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부모'(독립할 나이가 지난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간섭하려는 부모)가 대학가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앙대 졸업예정자인 채아무개씨는 지난 1월 15일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학부모들이 대학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중앙대 '1+3 국제전형'에 합격한 신입생 학부모들은 지난 1월 14일부터 16일까지 중앙대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교과부의 전형폐쇄명령에 자녀가 입학취소를 당하지 않을까 우려한 부모들이 행동에 나선 것. 한편, 서울행정법원은 중앙대 '1+3국제전형' 합격자들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전형 폐지로 합격이 취소된 학생들은 학생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채씨는 "자녀 성적 때문에 교수에게 항의전화를 하는 부모 이야긴 들어봤지만, 자녀 문제 때문에 총장실 점거까지 했다는 소식은 정말 의외"라면서 "이러다 대학에도 '학부모회'가 생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대학에도 학부모회가 있다 채씨는 농담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대학엔 '학부모회'가 존재한다. 실제로 중앙대에는 '의대 학부모회'가 있다. 초·중·고등학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학부모회가 재학생들도 모르는 사이에 대학까지 진출한 셈.
대학내에서 헬리콥터 부모들은 '학부모회'를 중심으로 모인다. 학부모회가 대학 측에 발전기금을 낸 적이 있거나, 학부모회 존재 유무를 확인한 결과 계명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인제대·중앙대·한림대 등에 학부모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부모회는 조사결과 대부분 의대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다. 의학전문대학원(아래 의전원)에도 학부모회가 존재한다. 의전원은 대학 학부를 마친 학생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진학하는 전문대학원이다. 평균적으로 23세 이상의 대학원생들로 30세가 넘는 학생도 있다.
대학 학부모회 역할도 초·중·고 학부모회와 비슷하다. 목적은 '학교발전과 친목도모'이고, 1년에 1번 이상 간담회나 총회를 연다. 간담회에서는 지도교수와 자녀의 교육·진로·취업 관련 상담을 하고, 교육환경을 살펴보기도 한다. 총회를 여는 학부모회는 간담회와 더불어 학부모회 사업과 예결산내역 보고를 함께한다.
대학이나 해당 단과대에 큰 행사가 있거나, 학생들이 큰 시험을 볼 때 학부모회가 지원하기도 한다. 고려대 의대 관계자는 "학부모회에서 학교 발전에 대해 조언하기도 하고, 의학관 건립이나 학생 관련 행사가 있을 때 임원 중심으로 꼭 참석한다"고 밝혔다. 계명대 의대 학부모회는 지난해 11월 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곳에 '지지방문' 하기도 했다.
학부모 전용 커뮤니티·포럼 개최, 총학생회? 적극적인 학부모회는 신입생 면접이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학부모회를 홍보하기도 한다. 인제대 의대 학부모회 경인분회는 임원과 학부모가 신입생 면접 진행을 돕는다는 공지를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계명대 학부모회는 의대 홈페이지에 공식 커뮤니티 게시판도 있다. 2012년 생긴 이 게시판에는 지난해 학부모회의 활동과 사업 계획이 게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계명대 학부모회는 지난해 11월 '의료 환경의 변화와 의료인의 비젼' 포럼을 주최했다. 행사 비용은 회비를 걷어 해결했다. 지난해 8월 학부모회 회장이 올린 '학부모회 사업계획'은 학생회를 연상시킨다. 주요 계획은 ▲공식 커뮤니티 게시판 개설 ▲의료인 포럼 개최 ▲자녀와 함께 책 저술이다. 이외 자녀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여학생 휴게실에 침대 설치, 봉사 활동 지원 등을 계획했다.
통큰 학부모회, 5천만 원 기부도 대학 학부모회도 활동 대상은 해당 단과대, 학부(과)의 학생 학부모 '누구나'다. 실제 활동하는 사람들은 회장, 부회장 등으로 임명된 임원들이다. 임원끼리 회비를 걷는다. 이 회비는 학부모회 주관 사업에 쓰기도 하고, 대학발전기금으로 기부하기도 한다.
인제대 의대 학부모회 경인분회(서울인천지역 학부모 모임)는 지난해 임원이 72명이었다. 분회장(1명), 수석부회장(1명), 학년별 등 각종부회장 (13명), 이사(54명), 고문(2명), 감사(1명). 회비는 분회장 100만 원, 수석부회장 50만 원, 각종 부회장 40만 원, 이사 30만 원, 고문 20만 원이다. 1번 걷은 회비가 2330만 원에 달한다. 회비 납부 계좌의 예금주는 인제대학교다.
대학 학부모회의 대학발전기금은 초중고 학부모회보다 통이 크다. 몇천 만 원이 쉽게 움직인다. 지난해 8월 연세대 의대 학부모회는 대학발전기금으로 5380만 원을 기부했다.
이에 앞선 2012년 5월 연세대 치대 학부모 대의원회도 4700만 원을 기부했다. 고려대 의학전문대학원(아래 의전원) 10학번·11학번 학부모회도 각 1000만 원씩 총 2000만 원을 지난해 11월 대학에 기부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학부모회가 대학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최주영 수석부회장은 "일부 학부모들이 '내 자녀'만 생각해 벌이는 '치맛바람'과 '불법찬조금'이 초중고 학부모회의 큰 문제였는데, 대학 학부모회에도 이 점이 보이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불법찬조금은 학교 측에서 기부금 액수를 임원별로 정한다거나, 액수를 공공연히 밝혀 관행적으로 강요되는 기부금을 말한다. 초중등교육법에서는 기부자의 기부금 액수를 밝히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학교발전기금'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의대 학부모들은 특히 학교에 관심이 많다" 의과계열 대학에서 주로 학부모회가 존재하고 이유에 대해 관계자들은 '어려운 공부'와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 답한다. 의전원 전문학원의 한 관계자는 "의사 국가고시 설명회를 열었더니 광주, 부산,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온 학부모들도 있었다"며 "부모들은 내 손에 반지를 뽑아서라도 공부를 시키겠다는 입장"이라 전했다. 이어 그는 "의대 공부가 정말 힘드니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한 의대 관계자도 "의대 학부모들이 특히 학교에 관심이 많다"며 "워낙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가 많고, 자녀들도 이를 잘 따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올해 의전원 입학 예정인 장아무개씨는 "의전원은 학부를 마치고 들어가는 곳인데 무엇 때문에 학부모회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혹시 자녀들의 결혼 때문에 모임을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제대 의대에 재학중인 임아무개씨도 "솔직히 부끄러운 일"이라며 "(대학에서) 공공연히 활동하지 않는 것도 시선을 의식해서 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세대 의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발적 활동이고 초중고 학부모회와 다르지 않다는 점 외엔 코멘트를 거부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인제대 의대 학부모회 경인분회 분회장도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계명대 의대 관계자는 "공식적인 취재요청을 하면 검토해서 홍보실을 통해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계명대 의대 학부모회 임원진도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박선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