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익숙해진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마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필멸의 존재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게 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 진정으로 모든 인간의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며 산다면 세상은 훨씬 나은 곳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 죽음을 기억하기는커녕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재빨리 살 궁리부터 하는 게 우리네 습성이기도 하다.
<타임>지의 유럽 총괄 편집장인 캐서린 메이어가 쓴 <어모털리티(Amortality)>는 '메멘토 모리'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역설한다. 이제 죽음을 기억하기는커녕 자신의 나이마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우선 저자가 제시한 주요 용어를 살펴보자. 이 말들은 저자가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어모털족(amortals)'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일컬으며 '어모털리티(amortality)'는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런 신조어를 제목으로 하는 책들은 대개 그 용어에 합당한 사례들을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서 저자의 만들어낸 개념을 증명한다. 캐서린 메이어 역시 수많은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어모털족과 어모털리티를 입증한다.
저자가 드는 대표적 예는 다음과 같다. 나이를 먹어도 젊을 때 입던 옷을 그대로 입는다. 성형수술이나 호르몬 요법으로 본래의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 10대 때의 취향을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 죽을 때까지 연애를 쉬지 않는다.
이런 사례들은 유명인사의 등장으로 한층 더 쉽게 설명된다. <플레이보이>의 창립자 휴 해프너는 80대의 나이에 20대 여자와 '또 다시' 결혼했다. 믹 재거는 69세에도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열정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독설가 사이먼 코웰은 어릴 때의 취향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엘튼 존은 60대에 아이를 입양했다. 우디 앨렌은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서 영화 작업을 쉬지 않는다.
캐서린 메이어는 어모털족의 이상형을 한마디로 줄여 '뱀파이어'라고 한다. 영원한 젊음과 매력의 차원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어모털족이 늘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타임>지에 수없이 많은 시사 기사를 쓴 기자답게 흥미로운 사례를 수집하는데도 능하지만 그 사실들을 분석하는 데에도 유감없는 실력을 보인다. 다만 본인 가족의 일화들을 등장시켜서 나이가 많지만 열정적으로 일하는 태도를 찬양하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의 견해는 어모털족에 대한 무한한 긍정에 가닿아 있다.
어모털족의 등장은 의학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것에 힘입은 문화의 변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저자가 단적으로 말하듯이 어모털족은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를 통해서" 드러나며 그것은 "풍요의 부산물"이다.
예컨대 50년 전의 60대와 지금의 60대는 신체적으로도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사회적으로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제 집에서 쉬어야 할 나이가 따로 있지 않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것을 감당할 체력이 있다면 은퇴에는 적정연령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능동적이고 정열적인 노인들은 대부분 전문직이거나 높은 수입을 올리는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원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어모털족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저자의 주장대로 자기 나이를 잊고 사는, 또는 기존의 나이에 대한 통념을 거부하는 사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면 신구세대의 대립은 사라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책은 10대의 취향을 그대로 간직한 '철없는' 부모들이 자식 세대와 어떻게 대립하게 되는지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10대 사춘기는 기성세대의 관습을 모두 부정하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는 반항기다. 그런데 기성세대인 부모가 10대 취향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이때 10대 자녀는 기존 기성세대의 관념으로 무장해서 자신의 부모가 철딱서니 없음을 한탄하게 된다. 시쳇말로 '왜 나잇값을 못 하냐'고 부모를 타이르는 점잖은 10대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끝으로 저자는 몽테뉴를 인용하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몽테뉴는 생명의 유한함에 대해 늘 깊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승마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밟고 나서 몽테뉴는 비로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이런 농담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죽는 방법을 모른다면 걱정하지 마라."이 책을 통해 전하려 했던 저자의 메시지는 이 몽테뉴의 농담에 함축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어모털리티> 캐서린 메이어 씀, 황덕창 옮김, 퍼플카우 펴냄, 2013년 1월, 400쪽, 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