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고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제9처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찾아갈 수 있다. 그것은 이 지역부터 완전히 기독교 지역이 되기 때문이다. 8처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 큰 마당이 나오고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면서 교회 이름을 보니 세인트 헬렌 콥틱교회다. 이곳이 바로 9처다. 이곳에서 예수는 세 번째 쓰러진다.
콥틱교회는 가톨릭이나 동방정교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선 십자가부터 다른 모습이다. 십자가의 가지 끝에 다시 십자가를 만들었다. 교회 안의 장식과 성화도 상당히 아라비아적이고 이집트적이다. 문양에 아라베스크풍이 느껴지고, 인물의 모습에서는 소아시아풍이 느껴진다. 색깔도 비잔틴풍의 황금색보다는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 같은 원색을 많이 사용했다. 로마 가톨릭이나 동방정교가 상대적으로 도시적이라면, 콥틱교회는 시골적이라고 할까?
9처를 나오면 다시 큰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이스라엘 군인들도 있다. 군인들의 표정이 아주 밝고 자유분방해서 큰 긴장감을 느낄 수 없지만, 이곳이 문명충돌로 일컬어지는 종교 갈등이 있는 곳임을 상기시켜 준다. 이 광장 뒤로 성묘교회가 있다. 이 성묘교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예루살렘 최고 최대의 기독교 성지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의 고통을 느끼다바로 이 골고다 언덕, 즉 성묘교회에 제10처부터 제14처까지가 있다.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지금 성묘교회의 계단이 되었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제단이 갖춰진 예배공간이 나온다. 이 공간의 입구 부분에서 예수는 옷이 벗겨진다. 그러므로 이곳이 제10처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대 쪽으로 가다 보면 제대 오른쪽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누인 예수상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제11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이야기는 4복음서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그 중 <요한복음>이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극적이다. 그것은 <요한복음>이 가장 늦게 쓰여졌을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병사들의 대화와 예수의 말이 아주 자세히 나온다. 요한이 실제로 예수의 죽음을 목격했을까, 아니면 들어서 아는 걸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단 병사들은 예수의 옷가지를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서 한 몫씩 차지하였다. 그러나 속옷은 위에서 아래로 통으로 짠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의논 끝에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든 제비를 뽑아 차지하기로 하자' 하여 그대로 하였다. (요한복음 19장 23-24절)""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제자에게는 '이 분이 너의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복음 19장 25-27절)"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현장을 목격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결국 죽고 말았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곳이 바로 제12처며, 성묘교회 2층 제단 위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모습을 성묘교회 2층 제단 뒤에 처절하게 표현했다. 죽은 예수 좌우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두 여인이 지켜보고 있다. 이때의 광경을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이 거의 똑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낮 12시부터 온 땅이 어둠에 덮여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다. 3시쯤 되어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티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뜻이다. […] 예수께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마태오 복음 27장 45-51절)"
예수의 죽음을 목격한 우리는 계단을 내려온다. 우리가 올라갔던 계단과는 다른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내려오면 비교적 넓은 성묘교회 1층이 나온다. 이곳에서 바로 예수가 십자가로부터 끌어내려졌다. 예수는 반석 위에 누워졌을 테고 당시 풍습대로 염을 했을 것이다. 그 반석이 지금도 남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만지며 기도도 하고 탄식도 한다. 이곳이 바로 제13처다.
이제 죽어 묻힌 무덤 하나만 남았다. 무덤은 반석 바로 옆에 있는데, 이 무덤 위에 작은 교회(Aedicula)를 하나 지었다. 그러므로 제14처를 보려면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우리 회원 중 몇이서 한 팀이 되어 줄을 선다.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역사와 종교, 그리고 문화를 공부하는 인문학자로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 30분 정도 기다리고 나서야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한 번에 8~9명 정도 들여보낸다. 왜냐하면 예수의 무덤이 있는 공간이 아주 좁기 때문이다. 3명 정도 들어가면 딱 맞는 크기다. 무덤 위에는 휘장이 쳐지고 그곳에 XPICTOC ANECTH이라고 쓴 그리스 문자가 보인다. 이곳이 그리스 정교회 관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료를 아무리 찾아도 그 문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14처를 다 돈 우리는 성묘교회 밖 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시간이 벌써 12시다. 4시간 동안 예루살렘 올드시티를 쏘다녔다. 그런데 하나도 피곤한 줄을 모르겠다. 예루살렘의 문화유산을 찾아 즐겁게 다녔기 때문이다. 이제 무슬림 지역을 지나 다시 통곡의 벽 광장으로 갈 예정이다. 그러고 보니 네 시간 동안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절반쯤은 본 셈이다.
하나의 예수, 네 편의 드라마: 복음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한 책이 신약 성서 중 네 복음서다. 이들 책은 예수가 죽은 지 5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의 기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비교적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 책의 내용과 형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이들 복음서를 문학 장르로 이야기하면, 시와 소설이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 그래서 필자는 이 네 복음서를 예수의 삶을 극적으로 구성한 네 편의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이들 복음서를 쓴 사람과 쓰여진 시기에 대해 알아보자. <마태오 복음>은 12사도 중 한 사람인 마태오에 의해 60년대 중반 쓰여졌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의 사도로 로마에서 베드로의 보좌역을 했던 마르코에 의해 50년대 후반 쓰여졌다. 그러므로 4복음서 중 <마르코 복음>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루가 복음>은 유대교로부터 개종한 기독교도인 루가에 의해 50~61년 사이에 쓰여졌다. 루가는 바오로와 함께 전도여행을 한 사람이다. <요한 복음>은 12사도 중 한 사람인 요한에 의해 85년에 쓰여졌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이 가장 늦게 쓰여졌다.
그리고 이들 책이 겨냥하고 있는 독자도 다르다. <마태오 복음>은 이스라엘 지역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썼다. <마르코 복음>은 이교도들을 대상으로 썼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도 아니었다. <루카 복음>도 유대인이 아니면서 이교도인 사람들을 겨냥했다. <요한 복음>은 유대인과 이교도들을 대상으로 썼다. 그들 복음사가들이 겨냥하고 있는 독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 복음서의 양식이나 강조점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마태오 복음>과 <요한 복음>은 유대인 지식인들과 논쟁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설교나 토론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 복음>에서는 책을 쓴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이에 비해 비 유대 이교도들을 대상으로 한 <마르코 복음>과 <루가 복음>은 좀 더 쉽고 단순한 문체를 사용했고, 내용이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데 손을 댄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루가 복음] 1장 1-4절)"이들 복음서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고 구세주(Messiah)다. 또 신이 된 인간이다. 그는 유대교의 랍비와 같은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의 구실도 했다. 그는 또한 인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그들의 짐을 다 지고 간 사람이다. 예수는 전지전능하고, 희생정신이 강하며, 스승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무슬림 거주지역을 지나가다
우리는 아침에 출발한 둥 게이트에서 버스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러려면 병원과 양로원으로 사용되는 무리스탄을 지나 무슬림 지역으로 가야 한다. 예루살렘 올드시티는 전체적으로 길이 좁고 복잡하다. 그런데 그 좁은 길 양옆으로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러므로 관광객이 많을 때는 다니기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요즘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정정이 불안해서인지 여행객이 적은 편이다.
이곳 가게에서는 카페트, 공예품, 과일, 기념품 등을 판다. 그런데 우리 팀의 여행 목적이 답사이기 때문에 그런 가게에 들를 여유가 없다. 이들 가게를 지나 한참을 내려가자 이번에는 무슬림과 유대인 경계지역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경찰이 검문을 한다. 우리는 유대인 골목을 지나 동쪽으로 간다. 그러자 어느 순간 문이 보이고, 그 문을 통과하자 통곡의 벽 광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금까지 구 시가지를 다니며 답답했던 마음이 일거에 사라진다. 사실 구 시가지에서 주차장과 운동장을 제외하고 탁 트인 공간이 통곡의 벽 광장과 바위돔 사원 주변 밖에는 없다. 걷고 또 걸어 찾아온 통곡의 벽에 이제 볕이 강하게 비치고 있다. 아침 일찍에는 동쪽에 해가 있어 벽이 어두웠는데, 이제는 아주 밝아졌다. 그리고 통곡의 벽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특히 유대인 학생들이 많다. 우리는 서둘러 둥 게이트로 나간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