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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끈 주먹 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불끈 주먹 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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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 개편안 2월 임시국회 통과가 결국 무산됐다. 미래창조과학부 업무 영역을 놓고 여야 간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지난 4일 김종훈 장관 내정자가 자진사퇴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 나서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박근혜 정부 얼굴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 전부터 이렇게 시달리고 있는 표면적 이유는 '유선방송(케이블TV)'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과학을 통해 창조경제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과학기술분야보다는 제2차관이 맡게 될 ICT(정보 커뮤니케이션 기술) 업무 비중이 훨씬 넓고 민감하다.

방통위 '방송 장악' 5년에 '공보처 부활' 트라우마 겹쳐

그동안 ICT 업무를 주로 맡아온 방송통신위원회의 지난 5년 궤적만 살펴보니 지금 갈등의 원인을 쉽게 짚어볼 수 있다. 그동안 방통위에선 통신비 인하나 보조금 규제, 주파수 경매 같은 통신 문제는 여야 간 큰 이견이 없었던 반면 방송 이슈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지난 2009년 7월 방송법 개정안 날치기 처리에 이은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 선정과 케이블TV-지상파 재전송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방통위는 여야 추천 상임위원 5명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로 이 같은 사안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명박 정부 실세였던 최시중 전 위원장은 인사권을 앞세워 사무국을 사실상 장악했고 여야 3대 2 구도를 앞세워 대부분 힘으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야당과 언론시민단체에선 무늬만 합의제지 장관 독임제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IT업계는 IT업계 나름대로 과거 정보통신부에서 담당하던 업무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 등으로 쪼개지면서 'IT 콘트롤타워'가 사라졌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정통부 부활'을 기치로 내건 ICT 대연합이 탄생한 이유다.

정치권도 이에 호응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ICT 독임제 기구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박근혜 후보 역시 ICT 업무 통합에 무게를 실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과거 정통부과 과학기술부를 합친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면서 방통위 역할을 크게 축소하기로 해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정부 여당은 방통위에는 규제 중심의 최소한 업무만 남기고 방송통신 진흥 등 대다수 정책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야당은 독임제 장관이 방송 업무를 장악할 경우 그나마 허약한 방송 공공성과 독립성이 더 파괴될 것을 우려해 방통위 권한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버텼다. 그동안 여야 협상을 통해 지상파, 종편 등 보도 관련 채널 인허가 권한을 방통위에 남겨두기로 하는 등 간극을 좁혔지만, 유선방송 등 뉴미디어 문제만 남겨놓고 있다.

정부 여당은 유선방송 인허가권을 방통위에 남겨두되 법령재개정권을 포함한 방송정책 권한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방송정책권한이 없는 인허가권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유선방송 플랫폼으로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을 압박하면 방송 장악이 가능하다며 맞서고 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면서 "이것이 빠진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야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마치 방송정책 관련 업무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임을 강조한 셈이 됐다.

방송정책이 미래창조과학부 핵심?... "창조경제도 제대로 못 해"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지연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해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지연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해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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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이날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면서 "많은 소셜 미디어들과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친정부 매체가 장악한 지상파 방송과 종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보수 진영에서도 인정할 정도다. 야당 입장에선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 조직에서도 그 정도인데, 독임제 장관이 방송 업무를 장악할 경우 더하면 더했지만 덜할 게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방송 정책은 문화공보부나 공보처에서 좌지우지했다. 방송 독립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거세지자 김대중 정부는 지난 2000년 방송 업무를 합의제 독립기구인 방송위원회로 독립시켰고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방통위로 이어졌다.

민언련은 지난 4일 "방송정책을 독임제 부처인 미래부에 넘기는 것은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 침해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면서 "'경제위기', '성장'을 거론하며 독임제 부처인 미래부에 방송정책을 맡기겠다는 것은 '과거 회귀'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도 큰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대부분 시청자가 지상파 직접 수신에 의존했고 보도 채널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청자의 80~90%가 유선방송을 통해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고 있고 종편 4개, 보도 전문 2개 등 보도 채널도 늘었다. 종편 '황금채널' 배정 특혜 논란에서 보듯 SO들의 채널 편성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민주통합당 간사인 유승희 의원은 5일 본회의에서 "여당 안대로라면 이제 방송사들은 장관 한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장관이 원하는 것이면 속된 말로 '알아서 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적어도 방통위는 한 자루의 칼을 다섯 사람이 쥐고 있어서 누구도 함부로 휘두르기 쉽지 않지만, 이제 장관 한 사람이 칼을 완전히 독점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발 더 나아가 "창조경제에 몰두할 장관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방송정책을 관할하게 되면 창조경제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KT 사장 출신 통신 전문가인 이용경 전 창조한국당 의원 역시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미래창조과학부 관련 쟁점은 유선방송 플랫폼 사업과 인허가를 미래부에서 독임제로 하느냐 방통위에서 합의제로 하느냐"라면서 "전체 규모가 연 2조 원으로 미래부 관련 370조 원 시장의 0.5%라 일자리 창출 비중은 미미하고 결국 방송 장악 여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미래창조과학부#방통위#최시중#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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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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