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3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
"이슬, 나 화장실 가고 싶어""쫌만 기다려…. 가자"혁빈(6)이는 화장실 가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 교사에게 당당하게 도움을 청한다. 교사 이슬(윤은미, 39)은 혁빈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간다. 이슬은 혁빈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혁빈이가 뒤처리를 잘 하는지 확인한다.
이슬은 점심식사 후 아이들이 이를 닦는 모습도 지켜본다. 일단 아이들이 스스로 양치질을 하도록 한다. 끝나면 이슬이 다시 칫솔을 들고 어금니 구석구석까지 칫솔질을 해준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어금니를 한 명씩 닦아주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아이들 중에는 이슬의 아들 두성(5)이도 있다. 이슬은 아들의 이를 닦아주는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핀다.
네 가구 품앗이로 시작한 어린이집...10년만에 졸업생 20여 명 배출
'희망가득 희망꽃핀', 동글동글 어린이집 25일 오전에 찾아 간
동글동글어린이집의 문패에 적힌 문구다. 어린이집은 서울 용산구 원효로1가 주택가에 있다. 1, 2층 총 64평 크기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이다. 2003년에 네 가구의 '보육 품앗이'로 시작한 어린이집은 2006년 9월, 부모 협동조합어린이집으로 인가받았다. 모든 학부모는 조합원이다.
교사와 아이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별명을 부른다. '선생님', '해주세요' 등의 존칭어는 없다. 여섯 살 혁빈이가 39세의 이슬에게 '야자'를 틀 수 있는 이유다. 현재 5명의 어린이집 교사 중 4명은 이슬처럼 학부모다.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도 '선생님', '어머님' 등의 존칭어를 없앴다. 별명으로 부른다. 선생님, 형, 누나, 언니 등 사회에서 쓰는 존칭어가 사라진 어린이집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어린이집 공동체에 입학하려면 출자금 500만 원이 필요하다. 아이가 졸업할 때 출자금은 돌려받지만 대신 100만 원의 기부금을 내야한다. 현재 0세에서부터 8세까지, 취학 전 24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어린이집은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250만 원을 내고 있다. 지난 5년동안 150만 원의 월세를 냈지만,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땅값이 올랐고 자연히 어린이집의 월세도 올랐다. 이는 조합원들에게 부담이다.
공동보육 어린이집에서... 청소년 책 놀이터, '고래이야기'로
25일 오전, 어린이집 아이들 20명이 나들이에 나섰다. 한 달에 두 번씩 나가는 현장학습이다. 인근 효창공원을 비롯해 난지천 공원, 광화문 광장, 서울 광장 등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이날은 서울시청에 있는 서울도서관으로 향했다. 현장학습 때는 이슬과 해바라기(정은주, 32) 외에도 학부모들 도우미로 동행한다. 이날 도우미는 신아(5), 진아(8)의 아버지 호랑나비(황태규, 44)다. 민주노총 산별연맹 화학섬유노조의 홍보실장인 그는 10년 넘게 노동운동을 해왔다. 어린이집 초기, 대부분의 조합원은 용산의 시민단체, 노동운동가들이었다.
"안심하고 애 키우려는 부모들이 머리를 맞대니까 안 되는 게 없더라고요. 애들 먹이는 것에서부터 보는 책, 갖고 노는 장난감까지 어린이집에 있는 것은 다 우리 손으로 만들고 결정했어요. 시간은 걸렸지만 여기까지 온 게 신기하죠"생후 100일 때부터 어린이집에서 생활한 진아는 오는 2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린이집을 졸업한 아이들은 20여 명. 동글동글어린이집을 졸업한 부모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들의 도서관, '
고래이야기'를 만들었다.
2011년 3월, 용산구 효창동 효창운동장 입구에 문을 연 '고래이야기'는 20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지역사회에서 기부받은 3000여 권의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고래이야기는 책을 매개로 인근에 사는 부모들과 아이들의 소통공간이 된다. 현재 우쿨렐레, 기타, 여행 등의 동아리와 청소년을 위한 방학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먹거리, 우리가 직접 공급한다... 생활협동조합 창립으로
"딸 하나 키우는데 도시에서는 외롭고 힘들 것 같았어요. 애가 부모하고만 살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잘 자랄 수 있을까' 고민했죠. 동글동글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는 걱정이 사라졌죠. 또래를 사귀고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혜택이었죠."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부모들에게 여러 가지 도전을 감행하게 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거리다. 아이들의 먹거리에 관한 동글동글어린이집 부모들의 걱정과 관심은 친환경, 안심 먹거리를 직접 공급하자는 데까지 나아갔다. 생협의 전광철(46) 이사장을 비롯한 부모들은 2011년 9월부터 생활협동조합 준비 모임을 가지며 결속을 다진 후 지난해 2월 350명의 조합원과 함께
용산 생활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용산구 효창동 효창운동장 앞에 자리잡은 생협의 캐치프레이즈는 '행복 중심 용산 생협'이다. 대형마트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적인 '착한 소비'를 지향한다. 용산 생협의 농산물은 여성민우회 생협의 유통망을 활용해 공급받는다. 강원도 횡성군의 '언니네텃밭'과 직거래 계약을 맺어 꾸러미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매주 또는 격주로 횡성의 신선한 먹거리가 담긴 꾸러미를 식탁까지 직접 배달받을 수 있다. 조합원들은 횡성의 농부들과 편지로 소통하면서 안심하고 이용한다. 산지와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시중 가격이 폭등해도 안정적인 공급을 받을 수 있다.
생협은 시장경제와 다른 용어를 쓴다. 상품 대신 '생활재', 소비 대신 '이용'이라는 단어를 쓴다. 즉 생협은 조합원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이용'하기 위해 존재한다. 주요 생활재는 계란, 우유, 두부 등 친환경 먹거리다. 이용자 대다수가 아이를 키우는 30~40대 주부로, 먹거리에 신경 쓰는 '웰빙' 엄마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매장에서 4만 원 이상의 생활재를 이용하면 배달도 해준다.
마을공동체 물꼬를 열 '용산 생협'
이날 생협 매장에서 만난 박국자(73)씨는 전통과자 세 상자와 사탕을 '이용'했다. 직접 먹을 것도, 손자에게 줄 주전부리도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앞 아이들을 먹이는 게 즐겁다는 박씨. 과자가 담긴 봉투를 든 그는 매장 활동가에게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방긋 웃으며 매장을 나섰다.
2013년 1월 현재 생협에 가입한 조합원은 760명이다.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용산구 전체와 공덕동 등 마포구 일부 지역의 시민에게 조합원 자격이 주어진다. 출자금 2만 원, 가입비는 만 원이다. 700명이 넘는 조합원이지만 생협을 이용하는 열성 조합원은 200~300명 내외다. 매장의 활력을 위해서는 나머지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이용이 절실한 상황이다. 생협 20평 매장의 월세는 100만 원, 여기에 매장 활동가 네 사람의 인건비를 빼면 생협의 살림은 빠듯하다.
그러나 전 이사장은 1호 매장의 도전을 시작으로, 조합원을 앞으로 1500명까지 늘려 2, 3호 매장을 내는 꿈을 갖고 있다. 그 마음을 담은 것일까. 용산 생협의 1호 매장의 이름은 '물꼬'다. 1호 매장을 시작으로 생활협동조합, 마을공동체의 물꼬가 트길 바란다는 점에서 이름 지었다.
"논에 물이 넘어 들어오거나 나가게 하려고 만든 좁은 통로가 바로 물꼬예요. 물꼬를 튼다고 하는데, 모든 일의 시작을 물꼬라고 하죠. '물꼬'를 시작으로 마을공동체, 마을살이가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다시 협동조합 커뮤니티 카페, '피풀'로 마을을
이날 오후 7시, 생협과 10m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카페에서 어린이집과 도서관, 생협에 이어 한 발짝 더 공동체를 확장하는 시도가 시작됐다. 생협의 조합원들이 또 다른 협동조합, 커뮤니티 카페 '
피어라풀꽃(피풀)'의 시작을 알리는 잔치를 연 것이다. 생협의 일차 목표가 생활재 공급이라면 '피풀'은 조합원들의 모임 공간을 마련해 조합원 사이, 마을 주민사이의 관계망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둔다.
생협에서 사무국장을 지냈던 김경열(42)씨는 생협의 확대를 넘어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개개인의 서로 다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저변에서 관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김씨의 판단이다.
이날 피풀 입구에는 배우고 싶은 것, 가르칠 수 있는 것 등 이곳을 무대로 함께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게시판이 마련됐다.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을 공유하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나누는 활동이 피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어린이집에서 시작된 마을공동체의 씨앗은 고래이야기를 거쳐, 용산 생협의 열매로 이어졌다. 이제는 이 열매를 여물게 할 거름이 피어라풀꽃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김경열씨는 강조했다.
"생협의 확장은 조합원들 사이의 관계가 깊어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생협이 마을공동체의 샘을 솟게 하는 마중물이라면 피풀은 주민들을 단단하게 결속시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