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8일은 좁고 매캐한 일터에서 하루 14시간 이상을 기계처럼 일해 온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역사적인 날입니다. 차별과 폭력, 빈곤에 맞서 들불처럼 일어섰던 그 날의 외침은 매년 3월 8일이면 전 세계인의 가슴 속에 여성의 권리를 되새기는 불씨로 살아나고 있습니다. 105주년 여성의 날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지금,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태어나면서부터 좌절을 겪는 두 나라의 여성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차별과 억압에 신음하는 인도 달리트 여성
"최근 집주인이 강간에 저항하는 달리트(인도 신분제도 하의 불가촉천민) 여성의 얼굴에 염산을 뿌렸어요. 강간에 저항하던 한 소녀는 팔이 잘리는 일도 있었어요. 펀잡주에서는 달리트인 아버지가 딸을 강간한 사람들을 고발하자 범인의 일족들이 아버지의 팔을 자르기도 했어요. 다른 계급의 남성들에게 성적 착취를 당해도 침묵해야만 했던 집단, 그들이 달리트 여성입니다." - 부나트 화티마 나티산 (51, 인도 타밀나두 여성포럼 대표)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카스트제도의 지배력이 여전히 공고한 인도에서 달리트 여성으로 살아가기란 가파른 절벽 위를 걷는 것처럼 수많은 위험 앞에 놓이게 됩니다. 달리트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의 네 계급으로 구성돼 있는데 달리트는 카스트 계급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바깥 세계의 사람들이면서 최하위층의 사람들입니다. 인도 전체 인구의 16.03%에 해당하는 1억6000만 명에 이르는 달리트들은 직업도 가장 비천한 일인 시체처리·오물수거·가죽가공·세탁 등에 많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달리트는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더러워진다고 여겼기 때문에 상층 카스트들이 사용하는 공동우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마을에서 떨어진 달리트로만 구성된 공동체에 살고 있습니다. 달리트 여성은 신분상의 차별을 넘어 성적 억압까지 받고 있지만 언론의 관심이나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을공동우물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주민들은 심각한 식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대대로 집안의 물은 여성들이 관리해오던 전통에 따라 달리트 여성들은 매일 3~4km를 걸어 물을 구하러 갑니다. 특히, 물을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외진 곳이 많아 달리트 여성과 여아들이 상층 카스트 남성들의 폭력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마을 주민들이 항의라도 했다가는 끔찍한 보복을 당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 긷는 데 하루 반나절 이상 걸리다보니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가난과 차별의 악순환은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키는 우물, 미래를 꿈꾸게 하는 교육
달리트 공동체의 우물 설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습니다. 한국희망재단과 인도 현지단체(HRDF)가 협력한 우물사업은 2008년부터 마을 별로 우물개발, 저장탱크, 핸드펌프 등을 설치해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해왔습니다. 2012년에만 5개 마을에서 우물사업이 시행되었고, 이 덕분에 수많은 여성들이 식수난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물을 길으러 가는 과정에 도사렸던 수 많은 폭력의 위험, 식수난 때문에 배움을 포기해야 했던 시련에서 한 발 벗어난 것입니다.
마을의 우물과 물탱크는 마을 단위 주민 자치운영조직으로 이루어진 식수관리위원회에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매월 가구 당 25~50루피(500원~1000원) 가량을 우물 수리 및 관리를 목적으로 납부하고 있고 날짜별 우물 관리내역도 꼼꼼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10명에서 20명 사이로 구성된 식수관리위원회에는 마을에서 SHG(self-help group, 여성자조모임)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여 온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부 마을의 경우 여성 이장까지 나올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아들의 경우도 마을 우물이 생기면서 학교 결석률이 줄고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문맹률이 줄고, 사회성도 높아졌으며, 전문직 여성이 되겠다는 다부진 꿈도 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마을 별로 설치된 환경공부방으로 옹기종기 모입니다. 공부방에서 환경교육, 인권교육, 예체능 수업, 보충 수업 등의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며 매일 매일 재미있는 지식들을 만납니다. 차별과 빈곤의 고리를 끊고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달리트 여성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내주세요.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진 탄자니아 마사이부족 여성"물을 긷기 위해 매일 반나절씩 우물을 오고 가는 10살 루마의 소원은 학교에 가는 것입니다. 루마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마을전통에 따라 여성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습니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결혼뿐임을 어린 나이지만 루마는 잘 알고 있습니다. 흙탕물 더미인 우물에 도착한 루마는 물통으로 물을 휘휘 저어 흙이 가라앉기를 기다립니다. 저 흙더미처럼 자신의 꿈도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아 루마의 눈시울이 조용히 젖어옵니다."한국희망재단이 만난 마사이족 여아들은 탄자니아 키세키바하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은 극심한 물 부족을 겪고 있는데 2006년부터 거의 모든 지역에서 1100만여 명의 주민이 가뭄으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공정 분담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계 최부국들, 이들 국가가 낳은 재앙과도 같은 기후변화는 자연과 더불어 청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탄자니아를 비롯한 세계 빈국에 홍수, 가뭄, 극심한 식수난과 빈곤을 심화하는 데 큰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물을 구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아이와 여성의 몫입니다. 매일 아침 황톳길 4~5km를 왕복해야 하는 여아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외진 곳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일도 잦습니다.
마사이족은 주로 가축들과 함께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유목민입니다. 부족의 오랜 전통에 따라 일부다처제가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마사이족의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져 결혼과 출산의 의무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아들은 학교에 갈 수도 없고, 남편을 선택할 권리가 없습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아프리카 전통이라고 하는 할례의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법으로는 금지되었으나 아직도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 여성들은 모두 할례의식을 당했고 또한 할례를 시술하는 것이 주 수입원인 여성들이 많습니다. 여성 할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FGMC(Female Genital Mutilation and Cutting)'는 0∼13세 사이 여성의 외부생식기 대부분을 제거하거나 절단 후 순결을 위해 실로 봉쇄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취 없이 진행되기에 신체를 훼손하고 몸과 정신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깁니다. 시술에 사용되는 칼과 바늘 역시 비위생적인데 이 때문에 시술 이후 후유증을 겪는 이들도 많고 수술 도중 아이가 사망하기도 합니다.
억압과 굴레를 벗고 희망을 향해
여성에게는 대단히 보수적이었던 탄자니아 키세키바하에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더 그레일 탄자니아(The Grail Tanzania)는 10년 전부터 여아교육의 중요성을 마을주민들에게 알려 왔습니다. Emuguri, Mangulai 등 시골 지역에서 워크숍을 진행해왔는데 주로 마사이 공동체의 여성 할례문제, 아동 보호 및 초등교육의 중요성, 청소년 및 여성 교육의 중요성, 키세키바하 지역의 환경 보존 농업, 환경 보호 등에 대해 알리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어왔습니다.
오랜 노력 끝에 마을주민들의 편견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일 뿐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격을 가진 주체로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후 마을 주민들은 여아들이 초등 및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더 그레일 탄자니아에 밝혀왔습니다.
현재 마을 안에는 학교가 없고 학교에 가려면 6~70km 떨어진 시내로 가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시내에서 기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한국희망재단은 마사이부족 여아들이 안정적으로 교육을 받고, 마을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 기숙사의 건축비용과 교사 급여를 2012년 지원했습니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수줍은 미소의 아이들, 그 눈빛마다 총명함이 살아 있습니다. 선생님, 간호사, 아이들의 고운 꿈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훌쩍 훌쩍 자라날 것입니다. 억압과 굴레를 벗고 여성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길은 바로 교육입니다. 희망이 자라는 학교, 싱그런 풀잎처럼 생기 넘치는 마사이부족 여아들의 꿈을 응원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 김미혜 기자는 한국희망재단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