사라지고 공장 기구와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 강민수

조 위원장의 안내로 신곡6지구 일대를 둘러봤다. 눈 쌓인 곳은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철거로 남은 건설폐기물들은 조선시대의 왕릉처럼 웅장하게 쌓였다. 곳곳에 쌓인 건설자재 더미에는 갈대와 앙상한 나무들이 자라 있었다.

2미터 높이의 갈대 숲을 지날 때 야생동물의 빠른 움직임이 포착됐다. 늑대가 나타난 줄 알고 놀랐지만, 야생 노루였다. 지리산 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 신곡6지구에 나타난 것이다. 일대를 둘러보던 조 위원장은 한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무가 밤나무인데, (철거가 있기 전에는) 가족들끼리 밤도 줍고 그랬죠. 근데 이제는 밤이 열리는지도 모르겠네요. 밤 주울 여유도 없고…. 투쟁 시작하고 정서가 메말랐죠."

개발이 시작된 이후 흉흉한 일도 벌어졌다. 사무실 인근의 한 건물에서 2010년과 2011년, 연달아 두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신곡리와는 전혀 연고가 없는 이들이 마지막 누울 자리를 찾아 이곳까지 흘러온 것이다. 한 사람은 차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한 사람은 목매달아 숨졌다.

이곳에는 좀도둑도 많다. 공장에 남은 구리, 철 등을 떼어가는 이들이다. 차를 가지고 와 야밤에 한가득 싣고 간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공장에서는 도난을 막기 위해 '지킴이용' 개를 한 두 마리씩 키우고 있다.

포기할 수 없는 노른자위 땅..."올해 개발 재개될 수도"

 철거가 진행되다만 한 공장의 외벽.
철거가 진행되다만 한 공장의 외벽. ⓒ 강민수

신곡6지구는 서울의 서쪽 끝과 닿아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서울과 김포를 잇는 김포아라대교로 연결되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도 근접해 있다. 9호선 개화역과 5호선 송정역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고 올해에는 김포 지하철이 착공될 예정이다. 신곡6지구는 바로 노른자위 땅이었다. 때문에 시행사 부도로 개발이 중단됐지만, 시행사의 채권단은 신곡6지구 개발을 재개할 예정이다. 노른자위 땅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투자한 금액을 포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김포시청 도시개발과 관계자는 "이대로 방치하면 세입자에게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시는 채권단에게 사업추진을 독려하고 있다"며 "채권단 측에서는 올해 상반기 내에는 주민제안을 통해서 개발 사업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개발이 재개된다면 4년 넘게 버텨온 이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막무가내식 철거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조직국장은 "김포시청은 개발 승인자로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며 "감당할 수 없는 개발을 진행하다 결국 세입자들을 버려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국장은 "세입자들은 가져야 할 자신의 기본권을 찾기 위한 지난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며 "다시 개발이 진행된다면 무조건 밀어붙이는 식이 아닌 '선조치 후철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건너편에 있는 고층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흉흉한 신곡6지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2차선 도로를 하나 두고 극과 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조규승 위원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밤에 있어 볼래요? 얼마나 무서운지. 아침마다 출근하지만 사실 오기 싫어요. 누구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변해버린 이곳, 보기도 싫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먹고 살아야죠."


#신곡6지구#전국철거민연합#김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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