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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입니다…(중략)…눈물을 질질 잘 짜기도 하고, 땅을 치며 통곡을 잘하기도 합니다. 물론 술, 담배도 잘 하지요. 단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답니다. 어떤 때는 마음이 너무 울적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훌쩍 뛰어내려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 고민의 주인공은 모과입니다. 썩어 가는 모과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 이에 빗대 모든 성공은 실패를 통해 이뤄진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 '실패에는 성공의 향기가 난다'란 동화의 한 대목입니다. 이 동화를 쓴 정호승 시인이 최근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 마디>(도서출판 비채)를 내놨습니다.

30만 독자가 읽었다는 베스트셀러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한 마디>의 저자, 그가 7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산문집인 만큼 보도자료 또한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지 않았던 작품만을 모은 신작 산문집"이란 말, 확실히 구미를 당기게 만들었습니다. 산문 76개를 담은 484페이지가 주는 묵직함도 든든했습니다.

그 잔혹한 '이분법'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중국 음식점 배달원으로 일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다가 2011년 교통사고로 숨진 고 김우수씨. 그의 삶은 영화 <철가방 우수氏>로도 제작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정호승 시인은 책에서 "김우수씨 나눔의 삶이 바로 일류의 삶이었다"며 일등보다는 가치 있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음식점 배달원으로 일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다가 2011년 교통사고로 숨진 고 김우수씨. 그의 삶은 영화 <철가방 우수氏>로도 제작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정호승 시인은 책에서 "김우수씨 나눔의 삶이 바로 일류의 삶이었다"며 일등보다는 가치 있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CJ E&M 영화부문

허나 그 첫 페이지를 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2010년 4월 <동아일보>에 '절망보다 분노하라, 울기보다 다짐하라'는 제목의 특별기고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천안함 사건만이라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이가 또한 정호승 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통렬히 느꼈습니다. 머뭇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정호승'이란 이름이 주는 기대감을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 일흔 네 마디에 담겨 있을 '자살 사회'에 대한 통찰도 궁금했습니다. 성공 아니면 실패, 이익 아니면 손해라는, 이 잔혹한 '이분법'이 수많은 생명을 파괴하고 있으니까요.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 첫 단계부터 살펴봅니다.

"인생에 형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대한 가장 큰 오해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될 뿐입니다. 인생은 엄숙한 선택의 광장이므로 인생이라는 미래는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움직입니다. 인생에는 정답도 없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게 인생의 정답입니다."(인생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된다)

많은 고통이 '타인의 정답'에서 출발합니다. 고속도로를 타야만 한다고 등을 냅다 떠미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삐뚜루'나 '갈지 자'는 손가락질 받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정호승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사는 게 곧 인생의 형식"이며 "내가 걸어가는 길이 바로 인생의 길"이라고 반박합니다. 결국 인생은 나만의 정답을 찾는 과정이란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 이익과 손해, 희망과 절망 그리고 오늘과 내일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우주인들.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에드윈 올드린 주니어. 정호승 시인은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실패했던 사람 우대합니다'란 조건을 내걸었던 일화를 예로 실패를 성공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우주인들.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에드윈 올드린 주니어. 정호승 시인은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실패했던 사람 우대합니다'란 조건을 내걸었던 일화를 예로 실패를 성공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 google.com

그런데, '나만의 정답'을 찾는 그 과정 순탄할 리 없습니다. 때로는 길을 잘못 들어서고, 때로는 자빠지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고통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정호승은 고통을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합니다. "운명과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 고통도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한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잔혹한 '이분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두 번째 단계입니다.

정호승은 "인생 전체를 바라보면 실패나 성공이나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며 "모든 성공은 실패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합니다. "꿈이 있기 때문에 실패가 있는 것"이고 "내 꿈의 크기나 높이 때문에 현재 실패라는 옷을 입게 되는 것"인 만큼, "실패를 받아들이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에 길들여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익과 손해 또한 '한 몸'입니다. 정호승은 "인생은 잃는 것과 얻는 것으로 얽혀 있다"며 따라서 "잃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희망과 절망도 그러합니다. 그는 "실패가 성공인 것처럼 절망 속에 이미 희망이 들어 있다"며 "그런데도 우리는 희망과 절망을 구분해서 생각하고 희망을 버리려 한다"고, "희망은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마디를 던집니다. "내일은 없다, 미래에 매달리지 말라"는 법정 스님 말씀도 매한가지 이치로 대합니다.

"오늘 속에 이미 내일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이라는 말은 동의어로서 서로 한 몸을 이루는데 그것을 자꾸 구분해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일은 이미 오늘 속에 존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내일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암수가 한 몸을 이루는 달팽이처럼 우리의 삶과 몸에도 오늘과 내일이라는 암수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지금이 바로 그 때다)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2010년 11월 미국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에 960번 도전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연과 함께 '집념과 끈기의 귀감'으로 소개된 차사순 할머니. 정호승 시인은 책에서 이 사례를 언급하며 "인생 전체를 바라보면 실패나 성공이나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당시 국내 보도 화면
2010년 11월 미국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에 960번 도전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연과 함께 '집념과 끈기의 귀감'으로 소개된 차사순 할머니. 정호승 시인은 책에서 이 사례를 언급하며 "인생 전체를 바라보면 실패나 성공이나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당시 국내 보도 화면 ⓒ 네이버 뉴스 화면

이제 잔혹한 '이분법'에서 자유로워지는 세 번째 단계, 달리 표현하면 '걱정과 비교'에서 벗어나기입니다. 우선 걱정과 비교를 불러일으키는 '단골 손님', 물질을 대하는 자세를 볼까요. 정호승은 "돈은 생계가 보장되는 단계만 지나면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사실 저의 가난은 부족에서 오는 가난이 아니라 더 많기 갖기를 원하는 데서 오는 가난"이라고 '고백'합니다. 욕심이 가난의 '출처'라는 것이지요.

'속도'에 대한 팁에도 귀 기울여볼 만합니다. 정호승은 "자기 속도에 충실하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이다. 다다르고 싶은 목적지에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라면서 오히려 "이런 고속의 시대일수록 자기만의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도 '자기 속도'에 불만이 여전하다면 다음 이 '한 마디'는 어떨까요.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이 말은 지금 내가 풀을 베고 있다면 풀 베는 일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베느냐, 왜 내게 이 일이 주어졌느냐, 정말 하기 싫다' 등의 생각을 하지 말고 오직 풀을 베는 일에만 몰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정호승은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그 목적을 자꾸 생각하면 조급해지고 힘들어진다"면서 "그것은 과정의 소중함보다 목적에 대한 욕심과 욕망이 앞섰기 때문이다. 욕심은 과정을 힘들게 하거나 파괴시킨다"고 단언합니다. 결국 이 책에 실린 '74마디'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만의 정답을 찾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한 마디'로 돌고 도는 셈입니다.

이 책에 잘 어울리는 속도는 '76일'

 정호승 시인이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 마디> 이후 7년 만에 펴낸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 마디>
정호승 시인이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 마디> 이후 7년 만에 펴낸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 마디> ⓒ 도서출판 비채

물론 어디선가 한 번 쯤 들었음직한 뻔한 '한 마디들'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마디들의 '공감 효과'가 이 책에서는 꽤 높은 편입니다.

우선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들이 설득력을 높입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존경하는 스님이나 신부님의 말"을 비롯해 자신이 겪은 일화, 기억할 만한 뉴스, 우화, 시 등이 풍부하게 실려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자신의 시 22편을 산문에 함께 녹임으로써 시의 이해도도 높이고 있는데요. 주제나 시어 선택과 관련한 해설서 또는 '교과서' 구실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불어 저자 스스로 자신의 실수 또는 과오를 드러내는데 그다지 인색하지 않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어느 대기업 대표를 대신해 임직원들을 위한 헌정시를 썼다는 일화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일 수 있습니다. "나 자신도 감동 받을 수 없는 시를 오직 시집을 내기 위해 쓰는 경우도 있다"고 했고, "남의 작은 잘못에 크게 화를 낸 일들은 미안하고 부끄럽다"고도 고백합니다.

이렇듯 저자 스스로를 내려놓으니 그 '한 마디'의 설득력은 오히려 높아지는 효과로 나타납니다. 다만 천안함을 대하는 '분노'의 다름은 여전합니다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는 '날'을 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살 사회'에 던지는 '직구'와 통했으니까요.

끝으로 이 책을 꼭꼭 잘 씹어먹는 방법을 덧붙입니다.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면서 아쉬웠습니다. 그보다는 곁에 가까이 두고 매일 '한 마디씩' 대하는 것이 훨씬 좋을 듯합니다. 그래봤자, 다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76일. 이 책에 훨씬 더 어울리는 '속도' 같습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비채(2013)


#정호승#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자살#김우수#차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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