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보니 생각보다 심각하네요."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 내뱉었다. 명진 스님과 함께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건너편 송전탑 위에 올라갔다온 차였다. 15만 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이곳에서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한상균(52) 전 지부장,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8)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 107일째 해고자 복직·쌍용차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이다.
7일 오후 고공농성 중인 해고자들과 송전탑 위 천막에서 30분가량 대화를 나누고 내려온 문 의원은 "차가 지나갈 때 마다 (농성 장소) 바닥이 흔들거리는 데다가 밤에는 철탑 사이로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며 "이분들 건강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우려했다. 명진 스님도 "100일이 넘도록 저런 곳에서 지내는 건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며 "왜 정치권이 책임져야할 쌍용차 문제를 저 3인이 짊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 의원과 명진 스님이 이날 송전탑을 찾은 이유는 건강이 악화된 농성자들에게 내려오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에 따르면, 고공농성 100일째 되는 날 농성자 3인을 검진한 의료진은 다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특히 복기성 부지회장은 하반신 마비 증세를 보여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다. 송전탑에 오른 명진 스님은 이들에게 "당장 쌍용차 문제 해결이 어려우니 우선 건강을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 다음 해결책을 찾자"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나 농성자 3인은 내려가지 않겠다며 문 의원과 명진 스님의 요청을 사양했다. 쌍용차 문제 해결에 진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물러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문 의원은 "'회사랑 한 번이라도 만나야 하지 않겠냐, 해고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회사와 교섭이 이뤄져야 내려갈 수 있다'는 게 이분들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어 문 의원은 "이분들이 오늘 곧바로 내려오시지 못해 (마음이) 답답하지만, 앞으로 국회 여야 협의체를 통해 쌍용차 국정조사가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구성된 여야 협의체는 지난 6일 첫 모임을 시작해 5월까지 논의를 지속할 예정이다.
"하늘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 땅 위에서 앞장 서달라"
이날 쌍용차 고공농성장에는 정봉주 전 의원, 은수미 민주당 의원,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 박종환 전 경찰종합학교장도 함께 찾아왔다.
문 의원과 명진 스님을 이어 송전탑에 오른 이들은 농성자 3인을 격려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고공농성을 통해 쌍용차 문제를 널리 알렸으니 이제는 지상에서 새롭게 농성을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정 전 의원이 농성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쌍용차 문제를 전 국민의 관심사로 만들어 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하늘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줬습니다. 내려오신다고 해도 백기를 드는 게 아닙니다. 공중전은 끝났으니 지상전으로 갑시다. 여러분에게는 지상에서의 역할만이 남아있습니다. 건강을 추스르신 다음 위대한 투쟁력을 가지고 저들(회사 등)이 헷갈려 할 만한 싸움을 합시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재밌고 즐거운 싸움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는 땅위에서 앞장 서주셨으면 좋겠습니다."정 전 의원은 이어 "세 분이 내려오는 날 시민 1~2만 명과 함께 멋진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며 "(농성자 3인이) 내려오시면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운영하는 것처럼 즐겁고 새로운 싸움을 지속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 박사도 "(농성자) 본인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격려해드렸다, 이를 못 느끼면 (농성자들의)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다"며 "내려와서도 또 다른 싸움을 할 수 있겠다는 비전이 이분들에게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정 박사는 조만간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배우자들 중심으로 '와락협동조합'을 꾸려 새로운 활로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의 방문을 지켜본 김정우 쌍용차 노조 지부장은 "건강이 엉망인데도 (농성자들이)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내 마음 또한 오죽하겠냐"며 "오늘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내려오라고 격려도 하고 제안도 했으니 이제는 지상에서 우리와 함께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