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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사생대회 있는 날 내일은 절대루 늦지 마라 하나가 늦으면 모두가 늦게 입장하게 된다. 신신당부하고 동물원 앞에 몇 시에 모이라 하면 늦은 놈이 있다.

화가 나서 엎드려뻗쳐 시키다 보면 끝내 말하지 않지만 중풍으로 쓰러진 제 어미 죽 끓여 떠먹여주고 기저귀 갈아 채워 주다 늦은 놈이 있다. 절대루라는 말이 정말로 우습다.'

이상은 윤재철 시인의 '절대루'라는 시입니다. 저는 이 시를 처음 접하는 순간, 콧등이 시큰한 것도 모자라 그만 눈물까지 송골송골 솟았습니다. 이 시의 제목은 사실 잘못되었습니다. 왜냐면 절대루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를 나타내는 '절대로'의 오기인 때문이죠.

한데 배울 만치 배웠다는 분이 이런 '실수'를 한 연유는 아마도 발음적으로 강조코자 의도적으로 그리 썼지 싶습니다. 아무튼 이 시를 보건대 주인공은 아마도 학교 선생님이 아닐까 싶네요. 이 시를 앞세운 건 다 까닭이 있어서입니다.

생후 첫돌 무렵에 어머니를 여의고 마치 심청이 모양으로 홀아버지와 애면글면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뿐인 이 아들보다는 술을 더 사랑하신 아버지로 말미암아 초등학교조차 겨우 마치고 소년가장이 되었지요.

퍽이나 가난했던 아버지께선 운명하실 때까지 줄곧 남의 집에서 세를 사셨습니다. 따라서 제가 학교에 다닐 적에도 친구 내지 급우 한 명을 집에 데리고 온다는 건 시쳇말로 '쪽 팔려서' 차마 할 수 없는 영역이었지요.

집에 데리고 와봤자 다 쓰러져가는 셋방살이의 그 참담함에 더하여 새벽이면 시베리아처럼 차갑게 식어버리는 구들장을 뜨겁게 하기 위한 부엌의 장작더미 밖엔 더 보여줄 게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저 빈곤은 대를 잇는 것이라 했던가요?

아버지께서 유산은커녕 빚만 남기시고 훌쩍 저 세상으로 가시고 난 뒤에도 저는 여전히 가난의 첩첩산중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 한 까닭으로 말미암아 비정규직이란 '협공'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 역시 남의 집입니다. 이런 때문에 아이들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저의 집에 제 친구를 데리고 온 '역사'가 없었지요. 이러한 어떤 금기조항을 처음으로 깬 게, 바로 지난주에 저의 집을 찾은 아들의 친구입니다.

열흘 전 아들이 스노보드를 타다 다쳐 왼쪽 팔이 골절되었습니다. 서울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난 뒤 요양 차 집에 와 있던 아들을 병문안 온 것이었죠. "안녕하세요?" "아~! 우리 아들의 고교동창인 그 절친?"

"네, 처음 와 보네요." "그렇군. 난 야근이라서 나가야 하니 놀다 가게." "네, 잘 다녀오십시오." 말은 그리 했지만 현관을 나서면서 제 맘은 많이 불편했습니다.

거실에 위치한 연탄난로입니다.  우리 가족을 동사에서 구해주는 고마운 친구죠!
▲ 거실에 위치한 연탄난로입니다. 우리 가족을 동사에서 구해주는 고마운 친구죠!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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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거실의 한가운데 위치한 연탄난로가 초라했고, 또한 연일 계속되는 혹한으로 인해 제때 치우질 않아 현관 밖 마당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연탄재의 잔해들 모습 역시도 결국엔 제 마음을 마치 방향타조차 없이 풍랑 속을 항해하고 있는 배처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었죠.

그렇지만 저는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그랬던 저의 옹졸함을 에둘러 수정했습니다. 비록 여전히 못 살아서 올해도 겨울 난방은 변함없이 연탄이란 땔감으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연탄은 가격도 착할 뿐만 아니라 잉걸불이 되면 우리 식구의 포근한 겨울잠까지를 거뜬히 담보하기 때문이죠.

연탄 한 장이 우리 가족의 겨울잠을 책임지는 날의 종착역이 언제일지는 사실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위에서 인용한 '절대루'라는 시의 내용처럼 매사를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긍정하고 때론 능히 수용까지 하는 마인드의 견지만큼은 앞으로도 버리지 않을 거란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없음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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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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