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영의정> 본인 : 1970-80년대 8건의 부동산 투기. 장남 : 7~8세 때 임야 2만 평 서초동 대지 200평 구입, 체중미달로 군 면제. 차남 : 6세 때 서초동 대지 형과 공동구입, 통풍으로 군 면제...이만하면 여왕조시대 훌륭한 영의정 깜이네요."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28일 자신의 트위터(@ssaribi)에 올린 내용입니다. 정 의원이 비판한 '훌륭한 영의정'의 주인공은 누굴까요?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고 있다가 일약 초대 총리 후보가 된 김용준 후보자입니다.
그는 정운찬 전 총리에 이어 '제2의 양파 총리'가 될까요? 자고 나면 김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이 터집니다. 지명 직후 사흘 만에 추풍낙엽처럼 의혹들이 쏟아질 지경이니 과연 인사청문회가 본격화되면 어디까지 추락할까요. 우선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 압축해볼까요?
김용준, 제2의 양파 총리 되나우선 본인의 재산형성 과정에 상당한 의문이 있습니다. 김 후보자 본인이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1970년대, 대법관으로 임명된 1980년대 후반 수도권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부동산 투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공직자 재산공개가 처음 이뤄진 1993년 김 후보자는 당시 대법관으로 재산을 신고했는데 14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산이 제일 많았습니다. 총액은 29억 원이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부부합산(11억) 재산보다 두 아들(18억)의 재산이 더 많았다는 점입니다.
장남은 1974년 7살 때 안성에 임야 2만 평을 샀고, 1975년에는 각각 8살, 7살이던 두 아들이 서울 서초동에 대지 660㎡ 주택을 샀습니다. 김 후보자는 포목점을 운영하던 어머니가 모은 재산을 손자들에게 물려준 거라고 해명했지만 곧장 거짓임이 탄로 났지요.
김 후보자의 아들과 공동명의로 함께 땅을 산 오모씨는 당시 김 후보자 밑에서 근무하던 법원 서기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오모씨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후보자와 함께 땅을 알아봤던 법원서기 오모씨는 1983년 이 땅을 팔아 차익을 남겼습니다.
김 후보자의 사위 김범수 변호사는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론스타 측의 변호인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재산과 병역뿐 아니라 과거 판결에도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인 복지원에서 선도를 이유로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켜오다가 직원의 구타로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한 이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검찰이 15년을 구형했는데 판사였던 김 후보자는 2년 6월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김 후보자는 왜 이런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은전을 베풀었을까요? 청문회에서 그가 어떻게 해명할지 기대가 큽니다.
이 밖에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 의혹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과연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무사통과 할 수 있을까요? 이 정도라면 낙마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요?
"조 대변인, 저 양반 뭐라는 거요?"
그러나 제 관전 포인트는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무사통과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 대체 뭐냐구요?
첫째, 박근혜 당선인은 김 후보자의 이런 허물을 전혀 모르고 지명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둘째, 박근혜 당선인이 이런 허물을 알고도 김 후보자를 초대 총리로 지명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박 당선인은 대선 내내 책임총리제를 강조했고 공약했습니다. 박 당선인이 책임총리제를 공약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분산해서 헌법에 보장된 국무총리의 권한과 책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일흔다섯의 김 후보자는 우선 귀가 상당히 어둡습니다. 청력이 나쁘다는 것은 여러 의견을 두루 듣고 행정에 반영해야 할 총리의 자격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생중계 TV카메라 앞에서도 아주 당당한 어조로 기자들에게 "질문을 간단히 글로 써!"라고 반말까지 섞을 정도로 공인의식이 없습니다.
심지어 기자의 질문을 독해하지 못해서 곁에 있던 조윤선 대변인을 향해 "조 대변인, 저 양반 뭐라는 거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묻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에게서 무한한 용감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그에게는 사실상 늘 '통역사'가 붙어야 하는 지경인 겁니다.
이런 분을 앉혀놓고 박근혜 당선인이 책임총리제를 구현할까요? 그래서 저는 박 당선인이 평소 원칙과 신뢰, 약속을 강조했지만 그의 첫 번째 약속 '책임총리제'는 깨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박 당선인의 총리 인사를 두고 '핫바지 인선'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행정 경험이라고는 단 한 번도, 정치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법조인에 불과한 김 후보자를 통해 박 당선인이 구현하려는 것은 책임총리가 아니라는 거지요.
제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정치 스타일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박 당선인은 절대로 2인자를 두지 않는 정치 스타일을 견지하셨던 분"이라며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하는 박 당선인은 소수 최측근을 기반으로 내가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김 대변인은 "박근혜 당선인의 아버지 시대 정치가 자꾸 떠오른다"며 "YS 문민정부 이후 단 한번도 장관급으로 격상된 바 없는 경호실을 15년 만에 장관급으로 끌어올린 것도 단순히 '커터칼 테러' 때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잘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그리고 김용준 총리 후보자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기도 합니다.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지탄을 받아도 박 당선인의 언질이 없다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엄청난 흠결에도 불구하고 박 당선인에 대한 충성심만 있다면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새 정부를 구성할 주요 인사들이라는 게 우리 국민들의 불행인 것일까요?
박 당선인이 이런 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외쳤던 구호가 '시대교체' '정치교체'라는 데서는 혀를 차게 됩니다. 그가 국민들 앞에서 새로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면서 약속한 '정치교체' '시대교체'의 아이콘은 누구일까요?
여기까지 이르면 박 당선인의 새로운 정치가 자꾸 박정희 제3공화국과 오버랩 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해볼까요?
제3공화국은 5·16 군사쿠데타세력이 민간인 신분으로 옷을 갈아입고 4월 혁명의 민족민주 이념에 역행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남북 간 군사대결과 체제경쟁을 벌이면서 동시에 정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외자의존적 경제개발을 추진해나갔습니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한일회담을 추진했고, 1965년 8월에는 위수령 발동이라는 강압책으로 반대세력을 억눌러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비준시켰지요.
그뿐입니까. 베트남 파병을 단행해서 우리 젊은이들을 희생시켰고, 1969년 9월엔 공화당 의원만으로 새벽에 국회 제3별관에서 3선 개헌안을 변칙 통과시켜 1971년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했지요. 결국 박정희정권 내내 4월 혁명의 이념을 계승한 한일회담 반대투쟁·부정선거 규탄투쟁·3선개헌 반대투쟁 등이 치열하게 전개됐고, 70년대 초에는 전태일 열사 분신 자살사건 등 폭발적인 민중항쟁이 전개됐습니다.
물론 '잘 살아보세' 구호로 연평균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뤘습니다. 1~2차 경제개발계획은 성공을 거뒀지요. 그럼 된 것일까요? 제3공화국도 1960년대 말부터는 외채 급증에, 무역적자 확대에, 차관기업의 독과점화, 중소기업 위축, 인플레이션 같은 예속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었습니다.
시대도 많이 바뀌었고, 정치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절대로 제3공화국처럼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첫발을 내딛는 박근혜 정부가 자꾸 정치 시계를 과거로 돌리려고 하고, 부정비리가 많은 구태 인사들을 등용하면서 정치교체와 시대교체를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일 테니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