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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서 만든 배용준 삐라(좌측), 이승연 삐라(우측)
북에서 만든 배용준 삐라(좌측), 이승연 삐라(우측) ⓒ 신광태

"한반도를 스무 번이나 덮을 정도라면 놀라시겠죠?"

지난 5일,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 위치한 DMZ박물관을 찾았다. 유독 삐라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조행임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 남과 북에서 뿌린 삐라는 28억장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 삐라를 줍는 게 취미였다. 너풀거리며 떨어지는 삐라는 함박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산과 들 할 것 없이 대량으로 떨어졌다. 그것들을 주워 파출소에 가져가면 노트나 지우개 등 학용품을 주곤 했다. 매번 삐라를 가져갈 때마다 노트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10장 이상을 가져가야 노트 한 권을 줬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가져가도 노트 한 권이나 지우개 등을 하나씩만 줬다.

어머님은 내가 삐라를 줍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산골마을 사람들의 넉넉하지 않은 생활 때문이었을까. 삐라는 학용품 값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했다. 머리를 썼다. 삐라를 방 한 구석에 수북이 쌓아놓고 며칠 간격으로 10장씩만 파출소로 가져갔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어머님이 군부대 방첩대(지금의 기무부대)에 끌려가신 거다. 당시엔 민가에 불법 군 물품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군부대에서 예고없이 민가를 수색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때 군인들이 내가 방에 삐라를 잔뜩 모아둔 것을 발견한 거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삐라를 모아 두었다는 것이) 사상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게다.

조사를 받은 어머님은 '아이가 학용품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는 자백으로 다행히 하루 만에 풀려났다. 그 사건 이후 삐라를 줍는 것에 대해 어머님의 통제가 있을 만도 한데, 그냥 묵인하셨다. 아마 얼마되지 않지만 학용품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인 듯싶다.

"배용준·이승연 삐라 아시죠? 원미경·최명길 삐라도 있어요"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DMZ박물관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DMZ박물관 ⓒ DMZ박물관

강원도 고성 DMZ박물관은 2009년 8월 14일 문을 열었다.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로 369번지에 연면적 1만795㎡, 전시관 252.65㎡, 영상관 252.65㎡ 규모로 지어졌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 '냉전의 유산 이어지다', '그러나 DMZ는 살아있다', '다시 꿈꾸는 땅 DMZ', 'DMZ 영상실', '전시 기획실' 등의 테마로 구성된 박물관은 한국전쟁에서부터 현재까지의 DMZ 실상을 생생하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배용준 삐라는 들어보셨죠? 그런데 이승연 삐라도 있고, (과거 인기배우였던) 원미경과 최명길 삐라도 있어요."

어릴 적 추억 때문인지 내 관심은 2층 전시기획실에 진열된 200여 점의 삐라였다. 조행임 연구사를 따라 전시된 삐라를 쭉 둘러보노라니 '가슴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유엔군 병사 상의 뒤에 새겨진 글귀.
유엔군 병사 상의 뒤에 새겨진 글귀. ⓒ 신광태

"나는 미국사람입니다. 나는 한국말을 못합니다. 나의 모든 불행은 음식과 거처와 보호를 당신께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안전을 도와주고 우리 미국사람이 있는 곳으로 인도할 사람에게 인도해 주기를 바라나이다. 당신에게 조곰도 해가 및이지 안토록 해 드리겟고, 우리나라 정부는 당신에게 보상해 드릴 터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병사들이 입은 옷 뒷면에 붙여졌던 문구이다. 적의 포로가 되거나 행방불명되었을 때 길 안내를 호소하는 문구로 프랑스어와 영어, 독일어 등 7개 국어로 표기한 것도 이색적이다. 자유수호라는 명목으로 이억만리 한국 땅에 온 단 한 명의 외국인 병사라도 살려보자는 의도에서 이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한 듯싶다. 문구와 받침이 다소 틀렸는데도 웃음보다 숙연함이 먼저 앞선다.

수많은 삐라들이 한국전쟁 때 뿌려졌다. 주제는 귀순과 항복권유 등 전의를 상실케 만드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유엔군은 북한 독재를 비판했고, 북한은 미 제국주의와 이승만 정권을 헐뜯었다.

"휴전이 임박할 즈음 휴전이 지연됨을 비판하고, 전쟁반대와 평화 애호 내용의 삐라는 주로 북측에서 뿌린 것으로 보아 전쟁의 승산이 없음을 판단한 북한이 휴전에 더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행임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당시 유엔군이 배포한 삐라는 이념을 합리적으로 설득한데 비해 북한의 삐라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도 특징이다.

북한 '체제 미화' 내용 위주 vs. 남한 '경제발전'에 대한 내용

 북한의 삐라, 김대중 대통령을 비난한 내용이다.
북한의 삐라, 김대중 대통령을 비난한 내용이다. ⓒ 신광태

 1986년 남한에서 만든 원미경 삐라. 점선을 잘라 선정적인 사진을 보관하라는 문구가 흥미롭다.
1986년 남한에서 만든 원미경 삐라. 점선을 잘라 선정적인 사진을 보관하라는 문구가 흥미롭다. ⓒ 신광태

한국전쟁 이후에도 남과 북은 무수히 많은 삐라를 뿌렸다. 북측의 삐라 내용은 미국 철수 등 남한 정부에 대한 비난과 월북한 남한 군인을 등장시켜 북한의 체제를 미화시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으나, 남한에서 뿌린 삐라는 경제발전에 대한 내용의 화보를 삽입한 것이 많았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들어 북한의 삐라 내용은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최고의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켜 북한을 찬양하는 문구를 넣었다. 당시 유명세(?)를 탄 것이 배용준 삐라와 이승연 삐라이다. 이들의 사진에 '민족의 제일 자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문구를 넣어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 마치 북한을 찬양하는 것처럼 디자인 했다.

남한에서 제작한 삐라도 비슷한 것이 있다. 북한배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남한의 유명 연예인 사진을 삐라에 넣고, 월남 시 보상금과 혜택의 범위를 기재했다. 또 선정적인 여배우 사진을 점선을 따라 잘라 간직하라는 문구를 넣은 것도 흥미롭다.

한반도를 20번 덮을 분량의 삐라. 가히 종이폭탄이라 표현할 만하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이런 소모적 경쟁이 평화통일을 통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DMZ박물관 취재를 통해 기원했다. 

 DMZ박물관에 전시된 평화통일 염원 소망지는 40여만장에 이른다.
DMZ박물관에 전시된 평화통일 염원 소망지는 40여만장에 이른다. ⓒ 신광태

"과거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적어 DMZ박물관이 돈 먹는 하마라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은 연 평균 20여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가족단위 방문을 통해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고, 아울러 국내 최고인 청정 고성 바다여행을 권합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DMZ박물관 홍보담당을 겸한다는 조행임 연구사는 '기사에 이 말은 꼭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DMZ박물관 관광안내도
DMZ박물관 관광안내도 ⓒ 신광태

○ 관람시간 : 3월~10월(09:00~18:00), 11월~2월(09:00~17:00)
○ 매표시간 : 오전9시부터 관람시간 종료 1시간 전까지
○ 관람료
   - 개인 : 어른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1400원, 어린이 1000원
   - 단체 : 어른 1400원,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어린이 700원
○ 휴관일 : 1월1일, 매주 월요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DMZ박물관#강원도#고성군#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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