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1, 2학년, 중학교 1학년 전 과목, 고등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가 새로 바뀐다. 2009년에 2007개정 교과서로 바뀐 이후 새 교과서는 4년 만이다. 이제 겨우 교과서에 익숙해질 만하니 또 바꿔서 교사도 뭐가 뭔지 잘 모를 지경이라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에서부터 터졌다.
"선생님, 새 국어교과서 "1-가"가 1학년, "1-나"가 2학년인가요?""아니, 1학년한테 1-가, 나 나눠줘야 해. 학기당 2권이야.""2학년은요?""2학년도 가, 나 두 권 나눠줘야 해."교과서 나눠주고 있는데 어떤 건지 몰라서 전화했어요. 죄송해요."지난주에 후배 교사가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끊고 나서 '전교조 연수 때 국어가 <가, 나, 다, 라>로 바뀐다고 이야기했는데 잊어버렸나?' 생각하다가, 며칠 뒤에야 새 교과서를 찾아보았다. 작년에 교과부에서 만든 실험본교과서를 미리 보고 선생님들 연수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했기 때문에 크게 변한 것이 없을 줄 알았다.
"이게 3학년 교과서야? 2학년 교과서야?"
그런데 2학년 교과서를 보고 언뜻 '3'자가 있어서 책을 잘못 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국어는 2-가, 나라고 쓰여 있을 줄 알았는데, 국어는 3-가, 3-나라고 되어있다. 수학은 3이라고 써 있다. 옆에도 3자가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다시 보니 위에 작게 1~2 학년군 교과서라고 쓰여있었다.
"아니, 이게 3학년 교과서야? 2학년 교과서야? 이렇게 보면 3학년 건지 알지.""어머, 왜 이렇게 해 놨대요?""지금 보니까 학년 군이라고 교과부에서 4학기로 나눠 2-1학기는 3학기, 2학년 2학기는 4라고 이름 붙였나 봐. 1학년은 2학기에 2-가, 나가 나가겠네. 애들이 왜 2학년 책을 주느냐고 하겠다. 여기에 국어는 한 학기에 두 권이고, 수학은 한 학기에 1권이야. 통합교과는 책은 똑같고 1, 2 달라지기만 해. 이거 책 찾는 것부터 혼란이네."
그렇다. 그동안 교과서가 1-1, 1-2, 2-1, 2-2학기로 나눠서 나가던 것이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에 국어는 한 학기 책이 가, 나로 나뉜다. 전에는 듣기·말하기·쓰기, 읽기로 있던 것을 국어, 국어활동으로 바꾸면서 책이 얇아진 대신 학기당 2권으로 된 것이다.
수학은 한 학기에 수학, 수학 익힘 1권씩인데 대신 아주 두껍고 무겁다. 그동안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이던 통합교과는 주제통합으로 바뀌었다. 8개 주제별로 각각 교과서가 1권으로 거의 한 달에 1권씩 배우는데, 1학기에는 4권이다. 교사나 학생이나 일단 교과서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무엇보다 교과서 배달해주는 분들이 잘 몰라서 고생했다고 한다.
<초등 1, 2 학년 1학기 교과서> |
1-1학기 교과서 : 국어 1-가, 1-나, 수학 1, 통합교과 4권(학교1, 봄1, 가족1, 여름1) 2-1학기 교과서 : 국어 3-가, 3-나, 수학 3, 통합교과 4권(나2, 봄2, 가족2, 여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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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가뜩이나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자주 바뀌어서 불신을 받는 마당에 교과서 찾는 것마저 힘들게 한 것일까? 이렇게 된 원인은 교과부가 2009개정교육과정을 학년군제라고 했기 때문이다. 학년군제는 초등은 1~2, 3~4, 5~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년간을 묶어서 교과(군)별 수업시수를 배정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특별한 연구나 타당한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 공약 때문에 고교자율화를 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비판받았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학년군으로 교육과정 내용을 만들고, 교과서 집필진들에게도 학년군제에 맞게 교과서를 만들라고 하였다. 전 같으면 1학기 교과서는 1년 전 1학기에 만들고, 2학기 교과서는 2학기에 미리 만들어 실험했다. 헌데 이번에는 교육과정도 6개월 만에 만들고 교과서도 5~6개월만에 졸속으로 만들면서 그마저도 무조건 2년치를 만들어내라고 해서 집필진 사이에서도 이랬다가 저랬다 단원이 왔다갔다 정신이 없었다고 하였다. 여기에 실험본교과서를 연구하는 학교나 집필진들에게는 절대 교과서를 외부에 유출하지 말라면서 보안에만 엄청난 신경을 썼다고 한다.
교과서 내용은 둘째 치고 외형은 완전 중고등학교 참고서 같다
이렇게 나온 초등 1, 2학년 교과서가 내용은 둘째 치고 외형이 완전 중고등학교 참고서 같다. 수학은 뒤에 준비물 꾸러미라고 각종 자료가 붙어있는데 교사가 뜯기에도 어렵다. 한 번 쓰고 버리는데 번쩍번쩍, 알록달록 눈이 아프다. 그러면서도 교과서 안쪽에는 교과서 물려주기 칸을 여러 개 만들고 이름을 쓰라는데 1, 2학년 아이들이 쓰기도 어렵게 칸을 아주 좁게 만들었다.
책 찾기도 어렵다는 지적에 교과부는 분명히 앞에 1~2학년 군이라고 썼다고 할 것이다. 작년 말부터 교사, 학부모 연수도 시작했다고 핑계도 댈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외형을 보고 몇 학년인지 헷갈리는 건 문제 아닌가? 여기에 학년군제도를 운영하려면 기본이 담임이 2년간 연임하면서 2년간의 내용을 학생 발달 특성이나 수준을 고려해 가르치는 체제여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담임제는 1년 담임제다. 그러니 전처럼 학기별로 나온 교과서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교과서만 복잡하게 만들었다. 2009개정교육과정 자체가 이명박 정부가 교육적 논리나 학생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더니 교과서까지 딱 이명박 정부 수준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전교조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