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 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
'뭐지 이건…' 지난 4일 오후, 고상훈 기자와 통화를 마친 후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이건 내가 생각한 분위기가 아닌데…'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고 기자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음의 고저가 없는 목소리, 형식적인 "네"라는 대답. 대놓고 팡파르를 울릴 수는 없지만 "당신이 이번주 '찜! e시민기자입니다"라고 마구 축하해주고 싶었던 내 맘은, 맥없이 "네"라는 대답만 툭툭 던지는 통에 차마 흥을 내지 못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어야 했다.
전화를 걸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훈남이네", "아들을 낳으면 이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둥 편집부 안에서 회자된 그의 존재감은 적지 않았다. 기사에 느껴지는 분위기도 훈훈했다. 그래 대학생이라면 이 정도 패기와 열정은 있어야지, 싶은 내용으로 가득한 호주 버스킹(거리 공연) 이야기들. 근데 전화는 왜 이런 거야?
"저희 팀을 소재로 기사를 쓰신다니 얼떨떨하네요. 사실, 전화 오셨을 때도 너무 놀랐는데 참느라 애먹었어요."'뭐야? 긴장한 거였어? 훗.'이제는 기억도 까마득한 대학생 시민기자 시절이 떠올랐다. 편집부에서 전화하면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쫄았던, 풋내나던 그 시절. 이메일 인터뷰를 읽어보니 우리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20대 젊은, 고상훈이라는 인물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답변은 "훈남이 아니"라고 썼는데, 왜 자꾸 나는 "훈남 고상훈, 훈남 고상훈"으로 읽히는 건지. 열정 가득, 사심(?) 가득한 고상훈 기자(제주대 초등교육학과 4학년)와의 대화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 고상훈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호주로 떠난 버스커는 모두 5명... 저는 아이디어맨"
- 고상훈씨를 '찜 하겠다'고 했더니, 아들 둘 키우는 한 편집기자가 "이런 아들로 키워야 하는데"라고 하더라. 여기저기서 "훈남 아들"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기사 하나로 훈남 타이틀 달았다. 집에서는 어떤 아들인지 궁금하다."인터넷이 좋긴 좋은 것 같네요. 훈남으로 생각해주시다니…. 사실, 저는 훈남 아들과는 거리가 멀어요. 표현하는 것이 어색해서 집에서는 지나치게 조용한 아들이죠. 부모님 입장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거예요. 저를 훈남 아들로 생각해주셨던 분의 기대를 너무 저버렸나요? 아무튼, 아닌 건 아니니까. ㅠㅠ "
- 그런 아들이 동아리에만 빠져 있어 더 걱정을 들었겠다. 뭐 하는지 말도 안 해주고. "공연 연습으로 매번 방학을 반납해야 하는 동아리 특성 때문에 어머니께서 걱정이 많으셨어요. 1학년 때는 탈퇴하라는 말을 달고 사실 정도셨어요. 어머니께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라셨는데 하루종일 장구나 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동아리 회원이라면 누구나 겪는 그런 문제에요. 그래도 나중에 동아리 정기 공연을 한 번 보시더니 기특했는지 탈퇴하라는 말까지는 안 하시더라고요."
- 제주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한다고 들었다. 선생님이 꿈인 건가. 그런데 왜 국악동아리를 선택했나?"사실, 제가 국악 동아리를 선택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숨은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신입생 때 그러니까 대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이야기에요. 그때, 한 선배가 저를 찾아왔었죠. 그게 화근(?)이었어요. 그 선배는 우리 초등 국어과에 몇 없는 남자 선배 중 하나였죠. 그 형은 저에게 "우리 과 남자라면, 사랏골(국악 동아리 이름)이다"라는 말을 하셨어요. 실제로 그 형을 포함해서 많은 우리 과 남자 선배들은 죄다 사랏골이었어요. 힘없는 신입생인 저는 그냥 끌려서 가입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제 의지로 가입한 것도 아니고 딱히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국악동아리에 든 것도 아니에요. 슬픈 이야기죠? ㅠㅠ"
- 의지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호주 버스킹도 하고. 이번 연주 여행에서 고상훈 기자는 어떤 역할을 맡은 건가."팀장이었지만 주도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았다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네요. 그냥 우리 모두 같이 만든 여행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여행사나 인솔자 없이 떠나는 여행은 모두 처음이었거든요. 모르는 건 같이 찾아보면서 애매한 건 주변에 물어보면서 만든 여행이에요. 그래도 저의 역할을 굳이 말하자면 아이디어를 뱉는(?) 역할이었어요. '뭐 하자!' 혹은 '그냥 해, 일단!'이란 말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마구 뱉으면 친구들이 좋은 생각만 추려서 기획해요. '버스킹'이라는 여행 테마도 이러다가 나왔었죠."
- 기사보다 궁금한 거 있다. 비용은 전액, 학교에서 대줬나. 기사 1편에서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소개되어 있긴 하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 처음 본 독자들을 위해 한 번 더 설명해주었으면 한다."일단, 우리 학교에서는 '테마별 세계교육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13팀 정도를 뽑아요. 참 고마운 프로그램이죠.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다양한 대륙으로 신청할 수 있어요. 일단, 이 기행에 뽑히면 지원금을 받는데, 전액 지원은 아니에요. 그래서 총 경비의 20~30% 정도는 자부담으로 해야 해요. 여기서 문제가 생기죠. 대학생은 언제나 돈이 부족하니까요. 때문에, 부모님께 애교용 가짜 채권을 발행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동안 없는 용돈 아껴가며 넣어둔 적금을 깬 친구도 있었죠. 교육대학의 바쁜 일정 특성상 다른 아르바이트는 꿈도 못 꾸는 사정이라 부모님에게 나중을 기약하며 비용을 마련했어요."
- 아 그리고 보니, 동아리 구성원에 대한 소개가 별로 없었다. 단원들이 좀 서운해 할 수도 있겠는데, 이 참에 한 번 대놓고 소개해달라.
"단원들을 일일이 소개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기사에서는 생략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좀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우리 버스커는 모두 다섯 명이에요.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은 친구는 동호에요. 호주에서 가장 고생한 친구거든요. 돈 관리를 혼자 도맡아서 했는데, 매일 밤 지출 내역을 정리하고 영수증을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잖아요. 또, 이 친구가 웃긴 게 셈을 잘 못해서 자꾸 계산을 틀려요.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은데 계속 일을 만들죠. 호주에서 돌아온 아직까지도 최종 정산을 하느라 고생하고 있어요.
두 번째는, 행문이에요. 행문이는 북을 진짜 잘 다루는 친구에요. 지금은 동아리를 졸업했지만(우리 동아리는 3년 임기) 아직도 동아리에서 북에 관해서는 전설이죠. 또, 한 번 북을 쳤다 하면 땀에 절어서 정말 안쓰러워 보여요. 불쌍해 보이는 것으로도 전설이에요. 다음은, 하영이와 진실이에요. 장구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치는 친구들이에요. 덕분에 호주에서 공연을 기획하는데 공연의 질이 확 살았죠. 저희 남자 셋은 장구에 좋은 재능이 없거든요. 10월까지 고민 고민하다 마지막에 같이 호주에 가기로 한 친구들이었는데 같이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남자 셋이 칙칙하게 공연을 해야 했으니 말이에요.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에요."
기사 링크 공유했더니 "좋아요" 눌러 주는 친구들 - 연주하는 사람이 기사를? 언 듯 잘 안 어울리는 조합으로도 보인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는 어떻게 쓰게 된 건지? "그건 전적으로 '삼촌'이라는 분 덕분이에요. 여기서 '삼촌'은 우리 과 동기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양학용 학생이에요. 삼촌이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많이 쓰세요. 얼마 전에 연재가 끝난 '라오스 여행학교'도 삼촌 여행기에요(참, 라오스 여행학교에 저도 참여했었어요). 이 '찜! e시민기자'에도 뽑히기도 했더라고요(관련기사:
"10대와 배낭여행하기? 당연히 힘들었죠"). 그런 삼촌을 보면서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죠. 글 쓰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저에게 글 쓰는 재미를 알려주신 분이에요. 더불어 여행하는 재미도 알려주신 분이구요. 아무튼 그래서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쓰게 된 거예요. 삼촌이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올리니 저도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올리고 삼촌이 여기에 뽑히니 저도 뽑히고. 참 신기해요."
- 연주 실력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니 평가가 어렵지만, 기사는 잘 쓰더라. 기본적으로 문장이 안정적이던데. 뭐 따로 속성과외라도 받은 것인지?"좋게 읽어 주신다니 기분이 좋네요. 개인적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이 부족하죠. 그래도 계속 글을 써가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쓴 '네팔 여행기'를 지금 보면 굉장히 부끄러워요. 물론 따로 과외를 받으면 좋겠지만(?) 주로 <오마이뉴스>에서 좋은 기사들을 읽거나 책을 읽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작가인 양학용 삼촌이 옆에 계신 것도 저에게는 행운이죠."
- 기사에서 여행 에피소드도 많이 나오고, 앞으로 한두 편을 더 쓴다고는 들었지만, 인터뷰니까 버스킹을 마친 소감을 미리 묻겠다. "버스킹 소감이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가끔 제가 뭔가를 하고 나면 글로 옮기고 싶은데 그렇게 못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버스킹 소감을 물으니 또 그러네요. 버스킹을 마치고 난 후의 감정을 글로 옮기자니 뭘 먼저 말해야 하는지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부터 고민이에요. 아마 버스킹을 해 본 사람들은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랄까, 묘해요."
- 기사 나가고 난 후의 반응들이 있었나?"기사를 쓰고 제 개인 페이스북에 링크를 공유했더니 주변 친구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더라고요. 친구들이 내 기사를 보고 '재밌어하는구나' 하고 기분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 웬걸. 주변 친구들을 만나서 제 기사에 대해 물으니 죄다 반응이 이래요. '야, 네가 쓴 기사였어?' 제 나이 또래에 이렇게 기사를 쓰는 친구가 많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친구들은 그냥 우리 이야기를 실은 '다른 사람 기사'를 공유한 것인 줄 알았나 봐요. 아직도 내가 쓴 걸 모르는 친구들이나 못 믿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데 이 기사를 통해서라도 알아주면 좋겠네요…."
- 동아리에 그렇게 열정적인 당신의 꿈은 궁극적으로 뭔가, 물어달라는 편집기자가 있었다. "궁극적인 꿈은 '눈이 넓은' 선생님이에요. 눈이 넓다는 건 아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경험이 많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동아리 공연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가며 연습하는 것도 호주에서 무모하게 버스킹에 도전하는 것도 눈이 넓어지기 위한 경험 중 하나에요. 결국엔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꿈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 혹시 이 버스킹 기사만 쓰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지 않을 건가? '찜'당해 놓고 잠적하는 시민기자 볼 때 편집기자는 좌절한다. "아마, 다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게 된다면 다시 '여행'이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여기저기 여행하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또, 기회가 된다면 요즘 읽고 있는 '서부원의 학생부장 일기'처럼, 선생님이 되어 초등학교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