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7일)은 그동안 정들었던 제자들이 떠나는 날이었다. 어느 해보다 기쁘고 뿌듯한 마음으로 졸업식장에 들어갔다. 한 녀석이 어린아이처럼 덥썩 달려들었다. "사감 선생님, 저 선생님의 뒤를 잇게 되었어요. 기쁘지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3년 전, 이 제자를 만났다. 멀리 집 떠나서 공부 좀 하겠다고 우리학교에 입학했다. 자연스럽게 기숙사에 입사해 동고동락을 함께 한 아이다. 당시 나는 사감을 처음으로 맡아봤고, 이 녀석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달픈 생활의 연속이었다. 특히 유별나게 자유분방하고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이 집 떠나 타지역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출발이었다.
그래도 난 이 녀석이 다른 애들과는 별다른 면이 있었고, 착하고 순수하면서도 뭔가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 좀 풀어줬다. 그리고 보통 학생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친구같은 형이 돼줬다. 하지만 잦은 무단 외출과 친구들과의 사소한 갈등으로 많은 퇴사 고비와 부모님이 학교에 소환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순간을 맞을 때마다 오히려 '괜찮아, 조금씩 조금씩 습관을 고치면 돼'라고 응원해줬다. 그렇게 3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도하기 어려운 관심 밖의 아이라고 여겼지만 난 다르게 대했다. 그 녀석의 행동은 타지역 생활의 외로움과 소외감 그리고 약간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정해 버리는 주변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와 기숙사라는 공간에서 난 오히려 정이 두터워 졌고, 그와의 만남은 시간이 갈수록 기쁜날의 연속이었다. 2학년때 그에게도 꿈이 생겼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생활을 열어나가는 의젓한 사생이 됐다.
고3이던 지난 가을에 우리는 대학 진학에 힘을 모았고 준비도 철저히 했다. 유연한 사고와 순수한 성품의 소유자인 그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사감 선생님 같은 교사가 되겠다고 노랫말처럼 말하곤 했다. 많이 부족한 내가 그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였는지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이루겠다는 꿈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고 원서도 접수했다.
그 결과는 합격이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역사교육과에 진학했다. 외롭고 좀 다르게 생각하는 아이를 천천히 기다려주고 친구처럼 마음을 이해해 준 것 뿐인데, 오늘 졸업식장에서 본 그의 자신감은 참 놀라웠다. 오늘따라 그녀석도 멋있었고, 나 또한 겁없는 초년 사감의 규칙 어김이 조금은 넓은 교육 방법의 수단이 됐음을 또 하나의 자긍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감선생님, 학교에서나 기숙사에서나 희망과 꿈을 열어주는 눈높이 힐링 계속하셔야 돼요." 무거운 과제를 주면서 또한번 포응을 하는 것이다. "그래 훗날 다름을 이해하고 기다려줄줄 아는 진실한 청출어람의 제자가 되거라." 마지막 인사와 함께 손을 잡고 희망의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