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사춘기가 두 번 있다. 다 알다시피 첫 번째 사춘기는 10대 중반 찾아와서 어린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우리를 진입시킨다. 낡디낡은 표현이지만 그때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반항을 일삼는 때다.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그때의 혼란을 우스운 추억으로 회상하기도 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아로새기기도 한다. 그런데 끝난 줄 알았던 사춘기가 다시 찾아온다. 그것을 이름하여 '두 번째 사춘기'라 하기도 하고 '중년의 위기'라고 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토프 포레가 쓴 <마흔앓이>는 바로 이 두 번째 사춘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마흔부터 시작되는 중년의 상실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거나 가족과 불화를 겪거나 외도에 빠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저자가 직접 상담한 위기의 중년들이다. 저자는 직업적 경험과 칼 융의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마흔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중년에 다가오는 상실감의 두 가지 원인 저자에 의하면 중년에 찾아오는 상실감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다. 다시 말해서 '젊은 청년기와의 작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썼던 가면이 마모되면서 겪는 상실감인데 이는 '참된 나라고 착각했던 페르소나와의 작별'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큰 상실감을 주는 것은 후자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젊지 않고, 젊은 시절의 미모와 매력을 간직할 수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그 사실은 '페르소나와의 작별' 만큼 혼란스럽지는 않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 위해 또는 인정받기 위해 가면을 쓴다. 가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맞춰서 공적인 얼굴을 가꾸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정에서는 부모님 마음에 드는 아들딸로서,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으로, 직장에서는 상사의 지시에 업무를 빈틈없이 수행하는 훌륭한 사원으로 자신을 의식적으로 통제한다. 이 와중에 칼 융이 그림자라고 부른 우리 내부의 무의식은 억압된다. 그런데 마흔앓이가 시작될 무렵에 이 그림자는 마모된 가면, 우리의 페르소나에 검은 그늘을 드리운다.
중년의 위기 탈출법 저자는 그림자와 화해함으로써 중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마흔앓이를 이후의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책에 제시된 중년의 위기 탈출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마흔앓이를 자기실현의 계기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썼던 가면, 즉 페르소나를 바로 벗어버리지 말고, 그것 역시 자기 자신의 일부로 인정한다. 그와 동시에 '열등한 인격'으로 부정해왔던 그림자를 자신의 일부로 용인하고 적절히 통제한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대단히 추상적인 해결책이지만 책 속에는 다양한 상담 사례와 그에 따른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오전에 위대했던 것, 진실이었던 것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거짓이 될 수 있다"는 칼 융의 말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중년기를 "내면을 탐구하는 시기"로 규정한다. 뭔가를 이룩하기 위해 젊은 날을 보냈지만 그것을 이룩하고 난 뒤 내면은 공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고 정말로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이 갑자기 인생이란 뭔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보면 그런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하물며 중년의 시기에 어떤 불행을 맞이할 경우 이런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 책의 말미에는 마흔앓이를 적극적으로 타개하는 자기치유법이 다시 한 번 소개되어 있다. 마흔이 되었다면 이제 자기 삶을 주도해야 한다. 누군가의 바람대로,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리며 사는 삶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의 폭을 넓히고, 구체적 목표를 세워 그 선택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최고의 치유법저자는 오랫동안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을 상담한 경력도 있어서 <마흔앓이>에는 임종을 맞이한 이들의 감동적인 통찰이 소개되어 있다. 평안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공통점은 누군가를 충만하게 사랑했거나 사랑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흔앓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곧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자신과 화해하고 변화될 것을 강변하지만 그것을 힘들게 하는 사회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중년을 맞이한 이들에게 여러 가지 실제적 도움이 되는 책인데 그 점이 아쉽다.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Maintenant Ou Jamais!: La Transition Du Milieu De Vie(지금 아니면 영원히: 인생 중반의 과도기)>이다.
덧붙이는 글 | 크리스토프 포레, 김성희·한상철 옮김, <마흔앓이>, MID, 2013.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