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나간 다마스쿠스 게이트 체험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야파(Jaffa) 게이트 옆을 지났다. 그런데 석양을 받은 성벽과 다윗탑이 너무 아름답다. 저녁을 먹고 난 나는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야경을 보기 위해 걸어서 헤롯 게이트 쪽으로 간다. 우리가 묵은 그랜드 코트 호텔에서 살라딘 거리를 따라 가면 헤롯 게이트가 나온다.
헤롯 게이트는 북문인 다마스쿠스 게이트의 동쪽에 있다. 그러므로 북소문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헤롯 게이트를 지나 올드시티로 들어간다. 그런데 밤이어서 그런지 가정의 불이 대부분 꺼졌다. 그리고 길도 꼬불꼬불해서 길과 방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처음 가는 지역이고, 길도 잘 모르니 불안한 마음이 든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무슬림 주택지역이다.
정확한 지도가 아니라 파노라마 지도이다 보니 길이 그래픽으로 처리되었다. 그냥 방향만 서쪽으로 잡고 다마스쿠스 게이트 쪽으로 걸어간다.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가게 문을 닫고 들어간 상태다. 사람의 통행이 많고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람들에게 두어 번 길을 물어서 겨우 다마스쿠스 게이트로 나올 수 있었다.
다마스쿠스 게이트는 예루살렘 성벽 북문으로, 성문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성문이 다마스쿠스 게이트란 이름을 얻은 것은, 이 성문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히브리어 이름은 Sha'ar Shkhem( Shechem Gate)이니 세켐으로 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아랍어 이름은 Bab al-Amud(Gate of the column)이다. 그것은 실제 성문이, 기둥이 세워진 건물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문의 밖으로 돌출된 부분을 만들었고, 성문 위에는 공격과 방어용 보루 같은 것을 만들었다. 이 성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세워진 것은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던 1537년이다. 그리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으나, 2011년 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야간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는 다마스쿠스 성문은 정말 아름답다. 이 성문을 예루살렘 성벽의 정문이라고 부를 만하다.
예수 승천교회
아침에 일어나보니 기온은 좀 낮지만 공기가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파란 하늘에 날씨까지 받쳐준다. 우리는 오늘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 올드시티 동쪽 올리브산을 답사할 예정이다. 이 지역 곳곳에 예수의 마지막 발자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올리브산은 성경에 감람산으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는 스코푸스(Scopus) 산에 있는 히브리 대학교를 지나 예수승천교회를 찾아간다.
예수는 부활한 지 40일 만에 올리브산의 작은 동굴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당시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비밀리에 모였고,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 이후에야 이곳에 기념물이 세워질 수 있었다. 390년 비잔틴 양식으로 예수 승천교회가 처음 세워졌다. 이때 교회의 이름은 엘레오나 바실리카(Eleona Basilica: 자비 교회)였다. 그 후 십자군과 술탄 살라딘과의 전투에서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지만, 8각형의 영묘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영묘는 마치 비둘기 집처럼 원뿔형이다. 8각형의 한 변이 3m이며, 위로 올라가면서 돔 형태를 보여준다. 서쪽에 있는 문을 통해 영묘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이 마치 원통형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예나 지금이나 예수의 발자국으로 알려진 바위 흔적이 남아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예수가 승천하면서 남긴 마지막 흔적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이 흔적을 많이 만져서 반들반들하다.
이곳은 또한 무슬림의 모스크로도 쓰였기 때문에 남쪽 벽에 미흐랍이 만들어져 있다. 유대인들도 기원전 7세기 선지자 훌다(Huldah)가 이곳에 묻혔다고 생각한다. 예수 승천교회 주변으로는 벽이 감싸고 있어 교회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아침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별로 없다. 내부와 외부를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우리는 예루살렘 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간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예루살렘
전망대 주변에는 벌써 관광객도 많고 상인들도 꽤나 많이 보인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들도 벌써 나와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올리브산의 유대인 공동묘지부터 기드온 골짜기, 성전산과 구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가까운 올리브산 자락이 기드온 골짜기와 만나는 지점에는 조금 있다 찾아갈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만든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 예수눈물교회(Dominus Flevit Church)가 있다.
구시가지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바위돔 사원이 가장 눈에 띈다. 돔이 황금빛으로 반짝이기 때문이다. 그 왼쪽으로 알 아크사 사원이 보이고, 그 뒤로는 성묘교회의 돔이 보인다.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동쪽 성벽은 높이가 30m가 넘는다. 이 성벽은 굴곡이 없이 직선으로 뻗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골든 게이트가 있고, 그 오른쪽에 라이언 게이트가 있다.
구시가지 뒤로는 신시가지의 고층 빌딩이 보이는데, 이것은 다윗 타워, 시티 타워, YMCA 건물 등이다. 신시가지는 현재도 계속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125㎢의 넓지 않은 면적에 80만 명이 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주변 지역까지 합치면, 100만 정도의 인구가 대도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에는 20만 명 정도의 팔레스타인 사람도 포함된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의 성지다.
겟세마네 만민교회이제 우리 일행은 전망대에서 버스를 타고 기드온 골짜기 쪽으로 내려간다. 큰 버스 같으면 온 길을 되돌아가야 하지만 우리 버스는 소형이어서 좁은 길을 잘도 내려간다. 잠시 후 차는 겟세마네(Gethsemane) 동산 앞에 선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동산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정원이다.
정원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눈에 띈다. 이 나무들이 예수가 살았을 때부터 있었다고 하니 수령이 2000년이 넘는 셈이다. 나무의 굵기나 주름 등으로 보아 오래된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2012년 이탈리아 과학자들의 탄소측정 결과, 수령이 900년 정도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현재 여덟 그루 정도 남아 있다.
올리브 나무 정원을 지나면 겟세마네 만민교회(Church of All Nations)가 있다. 서쪽의 정문으로 가다보면 입구 앞에 예수가 고통스럽게 기도를 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복음서 속 인간 예수는 체포되기 직전 고통과 불안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신뢰하는 것으로 나온다. 조형물 옆에는 마태오 복음 26장 39절의 구절이 영어와 독일어로 적혀 있다. 이것 역시 하느님 아버지 뜻을 따르겠다는 예수의 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고자 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마태오 복음 26장 39절)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 제대 앞에 예수가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바위가 있다. 교회 바닥에는 비잔틴 양식의 문양이 깔려 있고, 천장에는 사방팔방 천사들이 그려져 있다. 이 교회는 로마 가톨릭에서 1919~1924년 사이에 지어 봉헌했다. 이 교회가 만민교회 또는 만국교회라 불리게 된 것은, 교회를 짓는 데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부를 했기 때문이다.
교회를 나오며 정면 코린트식 기둥 위 박공 그림을 올려다보니 예수가 무지한 인간들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을 그 위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이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 만민교회에서는 기드온 골짜기 건너편으로 예루살렘 성벽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그런데 하늘나라로 가는 골든 게이트(황금의 문)는 여전히 닫혀 있다. 인간들이 모두 구원을 받는 그 어느 날, 그 문은 열리려는가 보다. 우리는 그 문을 열지 못하고 결국 예루살렘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