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2012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로 고상만 신은미 안호덕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은 한 해 동안 최고의 활동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3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만원, 그리고 부상으로 뉴아이패드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3 2월22일상'과 '2012 특별상', '2012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그는 글을 쓰는 이유가 분명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모두가 기록자가 돼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권력자가, <조선일보>가, 또는 그 누군가가 멋대로 남긴 기록이 역사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기사를 쓰는 건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다.
스스로 기록자가 되기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안호덕 기자를 만났다. 그는 2012년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다.
만만치 않은 그의 청춘사안후덕, 아니 안호덕 기자는 인상이 후덕하다. 무슨 말을 해도 허허 웃어줄 것 같은 푸근한 옆집 형의 얼굴이다. 하지만 그의 기사는 다르다. 그의 기사에는 집요함이 읽힌다. 아마도 기사를 쓰는 그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터. 먼저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해 물었다. 언젠가, 대학시절 그의 동료가 공안기관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1991년 복학한 뒤 인문대 학생회장을 했어요. 그해 4월 26일에 명지대생 강경대가 죽고, 5월 1일 학교 민주광장에서 집회를 준비했죠. 한창 마이크를 잡고 사전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큰 불길이 달려오는 거예요. 그게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안호덕 기자의 후배 김영균이었다.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에 맞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후배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 숨을 거뒀다. 이틀 전인 4월 29일에 전남대생 박승희가 분신한 데 이어 두 번째로 벌어진 일이고, 이른바 분신정국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을 비롯해 그해 봄에만 9명이 더 숨졌다.
"영균이 장례식이 끝나고 친구 한 명이 경찰에 잡혀가서 20여 일 동안 고문을 받았어요. 처음 10여 일은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하려는 정황이 있었어요. 분신의 배후를 밝히라고 한 거죠. 그걸 부인하니까 결국 나중에는 조직도를 그려놓고 사람 이름을 채워 넣으라고 강요했어요."결국 그 친구는 고문에 못 이겨 조직도에 동료들의 이름을 적어 넣었고, 그렇게 '반미애국학생연합'이라는 가짜 조직이 만들어졌다. 그 사건으로 안 기자도 수배가 되었고, 3년 동안 집에 가지 못했다. 맏아들로서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밤 늦게 집을 찾았다가 형사들을 피해 30리를 걸어서 도망쳤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사건이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가장 힘들었을 때였어요."생활경제 전문 기자 안호덕
다행히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수배가 풀렸다. 그 뒤로 20여 년이 흐르는 사이 그는 결혼 해 세 딸을 낳았고, 용산전자상가에 가게를 차려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다. 그는 컴퓨터 관련 장비 도매업을 하고 있다. 어쩌다 <오마이뉴스>와 인연을 맺었을까.
"2007년에 <오마이뉴스>에서 6.10항쟁 20주년을 맞아 기사 공모전을 했어요. 그때 제가 안동에서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기사를 썼죠. 그때 최우수상을 받았어요."첫 기사로 주목을 받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원래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비록 철학과를 가긴 했지만 대학시절에도 문학회에서 꾸준히 활동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모 언론사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계속 글을 썼어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관리가 소홀해지는 것 같아 공모를 계기로 <오마이뉴스>로 갈아탔죠."그는 지금까지 모두 143편의 기사를 썼다. 다양한 종류의 기사가 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전공 분야는 생활경제다.
"용산상가는 5월 쯤부터 에어컨을 틀어요. 한 번은 우리 상가에서 전기 관리하는 분에게 물었죠. 에어컨을 이렇게 일찍 틀면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그 분이 여긴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서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서 의문을 가지게 됐죠. 대체 누진제가 뭐길래 집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데, 여긴 별로 덥지도 않은 5월부터 에어컨을 틀어대는지."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전기요금체계에 대한 그의 공부가 시작됐다. 정보공개센터라는 시민단체를 통해 정보공개청구도 벌써 여러 건 했다고 한다. 과연 그의 설명은 달랐다.
"전기요금 문제는 결국 한전의 민영화와 맞물린 문제예요. 한국전력이 있고, 한국전력거래소가 있고, 각 발전소가 있는데, 문제는 전력거래소가 전기를 사오는 발전소들이 점점 민영화된다는 점이죠. 민영 발전소에서는 더 비싼 가격에 전기를 사와야 하거든요. 민간기업의 최소운영비를 보존해줘야 하는 법 때문이에요."그는 인터뷰를 하기 바로 며칠 전 정부가 발표한 6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새로 건설할 18기의 발전소 가운데 12기를 삼성, SK, GS 등 8개 대기업이 짓도록 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우리가 모르는 새 곳곳에서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면 한전이 계속 적자를 보거나 전기요금을 올려 적자를 메울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수급불안정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전력의 공공성을 뿌리째 흔드는 위험한 과정이어서 심각합니다. 그런데 이걸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없어요." 그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민영화는 계속 될 것이라 우려했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감시의 끈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또 그는 최근 가격 인상으로 서민가계에 폭탄을 안긴 도시가스 요금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한 번은 전기요금에 대해 쓴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뜬 적이 있는데, 댓글이 800개나 달렸어요. 대부분이 고맙다는 댓글이었는데, 그 댓글들을 보면서 '아, 진짜 내가 할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비단 전기요금만이 아니다. 대형마트 문제, 물가와 환율 문제 등 그야말로 생활경제 전반에 걸쳐있다. 왜 생활경제일까.
"대기업은 승승장구하는 데 왜 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했어요. 한 번 알아보고 싶었죠. 그런 것들을 연구하다 보니까, 대형마트, 물가, 환율 등등 온갖 경제 요소들이 서민에게 너무 불리하게 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시민기자의 교과서, 안호덕 기자벌써 몇 년째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그는 자신이 겪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기사를 쓰다 현장에서 공무원과 대판 싸우기도 했다. 또 집에 도둑이 든 것을 계기로 골목길에 CCTV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일로 그동안 예산 부족을 들며 CCTV 설치에 난색을 표하던 지자체의 마음을 돌려세운 일도 있다. 그 일로 동네 사람들이 가끔 민원성 기사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며 안 기자는 웃었다.
"내가 현장에서 맞닥뜨리고 쓸 수 있는 기사니까, 또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기사가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가끔 싸우기도 하고 항의전화도 받지만,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어요. 공부하는 것도 재밌어요."그가 생각하는 생활경제 기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출발해 독자들이 자기의 문제로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생활경제 기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주부들이 장바구니 문제를 다루는 기사들을 많이 쓰면 어떨까요?"그는 어느새 다시 '운동'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 각자 자기 몫을 해내가는 것이 운동이라고 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라면 그것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을 하면서 '의식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글을 쓰는 이유예요. 기사를 읽는 10만 명 중 단 몇 명이라도 공감을 한다면 그걸로 족합니다."안호덕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치 '시민기자 교과서'를 읽은 기분이었다. 기사를 쓰는 이유도, 또 기사를 쓰는 태도와 방식도 그는 흠잡을 데가 없어보였다. 앞으로 그의 기사가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길 빈다. 아울러 안후덕, 아니 안호덕 기자의 건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