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최근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인사·노무 관련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마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집중기획 '헌법 위의 이마트'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
"조건 없이 호의를 베풀라 : 상대는 빚을 진 느낌으로 호감을 갖게 된다.""영양가 있는 정보를 주라 : 그만큼 돌아온다."신세계 그룹 이마트의 직원 교육자료인 <인사파트장 직무 기본과정>에 나오는 '인맥 네트워킹(Networking) 가이드라인'의 일부 내용이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상대가 관공서 직원이라면? 자칫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관-경 유착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오마이뉴스>가 확보한 이마트 내부 자료들에는 이런 아슬아슬함을 보여주는 내용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고용노동부 내부자료인 <노사관계 일일상황> 문건이 정기적으로 이마트 인사담당기업문화팀 팀장에게 보내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자료는 국회로도 잘 보내지 않는 것이다.
2011년 7월 2일 이마트 탄현점에서 발생한 사고 처리 과정에 대한 이마트 내부 자료는 이마트는 평소 관공서를 어떻게 관리해왔으며, 둘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시로 올라오는 탄현점 사망사고 정보 보고2011년 7월 2일 새벽 4시10분경 이마트 탄현점 기계실에서 터보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던 인부 네 명이 냉매가스 유출로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냉동기를 설치한 트레인코리아의 직원 1명과 트레인코리아의 하청업체인 오륜이엔지 사장과 직원 2명이었다. 이 사건은 사망자 중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서울시립대생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었다.
사건이 터지자 이마트는 즉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발동했다. 수많은 현장 보고가 이마트 본사로 올라갔다. 보고 내용에는 매장 상황은 물론 노동부와 경찰 동향, 분향소를 비롯한 유족 동향, 수사 상황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사고 이틀 후인 4일 일산점장은 "금일 파악된 정보를 다음과 같이 보고 드립니다"라며 본사에 이메일을 띄웠다.
7. 정치권 등 점포 방문시 과격하게 막지말고 "이마트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관에서도 지속적으로 달래고 안정화 시키는 활동을 진행중이며, 별도 정보관을 배치중이다.8. 금일 오후 서장이 트레인코리아에 대해 구속수사 및 원칙수사를 지시하였으며, 민주당 및 민노당의 정치 이슈화를 최대한 차단토록 할 예정이며, 여러 부분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관심을 너무 많이 받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정보의 '화자(話者)'가 메일을 띄우는 일산점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어디선가 "파악된 정보"를 나열한 것이다.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서장"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으로 판단할 때, 경찰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일산점장은 2011년 7월 11일 작성한 보고 메일에서도 "금일은 말씀하신 경찰서 내용을 정리 하였습니다"라며 접촉한 일산경찰서 관계자의 이름을 적은 후 "- 탄현점 집회시 유족들이 영업방해 등 행동에 대해서는 증거를 수집 향후 필요시 고발 등 활용"이라고 보고했다.
대응 방안을 조언하고 코치하는 경찰과 노동부
고용노동부와의 관계는 좀 더 직접적이다. 이마트 본사의 강아무개 파트장은 2011년 7월 11일 '탄현점 관련 고용노동부 동향'이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강 파트장은 고용노동부 고양지청 김아무개 과장이 "이마트가 유가족과 직접 협상에 나서면 안되며, 트레인코리아를 앞세워 보상케 하고, 오륜이엔지에서 이마트에 자꾸 뭔가를 기대한다면 포기할 수 있도록 트레인에서 보상 받으라는 식으로 최소 3차례 정도는 실망감을 안겨주고, 마지막에 도의적으로나마 장례식 비용 정도는 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함"이라고 전했다.
고양지청의 한 근로감독관도 "본인은 산업안전 감독관의 오랜 경험을 해보았으나, 금번 중대재해는 발주처에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된 사항이며, 혹시 이마트 대표자 불구속기소 시에는 적극적으로 이마트 책임이 없음을 법적으로 대응하여 빠져나와야 함"이라고 말했다고 강 파트장은 보고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고양지청의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사항도 보고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 금일 이마트 사고조사 담당 감독관인 이◯◯ 팀장이 사표를 제출하는 사건이 있었음.→ 원인은 지청장과 ◯◯◯◯과장의 일관되지 않은 명령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에 지청장이 이마트 부분에 대한 무리한 형사처벌(지청장 : 이마트 대표 불구속 기소)를 지시하자 말도 안되는 명령으로 판단하여 이에 의견 충돌 있었음. (이◯◯ 팀장 주변인의 만류로 정신과 진료 후 6개월 진단서 제출 및 병가 신청 후 귀가)고양지청 팀장, "이 사람이면 백전백승"이라며 노무사까지 소개
고양지청 내부에서 벌어지는 지청장과 하급자의 의견 차이 상황은 다른 보고에서도 확인이 된다. 사흘 후인 14일 본사 인사담당기업문화팀 이아무개 과장이 작성한 이메일에서도 "고양지청장은 지속적으로 대표이사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고 있으며, 지청 내 김◯◯ ◯◯◯◯과장 등의 경우 아니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고양지청 관계자는 아예 이 사안을 놓고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다투게 될지도 모를 노무사까지 이마트에 소개시켜줬다. 강아무개 파트장은 '[탄현점] 7월 13일자 동향입니다'라는 메일에서 "◯◯◯ 팀장의 얘기로는 ◯◯◯을 노무사로 선임하면 백전백승이라고 장담"했다며 이렇게 보고했다.
5. 노무사 선임 관련- 현재 노동부 고양지청 △△△△과 ◯◯◯ 팀장이 노동부 본청 소송의 전문 노무사를 ◯◯◯ 파트장께 소개하였으며 본사에서도 대상자들을 물색중임.(◯◯◯ 팀장 추천인)- 소속 : 법무법인 ◯◯ 공동대표 ◯◯◯ 산업안전 전문 노무사- 이력 : 노동부 본청 △△△△과장- tip : ◯◯◯ 팀장의 얘기로는 ◯◯◯을 노무사로 선임하면 백전백승이라고 장담함.이 보고 메일에 등장하는 노무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마트와 계약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 결과는?... 이마트, 벌금 100만원<오마이뉴스>는 2011년 당시 고양지청장에게 사고 조사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는 "대형사고가 났기 때문에 이것저것 조사해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대표이사 등 사측의 책임 여부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었다"고 답했다. 예산이나 시설 등 이마트 본사 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무 과장과 판단이 명확히 갈렸던 것은 아니라며 "법상으로도 이마트 점장 차원에서 책임 묻는 걸로 하면 크게 무리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사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도중인 2011년 7월 20일 다른 지청으로 발령났다.
지청장의 '무리한 형사처벌'에 반발성 병가를 냈다고 보고되어 있는 이OO 팀장에게도 연락했다. 그는 이마트 내부 보고 내용을 부인하면서 "근로감독 규정에 따라 (이마트, 트레인코리아 등 관련업체) 전부 다 혐의를 두고 조사해 처벌하도록 되어 있는데, 누군가를 빼주는 일을 어떻게 감당하냐"며 "후임감독관이 다 조사해서 처리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마트 탄현점 사건에서 이마트의 결말은 어땠을까? 당시 시민단체인 노동건강연대는 탄현점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현행 법상 이마트 본사를 고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2011년 10월 25일자로 탄현점장에게 구약식기소로 벌금 100만원을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