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명소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종로 광장시장입니다. 이곳은 다양한 물건을 싸게 판다는 점도 있지만 푸짐한 먹거리 때문에 더 유명해진 곳입니다. 오죽하면 '광장뷔페'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광장시장 하면 떠오르는 '마약김밥'과 녹두빈대떡을 필두로 순대와 떡볶이, 잔치국수와 칼국수, 모듬전과 보리밥, 족발, 여기에 모듬회까지. 정말 모든 음식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광장시장입니다. 아참, 이들과 잘 어울리는 막걸리, 소주 한잔을 빼먹을 뻔했군요.
겨울비가 장맛비처럼 쏟아지던 1일 오후, 광장시장을 찾았습니다. 반찬가게, 옷가게 등을 둘러보며 시장의 정취를 느껴봅니다. 전통시장은 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맛좋은 반찬들이 널려있는 시장 골목을 지날 때마다 어찌나 구미가 당기는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나 저거 하나만 사줘'라고 어린아이처럼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입니다.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광장시장 먹자골목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이 많은 어머니를 대신해 모듬회를 파는 '이모님'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죠. 장사를 하시느라 종로 3가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여기 계속 오면 만나게 돼... 그때 만나면 되지"
모듬회를 먹어보기로 합니다. 오후 4시를 막 넘긴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소주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제가 들어간 집에도 몇몇 분들이 소주 한잔에 싱싱한 모듬회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저도 당연히 소주를 청했죠. 모듬회를 받고 사진을 찍고 있자 친구분들과 함께 계시던 한 어르신이 관심 있게 지켜보십니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하나보네.""아, 예, 오늘 배터리를 새로 끼워가지고 기념으로 한번 찍어본 거예요.""어, 거 축하해. 기념할 만하구만."처음 뵙는데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 광장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는 '아줌마'나 '사장님'은 어색합니다. '이모', '아가씨' 이게 제격이지요. 저도 어느새 '이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모님, 초장이 맛있어요. 이거 직접 담그신 거예요?""그럼, 여기 사람들은 다 초장을 직접 만들어요."회맛을 돋우는 초장의 달달한 맛에 빠져 정신없이 먹다보니 순식간에 회와 소주가 비었습니다. 때마침 배터리 교체를 축하해주시던 어르신과 친구분들께서 일어나실 채비를 합니다. 소주병이 참 많네요.
"이봐, 우리 사진 한 장 찍어줘봐.""찍긴 뭘 찍어, 이제 가야 하는데.""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이봐, 친구, 다음에 만나면 한 장 찍어줘야 해.""아이쿠, 여기서 선생님을 또 뵐 수 있을까요?""어차피 여기 계속 오면 만나게 돼. 그때 만나면 되지."광장시장의 매력은 여기서 나옵니다. 음식맛 좋고, 가격 싸다는 것도 매력이겠지만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부대낌'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친구가 되는, 그것이 바로 광장시장의 매력입니다.
제 맞은편에 한 남자분이 앉으셨습니다. 이분도 저처럼 혼자시네요.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다고 하자 웃으시면서 고맙다며 잔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제 잔도 채워주셨지요. 짧지만 서로가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마약김밥'의 새로운 맛
그 마음을 안고 이번엔 마약김밥 집으로 갑니다. 마약김밥을 파는 곳이 많았지만 제가 간 곳은 40년 동안 김밥을 판, 마약김밥의 원조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은 먼저 음식값을 내면 주인이 이미 포장을 한 마약김밥을 주고 그것을 가지고 가게 안에서 먹도록 만들었습니다.
재료는 간단합니다. 김과 밥, 단무지와 야채 정도입니다. 그리고 겨자 소스가 있습니다. 김밥을 이 겨자 소스에 찍어먹습니다. 겨자 소스를 놓은 이유를 묻자 재미있는 답이 나왔습니다.
본래 겨자소스는 김밥과 함께 파는 유뷰초밥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김밥을 먹는 사람들이 이 소스를 김밥에 찍어먹으니까 맛있더라는 소문을 냈고 그 때문에 소스를 찍어먹는 김밥이 더 유명해졌다는 겁니다. 하나의 재료가 된 셈입니다.
나만 외롭고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곳
그곳에 가면 모두가 스스럼없습니다. 김밥 사진을 찍지 못해 옆 사람에게 사진 좀 찍을 수 있느냐 했더니 흔쾌히 수락하시더군요. 옆 사람에게 술을 권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자리. 처음 온 집인데도 '이모님'이라고 부르고 싶게 만드는 그 분위기에 사람들이 매료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 힘들고 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 나도 사람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곳이 바로 시장 먹자골목의 매력입니다. 서로 부대끼고 어울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러면서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곳, 그래서 여전히 광장시장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울문화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