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답사 일번지' 전남 강진에 있는 강진장이다. 지난 4일이다. 대목을 앞두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슬렁 어슬렁 장터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초입부터 무리란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치이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차분히 앉아서 구경은커녕 장꾼들에게 말을 걸기조차 머쓱해진다. 물건의 품새도 어깨너머로 따져야 할 정도다.
장터의 번잡스러움은 강진읍을 관통하는 보은로 3길을 지나 4길로 이어진다. "리어카요. 리어카. 갑시다. 가." 장꾼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섞여 있는데도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서도 전을 부치는 할머니, 가래떡을 써는 아낙네의 모습이 정겹다. 설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강진장은 상설시장이다. 매 4일과 9일엔 몸집을 키워 오일장으로 열린다. 장터는 갯것을 파는 수산물동과 농산물을 파는 종합동으로 나뉜다. 수산물동에 싱싱한 갯것들이 넘쳐난다. 평소 보기 어려운 상어도 보인다. 설 차례상을 겨냥해 나온 것이다.
겨울 강진장의 품격은 매생이가 높여준다. 여러 말이 필요 없는 강진의 대표 수산물이다. 매생이 한 재기(덩이)에 4000원이다. 세 재기에 1만 원이다. 마량에서 매생이를 가져온 김미순 할머니의 장사 수완은 '떨이'다. "떨이여!" 하고선 그것이 팔리면 한켠에 숨겨뒀던 매생이를 또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또 외친다. "떨이여!"
장터의 흥을 돋우는 일도 김 할머니가 맡고 있다. "설에 미운 사우 오거든 매생이 국으로 골탕 한 번 먹여봐." 장터는 순간 웃음바다로 변한다. 끓어도 뜨거운 김이 오르지 않는 매생이의 특성을 감안한 우스갯소리다.
앳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처음 장터에 나왔다는 김미선씨다. 몸이 편찮은 어머니를 대신해 나왔단다. 그 마음이 오지다. "싱싱한 생선 사세요." 목소리가 모기만 하다. 1미터도 못 가서 인파의 웅성거림에 묻히고 만다.
바로 옆 함지박에선 숭어가 펄떡인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싱싱해 보인다. 쟁반 위의 우럭도 두 눈을 껌뻑거리다. 그 모습에 엄마의 등에 업혀있던 아기가 자지러진다.
푸성귀를 파는 종합동으로 향했다. 갓 따온 신선한 채소와 쌀, 녹두, 동부, 팥 등 곡물이 어우러져 있다. 냉이와 보리도 벌써 나왔다. 농산물이 걸다. 장터 구석에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물건을 펼쳐놓고 있다. 부드럽고 알싸한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향이 죽이제. 쑥이요. 지난 봄에 뜯어서 솥에 디쳐 갖고 동구로 찧어 말린 것이여. 설이라 갖고 온 것이여." 박말자 할머니의 얘기다.
강진장은 외형상 거북선 모형을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을 통해 말끔하게 단장했다. 덕분에 매출이 2배 가까이 올랐다. 단숨에 전국 시장 상인들의 견학코스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에만 전국 46개 시·군 시장 상인들이 다녀갔다.
강진장이 이처럼 잘 나가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게 소비자를 위한 배려다. 바로 '삼진아웃제'다. 친절과 청결하지 않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파는 상인을 장터에서 퇴출시키는 제도다. 구호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실제 최근 재계약에서 2명이 삼진아웃제에 걸렸다.
자동차 경품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시골 장터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전국의 재래시장에서 처음 시도한 행사다. 올해로 벌써 4회 째를 맞았다. 1만 원 어치를 사면 경품권 한 장을 준다. 문화 행사도 다채롭게 준비하고 있다. 장터에서 철따라 야생화 전시회, 다문화 가족 노래자랑, 다문화 음식 만들기 경진대회도 연다.
"장흥이 한우로 승부를 걸었잖아요. 우리는 강진의 친환경 수산물로 승부를 걸려고 합니다. 현재 건설 중인 먹거리 타운에 한정식 식당과 도자기 판매장도 마련하고. 노인을 놀이터도 만들고요. 또 악도 쓰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도 만들려고요." 박이세 상인회장의 말이다. 그만큼 소비자를 최우선에 두고 변신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강진장의 변신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남도 발행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