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취임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내각 및 청와대 인선에서 대선 슬로건이었던 '준비된 여성 대통령'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박 당선인이 장고 끝에 지명한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국제 성매매 관광특구 신설을 주장했던 과거가 재조명되며 지명과 동시에 논란을 빚고 있다. 또한 지난 17일 지명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단체로부터 전문성이 결여되어 부적격이라는 비판을 받는 형편이다. 늦어진 인사 때문에 '준비 부족' 지적을 받고 있지만, 사실상 '여성대통령'과도 동떨어진 인사내용이다.
허태열 전 의원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한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장고 끝에 악수' 식의 논평을 내며 허 내정자 인사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언주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허 내정자의 '섹스-프리(sex-free)' 발언을 언급하며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이 오보이길 바란다"고 혹평했다. "대한민국에 인재가 이렇게도 없는지 국민들이 궁금해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진보정의당의 이정미 대변인도 "'섹스-프리' 발언으로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고 '좌파 빨갱이' 발언으로 국민 분열을 일삼았던 분이 앞으로 국정운영의 중심을 잘 잡아 나갈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야당 측에서 한 목소리로 지적한 문제의 '섹스-프리' 발언은 허태열 내정자가 국회의원 시절인 지난 2010년 11월 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경제정책포럼'에서 내놓은 주장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관광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은 의료와 관광을 특화시켜야 한다. 섹스 프리하고 카지노 프리한 금기 없는 특수지역을 만들어 중국과 일본 15억 명의 인구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금욕지구'인가, '성욕 해방구'인가 |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가 말한 '섹스-프리'(sex-free)는 사전적으로는 '섹스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영어에서 '-free'는 '~가 없는'이라는 의미이기 때문. 세금이 없는 면세 상품을 'duty-free', 알코올이 들지 않은 음료를 'alcohol-free'라고 하는 게 예다.
이런 의미로 허 내정자의 문제 발언을 재해석하면 '매춘도 도박도 없는 금욕적 관광지구를 만들어 관광인구를 모으자'는 얘기다. 그러나 그가 당시 언론에 배포한 자료를 보면 맥락상 어휘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 섹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을 '섹스 프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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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국제적인 매춘·도박 관광특구 신설을 제안한 셈이다. 이에 당시 야당이 "과거 1960~70년대 일본 관광객을 겨냥했었던 '기생관광'을 부활시키자는 얘기냐"고 반발하자 허 내정자는 "미풍양속과 국민 정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나라만의 관광상품을 특화·발전 시켜나가자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허태열 내정자의 과거 발언이 집중 포화를 맞은 것은 그가 내정된 대통령 비서실장직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결정하는 핵심 요직 중 하나로 기능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인수위가 국회에 제출한 정부조직개편안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게 된다. 유민봉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는 "당선인은 대통령 인사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서 하겠다는 입장"이라면서 인사위원회 설치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새 정부의 비서실장은 이전 정부 비서실장들에 비해 막강한 인사검증권도 갖게 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섹스-프리' 운운하는 여성 감수성을 가지고 여성 대통령을 잘 보좌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박근혜 인사에 실망, 전문성 없는 여성가족부장관"
또 이번 내각·청와대 인사는 '여성 인재 10만 양성'과 '장관·고위직에 여성 등용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여성 당선인이 한 인사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 당선인은 앞서 17개 부처 장관들을 지명하면서 여성을 두 명 밖에 포함시키지 않아 여성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7일 인수위에서 발표된 장관인선 이후 논평을 내고 "박 당선인은 2017년까지 여성장관 비율을 단계적으로 높이기 위해 여성장관을 대폭 확대하고 대탕평 인사를 펼칠 것이라고 공약했지만 이번 인선 결과는 당선인이 공약이행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고 매우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전문성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여성단체연합은 "이명박 정권에서 후퇴한 여성 정책을 복원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성 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면서 "여성 관련 활동경력이나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인물을 장관 후보로 내정한 데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고 질타했다.
이 단체는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첫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을 시험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면서 "제대로 된 여성정책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조윤선 후보자는 변호사 출신으로, 한국씨티은행 법무본부장을 지냈고, 국회의원 재직 당시엔 정무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이었다. 금융과 문화 분야에 뛰어나다고 평가되고 있지만 여성계와는 별다른 접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