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봄햇살인데 바람은 아직도 차갑다. 골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황급하게 재개발지구를 떠나는 바람엔 매쾌한 연탄가스 냄새가 스며들어 있다.
이미 인적이 끊긴 골목길엔 하얀 눈이 남아있고, 간간히 들어온 햇살에 골목길은 무너진 속내를 조금씩 드러내 보인다.
꽤 오래되었다. 재개발이 된다는 소식에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치고 나갔다. 그리고 지지부진하게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던 이들끼리 다툼도 일어났다. 이제 남은 이들은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촌이 들어선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부동산 경기가 추락을 하면서 이젠 재개발사업도 요원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허울좋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한 마을이 폐허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살았더라면, 지금처럼 폐허로 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렁저렁 살아갈 수도 있었을 터이다. 사람들이 떠난 집엔 길고양이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자신들의 삶을 이어간다.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보금자리를 튼 길고양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재개발을 위해 철거를 시작하면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길고양이들은 다 어디로 가야할까? 그렇다고 이렇게 방치를 하면, 재개발을 통해 작은 보금자리라도 하나 마련하려던 꿈을 꾸던 이들은 또 어떻게 될까?
그동안 우리에게 있어 집이라는 것은 보금자리의 의미가 아니었다.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오로지 투기의 대상이었다. 집만 사두면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이었고,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 한채는 사둬야 재테크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서민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보금자리 하나 마련할 수 없는 형국이 되었다. 그 사이 소위 권력을 등에 없은 이들이나 고급정보를 가질 수 있는 집단들은 너도나도 부동산투기에 매달렸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들이 난무했고, 그 정도는 부의 축적을 위해서 지혜로운 처사로 이 사회는 인정해 주었다.
돈이 돈을 벌고, 있는 이들의 배만 두둑해지는 사이 서민들 역시도 자신들에게 그런 행운이 일어날 가능성을 타진하며 부러워했다. 집은 집의 본래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폐허가 된 곳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고, 그곳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그 놀라움은 슬픔과 동의어다.
어쩌자고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이렇게 살아도 서울이 아니면, 대도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일까?
대수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도 없다. 그 자본의 논리는 한 사회의 논리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해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대수술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답답하다. 골목길마다 그곳의 주인이 된 길고양이들이 낯선이를 경계 한다. 사람들이 살던 집들, 그 집들은 길고양이들에게 아주 훌륭한 보금자리였을 터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그곳에서 자라날 것이다.
저 집들이 철거가 되면, 재개발이 진행되면 저들은 또 어디로 쫓겨나게 될까? 그들의 불안정한 삶이나, 서민의 불안정한 삶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
25일,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그와 그 주변의 사람들, 국민의 이름을 파는 이들은 진정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 지금 곳곳 재개발문제로 인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야 하는 이들과, 쫓겨난 이들의 그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그런 걸 기대해도 좋을까?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 길,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듯이 찬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