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비자 교양강의> 겉표지
<한비자 교양강의> 겉표지 ⓒ 돌베개
'법치'라는 단어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지난 5년을 지내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법치주의'나 '법치국가'라는 단어 속에는 일종의 모호함이 깃들어있다. 막연히 좋은 것, 옳은 것, 훌륭한 것으로 생각되어 법치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 자체만으로 그것은 합리적인 것이고, 합법적이며, 올바른 것처럼 치부된다.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는 '법치주의'라는 어휘에 관해 그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을 살아가는 민주시민들의 의식 속에 자리한 '법치'라는 개념에 대해, 서구의 우월한 정치문화로부터 물려받은 느낌을 가진 이들은 호의적이기도 하고,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에서 남용되었던 느낌을 가진 이들은 적대적인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때문에 책 <한비자 교양강의>를 통해 정확한 법치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확한 '법치'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단어의 어원부터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어려운 점이 있다. 우리말인 '법치'와 서양의 용어인 'rule of law'(영어) 또는 'Rechtstaat'(독일어)는 차이점이 있다. '법'은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라는 의미가 내포해 있고, 'law'와 'recht'는 '옳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서양의 사상 속에서 우리말 '법치'의 연원을 찾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따라서 '법치'의 기원을 동양의 사상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데, 쭉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한비자'를 만날 수 있다.

한비가 살았던 시대는 중국의 극심한 혼란기인 전국시대 말기였다(한비의 사상에 비해 그의 삶은 불확실하다. 출생연도를 대략 기원전 280년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요구되던 시기였다. 한비는 한나라의 공자로 태어났다. 당시 한나라는 성인에 의해 통치되던 나라도 아니었고 철저한 도덕관념을 지닌 관료들이 있지도 않는 나라였다. 한비는 그 무엇 하나 뛰어나지 않은 나라에서 그나마 명목을 유지하며 국가를 경영하는 방법이 '법치'라고 생각했다.

즉, 모든 구성원이 믿고 따를 기준인 법을 제정하고, 관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게 하고, 정한 상과 벌로써 장려와 금지를 확실히 행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비자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법치다. 동시대의 사상인 유가는 주나라의 제도로 복고하자는 주장을 폈지만, 법가는 새로운 규범의 틀을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비의 법치에는 '법'만 존재하지 않는다. 관료국가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술치(術治)'와 국가권력이 법을 분명하게 시행토록 하고 그에 따라 상과 벌을 적절히 함으로써 법치를 뒷받침하기 위한 '세치(勢治)'를 함께 주장하고 있다. 결국 '법' '술' '세' 중에 하나라도 누락하면 진정한 법치가 아닌 것이다.

한비가 말하는 '법에 의한 정치를 저해하는 요소

또한 한비는 친절하게도 법치를 위해서 경계해야 할 오악을 지적했다.

"이러한 법치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한비는 첫 번째로 학자를 꼽습니다. 선왕의 도를 칭송하고 인의를 빙자하며, 의복을 성대하고 당당하게 꾸미고 변설을 늘어놓으며, 당대의 법에 의문을 품게 하고 군주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유세가입니다. 말은 멋지고 번드르르하지만 실상은 무책임하고 엉터리가 많으며 외국의 힘을 빌려다가 사적인 이익을 꾀하고 국가의 이익을 뒤로 미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칼을 찬 협객입니다. 수하 도당을 그러모으고 남자의 의리를 내세우면서 국가가 정한 금령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군주와 가까운 신하입니다. 군주 가까이에 있다는 위치를 이용해서 유력자와 결탁하고 뇌물을 탐하여 군역 면제를 도모해 주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는 상공업자입니다. 규격에 맞지 않는 도구를 제작하고, 사치품을 비축하고, 또 물자를 매점해서는 물가를 끌어올려 농민을 곤경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한비는 이 다섯 가지는 나라의 속을 갉아먹는 좀벌레 같은 해충이기 때문에, 군주가 이 다섯 가지 해충에 해당하는 인민을 배제하여 절조 있고 청결한 인사를 양성하지 않으면 파탄을 피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한비자 교양강의> 252~253쪽)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본다면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지금 '법치'를 주장하는 자들은 자의대로 '법치'라는 단어를 구사하면서 정작 '법치'사상을 주장했던 한비의 말들은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그러니 '영혼 없는 정부' '철학 없는 정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결국 한비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법치는 법을 통하여 국가와 관료와 백성이 공존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법은 소수 권력자의 자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도덕이 뒷받침되는 그런 법이다. 그러나 그런 도덕은 혈연·지연·학연 등 각종 연고주의에 따라 구별되는 유교적 도덕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공명정대하게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그런 도덕을 말한다.

법치를 편리한대로 취사선택하고, 술치를 권모술수로 변질시키며, 한비가 지적했던 오악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는 결코 진정한 법치가 될 수 없다. 이제 이런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한비자 교양강의>(가이즈카 시게키 씀 | 이목 옮김 | 돌베개 | 2012.07. | 1만2000원)



한비자 교양강의

가이즈카 시게키 지음, 이목 옮김, 돌베개(2012)


#돌베개#한비자 교양강의#가이즈카 시케키#이목#법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