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는 바로 다양한 기질과 스타일을 가진 탐정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작가들의 작품 성향이 제각각인 것처럼 이들이 창조해낸 탐정들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뚱뚱한 몸집에 맥주를 좋아했던 기드온 펠 박사와 네로 울프, 근육질의 터프가이로 누구와 맞붙어도 물러서지 않았던 마이크 해머와 필립 말로우, 뛰어난 추리력을 가졌지만 잘난척하면서 빈정대기 좋아했던 파일로 반스, 서글서글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았던 앨러리 퀸 등.
이들은 모두 고전추리소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명탐정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서로간에 공통점이 거의 없을 만큼 이들은 자기만의 개성이 강했다. 그렇다면 좀 더 현대에 탄생한 탐정들의 모습은 어떨까.
이들 역시 개성이 강하기는 마찬가지다. 잭 리처는 마이크 해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고 모스 경감은 기드온 펠 박사에 버금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좀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네로 울프처럼 링컨 라임 역시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아치볼드 맥널리는 앨러리 퀸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바람둥이다.
개성 강한 탐정의 모습일본의 작가 아즈마 나오미 역시 독특한 탐정을 한 명 만들어보자고 작정했던 모양이다. 아즈마 나오미의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에는 일종의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시리즈에서 탐정의 이름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작품 속에서 언제나 '나'일 뿐이다.
탐정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주인공에게 번듯한 사무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긴 고전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의 상당수가 간판을 내걸고 영업했던 것은 아니니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겠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평소에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혼자 살며 산속 깊은 곳에서 불법으로 대마를 재배하고 도박을 하며 돈을 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어떤 일을 조사해달라고 또는 해결해달라고 의뢰하면 그때부터 탐정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어찌보면 한량에 가까운 인물이다.
<사라진 소년>은 이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이다. 평소처럼 하루 일을 마치고 단골 바에서 한잔 마시고 있던 주인공에게 미모의 여교사 하루코가 다가온다. 그녀는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는 학생 쇼이치가 이상한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를 거기서 빼달라고 요청한다.
주인공은 친구와 함께 클럽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한바탕 활극을 벌인 끝에 소년을 구해오는데 성공한다. 일을 해결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주인공은 며칠 후에 하루코에게 전화를 받는다. 쇼이치의 친한 친구가 잔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고 쇼이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쇼이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은 이 사건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살해당한 소년, 사라진 소년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탐정'이라는 단어에서는 묘한 향수같은 것이 느껴진다. 최근에 발표되는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직업형사 또는 법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간단하게 말해서 살인사건이 터지면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싫어도 사건 수사에 의무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탐정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이 맡고 싶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다면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일을 떠맡는 것이다. 보수도 적절하게 부를 수 있고 시간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곤란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사라진 소년>의 주인공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그것은 주인공이 어딘가 모르게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에게 아직까지 이름이 없다는 것도 그런 느낌을 갖게하는 한 요소일 것이다.
이름 뿐 아니라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좀처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거기에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 속마음을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공이 독자에게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이제 고작 세 편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앞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는 주인공이 이름을 포함한 자신의 개인사를 독자들에게 밝힌다면 좋겠다. 그래야 독자들의 신뢰를 얻는 진정한 탐정으로 성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라진 소년> 아즈마 나오미 지음 / 현정수 옮김. 포레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