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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12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로 고상만 신은미 안호덕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은 한 해 동안 최고의 활동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3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만원, 그리고 부상으로 뉴아이패드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3 2월22일상'과 '2012 특별상', '2012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고상만 기자(왼쪽)과 고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
고상만 기자(왼쪽)과 고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 ⓒ 고상만

올해로 마흔 네 살. '불혹'의 고상만 기자는 아직도 매일 꿈이 바뀐다고 한다.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을 보면 정의로운 경찰관이 되고 싶고, 또 어떤 때는 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이 되고 싶다.  

초등학생이 '미래의 꿈' 란에 자신의 바람을 적 듯, 그는 날마다 마음속에 새로운 꿈을 새겨 넣는다. 아이들의 꿈은 희망이 될 수 있지만, 중년의 꿈은 욕심으로 치달을 수 있다. 도대체 왜 그는 자꾸 꿈을 꾸는 것일까?

중년 남자가 꾸는 꿈

"저는 권위가 아니라 '권한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권한 말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싶고, 장준하 선생과 김훈 중위 사건 등 억울한 일 당한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현실 속에서 제가 그런 위치에 있지 못하니 여전히 꿈을 꾸는 거지요. 억울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의로운 권한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제 꿈입니다."

지난 2월 5일 오후 서울 연신내역 근처 허름한 '다방'에서 만난 고 기자는 박력 있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가득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직업 : 시민운동가
경력 : 서울특별시교육청 감사관실 공무원,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 천주교 인권위원회 간사.

한 포털 사이트에 '고상만'을 검색하면 이런 정보가 나온다. 위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의문'을 캐내는 일엔 대개 고 기자가 있었다. 지난 1998년 판문점 벙커 안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김훈 중위 사망 사건 역시 그가 직접 담당했던 사건 중 하나다. 

또 지난해 8월, 다시 큰 의혹으로 불거진 '장준하 선생 사건' 역시 그가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담당했던 사건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이란 책을 통해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을 왜 재조사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이런 그의 열정 뒤엔,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아픔이 있었다. 그는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날인 지난해 11월 26일, 그동안 재직했던 서울시교육청의 공무원 직위를 내려놓았다. 또한 출판기념회에서 얻은 수익 전부를 '장준하 기념사업회'에 모두 기부하기도 했다. 백수가 된 그가 말이다.

 고상만 기자는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을 펴냈다. 사진은 출판기념회 모습이다.
고상만 기자는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을 펴냈다. 사진은 출판기념회 모습이다. ⓒ 고상만

"사실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대선에서 장준하 선생 사건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하는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문제가 걸리더라고요. 결국 고민 끝에 사표를 냈어요. 공무원직을 포기해 더는 '강제적인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됐죠.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당시 고 기자는 <오마이뉴스>에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기사 '이 말 한 마디 하려고 공무원 사표 냈습니다'를 기고했다. 반응은 컸다. 많은 응원 댓글과 함께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에 100여 명이 동참했다. 그의 공무원직 사퇴는 '말할 자유'를 위해 경찰대에 사표를 낸 표창원 교수보다 앞선 행동이었다.

'말할 자유' 위해 공무원 사표 던진 고상만

이런 그가 이번에 <오마이뉴스> '2012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받게 됐다. 2004년 1월 14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의 분신 사망 사건을 다룬 첫 기사 '백만평 자본 위에 뿌려진 한 노동자의 절규' 이후 9년 만에 <오마이뉴스> 최고의 기자상을 받은 것이다. 인권전문기자로서 이런 큰상을 받는 건 그가 처음이다.  

"그동안 제가 쓴 기사의 가치를 <오마이뉴스>가 높게 평가해줘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인권과 관련한 많은 이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독자 입장에서 쉽게 쓸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겁니다. 지금까지 쓴 기사에 대해서도 책임 있게 후속 기사 등 그 결과를 쓸 생각입니다."

고 기자는 "인권운동 과정이나 이미 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며 "'모든 시민이 기자다'라는 기치로 <오마이뉴스>가 존재하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더 나이를 먹어 할아버지가 돼도 계속 기사를 쓰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그동안 고 기자가 쓴 기사의 양은 많지 않다. 68개가 전부다. 하지만 그가 쓴 기사의 대부분은 '오름'에 올랐다. 더구나 그가 쓴 대부분의 기사에는 '좋은 기사 원고료'가 알사탕처럼 달렸다. 

"정말 고맙고 송구한 일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그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어떤 물건이 필요해도 인터넷 결제 과정이 귀찮아 포기하는 일도 많잖아요? 그런데 그저 기사에 공감한다며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에 동참하는 분들을 보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더불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하구요."

 고상만 기자
고상만 기자 ⓒ 고상만

주로 억울한 사연을 기사로 쓰는 고 기자의 글은 술술 읽힌다. 웃음과 재미도 있다. 한 번 클릭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매력도 있다. 이런 힘,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저는 기사를 쓸 때, 늘 두 가지를 염두에 둡니다. 일단,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제 딸인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합니다. 어렵거나 저만 아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두 번째는, 기사를 읽는 재미입니다. 저는 첫 문장을 무척 중요하게 여겨요. 저도 누군가의 기사를 읽을 때 첫 문단의 서너 줄을 통해 이 기사를 계속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거든요. 그래서 첫 문장을 쓸 때 무척 고민합니다."

하지만 고 기자가 밝힌 이런 원칙 외에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바로, 고 기자가 쓴 모든 글의 첫 번째 독자인 부인 장경희씨의 힘이다. 

고 기자의 기사 작성의 '비밀병기'는?

고 기자는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을 제일 먼저 부인에게 보여준다. <오마이뉴스>에 쓰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를 읽은 부인에게 냉정한 평가를 받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오탈자 지적은 물론이고, 독자 입장에서 잘 이해가 안 되는 대목도 부인은 지적해 준다. 고 기자는 "아내가 이 상의 절반 수상자"라고 웃었다. 

그렇다면 고 기자가 2013년에 꾸는 꿈은 무엇일까. 그는 "지난 2009년 활동 기간 종료로 해산된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다시 상설적으로 재가동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해 평균 80여 명의 군인이 자살로 처리되는데, 무슨 이유로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죽음이 너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고 기자는 "최소 10년에서 최장 20년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군병원 냉동실에 안치돼 있는 '23구의 군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고 기자는 올해 몇 권의 책을 내는 계획도 갖고 있다.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친일파와 그 후손, 그리고 제대로 예우받지 못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사례 중심으로 글을 쓸 생각입니다. 또 돌고래와 사람이 교감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가족과 생명의 소중함을 담은 어른용 동화도 쓰고 있습니다."

고 기자는 1989년 대학 입학 뒤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민주주의와 인권 확대를 위해 싸우고 있다. 20대에는 운동권에서 '인권 활동가'로, 30대에는 과거사 관련 진상규명을 위한 국가기관의 '조사 공무원'으로, 그리고 다시 40대에는 '말과 글'을 도구로 여전히 투쟁중이다.

그는 말한다. 정의로운 권한을 가진 이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그날을 꿈꾼다고. 물론 그런 세상은 고 기자 같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분명히 현실이 될 거다.




#고상만#올해의 뉴스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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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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