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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 이삭 내부 베이커리 이삭 내부.송씨의 첫째 아들이 만든 '인권이네'가 걸려있다.
베이커리 이삭 내부베이커리 이삭 내부.송씨의 첫째 아들이 만든 '인권이네'가 걸려있다. ⓒ 신나리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 앞.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대형 제과 프랜차이점이 눈에 띈다. 합정은 개성 있는 술집이나 카페로 유명했다. 비교적 프랜차이즈가 적었던 이 길에도 어느새 '합정점'을 내세운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생겼다. 합정역에서 상수역방향의 길에는 프랜차이즈 국수, 안경가게, 김밥 집과 아직 살아남은(?) 가게들이 번갈아 가며있다. 상수역을 향해 600m를 걸어가면 '베이커리 이삭'이 보인다.

이삭은 2006년에 처음 이곳에 문을 열었다. 주인 송용복(42)씨는 열네 살 때부터 빵을 만들었다.

"제가 경남 통영, 통영에서도 배타고 들어가야 하는 두미도 출신이에요. 당시에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서울에서 빵집을 하는데, 사람을 구한다고 하더라고. 서울 애들은 못 믿겠다고 고향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면서…."

9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가정형편도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고향을 떠났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한 시 반까지 일은 계속됐다. 쉬는 날은 따로 없었다. 3만 원이라는 월급이 많은지 적은지도 몰랐다. 꼬박 15년을 서울 신길동의 한 빵집에서 일했다. 소년은 청년이 됐다. IMF가 터졌다. 주인은 장사가 안 된다며 직원 월급을 부담스러워했다. 스물아홉, 송씨의 월급은 90만 원이었다. 제빵 경력 3년차인 친구는 월 15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신길동에서 가까운 신대방의 빵집에 새 일자리를 구했다.

"앞뒤로 프랜차이즈를 두고 동네 빵집으로 버티려면..."

"그때 처음 보너스라는 걸 받았어요. 쉬는 날도 있었고, 일하는 시간만큼 월급도 올랐고요. 공장장이 돼서 열심히 일했죠." 원래 제빵은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다. "시다바리, 뭐 인턴같은 거죠. 청소하고 짐 나르고 다시 청소하고. 한 10여년 그렇게 청소와 빵 만드는 일을 배우면 공장장이 돼요." 송씨가 말했다.

프랜차이즈가 난무하기 전에 동네 빵집이 생기는 과정은 어디나 엇비슷했다. 공장장이 되어 또 10년, 20년 경험을 쌓고 돈을 모아 자기의 빵집을 여는 것.

"지금에야 뭐. 50-60대 들이 퇴직하면 퇴직금 받은 걸로 빵집을 열잖아요. 본사에서 반은 완성된 빵(반제품)을 갖다 주니까 편하거든요. 빵을 만든다기 보다는 전달받아 파는 거죠."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후 송씨는 상수동 지금 자리에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몇 년 전, 한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찾아와 '본사지시로 이 근처에 빵집을 열 예정인데, 사장님이 직접 하시면 어떠냐'고 권유 같은 협박을 했을 때 거절한 것은 자신의 가게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가게를 지키려면 그만의 경쟁력이 필요했다. 송씨는 다양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10여평 되는 '베이커리 이삭'에는 총 90여 가지의 빵이 있다. 손님들은 소보로, 팥빵과 같은 어느 빵집에서나 볼 수 있는 빵에 '국진이빵' '소라 파이'처럼 '이삭'에서만 파는 빵을 더해 샀다.

"앞뒤로 프랜차이즈를 두고 동네 빵집으로 버티려면… 메뉴개발을 많이 하는 편이죠. 뭐가 맛있을까, 어떤 빵을 만들어 볼까. 다양하게 만들어서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요. 잘 팔린다 생각하면 양을 늘리고, 인기가 없다 싶으면 바로 메뉴에서 없애요."

하루 24시간중 20시간...불이 꺼지지 않는 베이커리 이삭

송씨와 손님들 새벽 두 시 반경 베이커리 이삭을 찾은 손님
송씨와 손님들새벽 두 시 반경 베이커리 이삭을 찾은 손님 ⓒ 신나리

베이커리 이삭은 오전 7시에 문을 열어 다음날 오전 3시에 문을 닫는다. 24시간 중 총 20시간 장사를 계속한다. 주말도 공휴일도 없다. 1년 365일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하루 매출의 20%가 새벽에 나와요. 집에 들어가면서 빵 한 봉지씩 사고 가는 거지."

실제로 기자가 함께 한 18일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총 26명의 손님이 다녀갔다. 5400원부터 2만3000원까지. 퇴근하는 사람과 기분 좋게 취한 사람들은 송씨네 가게에 들러 빵 한 봉지씩을 사갔다. "퇴근하는 길에 들러서 많이 사가요. 여기 빵이 맛있기도 하고, 이 시간에 문 연 빵집은 잘 없잖아요."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들른 한정선씨의 말은 송씨가 하루에 20시간 장사를 하는 이유다.

맛은 자신 있다. 재료도 아끼지 않는다. 2006년 이후로 365일, 20시간 가게를 여는 꾸준함은 빵을 만들 때도 여전하다.

"빵은 제 인생이거든요. 소홀할 수 없죠. 아직도 빵을 만들 때 마음가짐은 똑같습니다. 제가 잘못 만든 빵을 용납 못해요. 열네 살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마지노선 거리, 딱 500m의 희망

송씨는 20개 들어가야 하는 밤빵에 재료비가 올랐다고 5개를 넣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손님들은 미세한 변화라도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팥빵의 맛은 언제나 같을 것. 어제와 오늘의 빵이 메뉴는 다를지언정 맛은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송씨의 지론이다.

"와, 여기 빵은 무게가 다르네요. 왜 이렇게 무거워. 제가 빵집을 그냥 못 지나가는 빵돌이라 나름 전문가인데 이 집 빵은 일단 뭐가 많이 들었나, 무겁네."

새벽 두시 반 경 이삭을 찾은 김진우씨는 그 자리에서 빵을 먹으며 무게만큼 맛도 좋다고 말했다.

"딱 500m만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빵은 동네 장사잖아요. 이 동네 손님들이 지금처럼 우리집 빵을 오가며 살 수 있게, 500m에만 프랜차이즈 빵집이 안 밀고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송씨의 바람이다. 실제로 합정역과 상수역에는 출구 바로 앞, 목 좋은 곳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있다.

베이커리 이삭은 합정역과 상수역 중간쯤에 있다. 맞은편에 프랜차이즈 도너츠 가게가 있지만 빵집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근처에 마땅한 자리도 없고 워낙 임대료가 비싸서 쉽지 않겠지만, 지난번처럼 또 프랜차이즈에서 찾아와 이곳에 문을 연다고 말하면 어쩌나 그게 걱정일 뿐이라고 했다.

베이커리 이삭의 오전 오전 7시 20분, 여전히 열려있는 베이커리 이삭
베이커리 이삭의 오전오전 7시 20분, 여전히 열려있는 베이커리 이삭 ⓒ 신나리

덧붙이는 글 | 신나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



#베이커리 이삭#동네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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