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최근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인사·노무 관련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마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집중기획 '헌법 위의 이마트'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
전수찬 이마트 노동조합 위원장이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는 신세계 그룹 이마트에서 노조를 세웠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마트가 사측의 일방적인 입장으로 사내 여론을 조작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서 당연히 짤릴 짓을 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하라며, 구체적인 입소문 문구까지 내린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신세계 그룹과 이마트가 표방하는 '윤리경영'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로, 도덕적 비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 인사담당기업문화팀 이아무개 과장은 지난해 11월 21일 오전 9시 39분 각 지점 점장 및 인사, 지원팀 간부 42명에게 '전◯◯ 징계해직 관련 입소문 자료'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오마이뉴스>는 이 메일을 입수했다. 이날은 전 위원장이 해고 통보를 받은지 나흘 후이며, 노조를 세운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메일을 보낸 이 과장은 비슷한 시기에 전 위원장의 1인 시위 방해 지침 메일을 보내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과 동일인이다. (관련기사 :
신세계 이마트 "노조 1인시위 충돌 일으켜라")
이 과장은 전 위원장의 징계 해직 소식을 전한 후 "이에 사업장 사원들에게 시나브로 소문을 내라"고 말했다. 그는 "강압적이고 주입적인 느낌을 사원들이 가져서는 절대 안된다"면서 "일단 지원팀장, 인사파트장, 팀장급과 이런 부분을 공유를 해 사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서 당연히 짤릴 짓을 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첨부 문서의 인쇄와 전달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첨부된 문서에는 "별도 교육이 아닌 흡연실이나 휴게실 내에서 자연스럽게 대화 형식으로 진행"하라며 구체적인 입소문 문구가 적혀 있었다(아래 이미지 참조).
- 전수찬인가... 걔... 짤렸대~~ 19일 동안 무단결근 했다며?- 점포에서는 계속 출근하라고 했다는데, 일방적으로 아프다고 휴직했대~- 근데 그렇게 아프다는 애가 매일 1인 시위 하고 다녔대~ 그 먼 광주까지 가서도...- 걔 밑에 임신 5개월인 여사원 하나밖에 없었대!!- 근데 최근에 유산기가 있어서 의사가 쉬라고 했다는데...- 전수찬이 무단결근 하는 바람에 아픈데도 나와서 혼자서 19주년 행사 준비 다했대~~- 동광주점 사람들 고소까지 당했다던데!!- 들어보니깐 사무실 가둬놓고 때렸다고 고발했다던데, 사무실에 가둬놓고 때렸다는 게 말이 돼? 완전 뻥이지!!- 고소당한 어떤 직원하고 와이프는 충격 받아서 정신과 치료 받고 우울증 약 먹고... 난리도 아니라던데~~
비열한 방식... 내용도 사측의 일방적 논리이같은 사내 여론 조작 시도는 매우 비열한 방식이다. 만약 해고 사유가 떳떳하다면 공식적으로 사내에 알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마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런 방식을 사용해 사내 여론을 관리하려 했다.
내용 또한 이마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아니라 허위 사실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11월 17일 인사위원회를 통해 전 위원장을 징계 해고하면서 무단결근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회사 이미지 실추를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전 위원장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무단결근은 말 그대로 무단으로 결근해야 성립하는 것"이라며 "분명히 연차 휴가 요청을 냈고, 회사가 거부하자 내용증명으로까지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자 휴직 신청까지 냈으며, 이것도 내용증명으로 보냈다"면서 "절차를 다 밟았다, 모두 6번이나 의사를 밝혔다"고 반박했다. 집단폭행 당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에 대해 "동광주점에서 집단폭행이 분명히 있었으며, 그 상황은 녹취록까지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전 위원장은 회사 측의 해고가 "노조 와해를 위한 부당노동행위"라는 입장이다. 이마트 동인천점에서 근무하던 그는 노조 설립 움직임이 포착되자 갑자기 전남 광주점으로 원거리 발령이 났고, 노조 설립 얼마 후 해고됐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15일 보도한 이마트 내부 자료에서도 노조 설립 움직임에 대해 "징계나 해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수년 전부터 방침을 세워놓은 것으로 드러나, 전 위원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 위원장과 다른 해고 및 징계자는 현재 인사 조치의 적법성을 놓고 이마트와 다투고 있다.
전 위원장은 이마트 문서에서 언급한 임신 여직원 부분에 대해 "내가 동광주점에 나가 근무한 기간은 이틀뿐이고, 먼저 일을 하고 있던 그 친구와는 2~3분 인사만 한 사이일 뿐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했다"면서 "회사의 행태가 매우 비열하다"고 비판했다.
이마트 측은 이 문서에 대해 "내부적으로 작성 정황에 대해 파악 중이다"라고 밝혔다.
언론 보도되자 전국 점포 147명에게 긴급 메일 "유출자 색출, 자료 폐기"한편, 이마트는 지난해 12월 중순 1인 시위 방해 지침 메일이 언론에 보도되자 정보 유출 경로자를 색출하고, 문제가 될만한 문서를 모두 폐기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1시57분 고객서비스본부점포지원팀 부장은 전국 각 지점 점장 등 147명에게 긴급 메일을 보냈다. 그는 "매스컴을 통해서 '1인 시위 대응 지침'에 대한 내용이 유출되어 기사화됐다"면서 "유출 경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부 정보유출 관리를 유관부서에서 철저히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본사도 불필요한 문서, 표현상 외부 유출시 문제가 되는 문서 등을 전부 폐기할 예정"이라며 "점포도 지금 즉시 확인해서 문제가 될만한 소지가 있는 모든 문서를 폐기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시건장치 처리, 문서의 PC 저장 등 보관하지 말고 반드시 폐기 조치"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이마트는 문서를 전부 폐기하라고 지시했지만, 다량의 이마트 '문제 문서'는 이미 <오마이뉴스>에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