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가 2012년 1월부터 12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2012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120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49명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범죄를 막다가, 혹은 막았다는 이유로 자녀나 부모 등 무고한 35명도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 이는 언론보도만을 분석한 결과라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2011년보다 훨씬 늘어난 수치이다(2011년 총 84건, 2010년 128명, 2009년 77명/ 각 살인미수 포함, 자녀 등 지인 피해 제외).
여성살해범죄에 대한 공식 통계 부재
이에 따르면, 최소 3일에 1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으며, 미수까지 포함하면 근 2일에 1명의 여성이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협에 처해 있다. 뿐만 아니라 피해여성들의 자녀, 부모, 지인, 이웃 등에게도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들을 포함하면 매주 최소 4명이 아내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예방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되는 국가의 공식통계는 여전히 부재하다. 대검찰청의 '2012년 범죄분석'에도 피·가해자의 성별만 구분되어 있을 뿐, 살인범죄의 성별적 특성을 알 수 있는 정보는 매우 미흡하다. 살인에까지 이르는 여성폭력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폭력관련 성별분리통계가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세밀한 범죄예방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매년 최소 100여명의 여성이 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적 통계조차 부재하다는 것은 국가의 여성폭력근절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모든 중앙정부 부처와 지자체에서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폭력관련 통계가 부실하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미흡한 경찰 대응이 사건을 키워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들의 연령을 보면 40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외 연령에서도 그 수가 적다고 할 수 없어, 여성은 전 생애에 걸쳐 친밀한 관계와 폭력을 함께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장년층이라 할 수 있는 4~50대 경우, 전체 피해여성의 49%를 차지하고 하고 있어 지속적인 가정폭력이 결국 살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회 가정폭력상담소 2012년 상담통계에 의하면, 상담 당시의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결혼기간은 10년에서 20년 이하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가정폭력범죄는 결혼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험수위가 더 높아지는 범죄이기에 초기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가정폭력이 '부부싸움'으로 사소하게 취급되고, '아내의 잔소리'가 폭력의 이유가 되는 현실에서 여성들이 초기에 폭력에 강력하게 대처하기는 힘들다.
한편, 가정폭력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경찰의 대처는 여전히 미흡하다. 2010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찰신고 시 집안일이라며 출동하지 않거나 출동하더라도 그냥 돌아간 경우가 68.2%에 달했다.
신고 후의 법적 조치에서도 '조치없음'이 59.3%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접근행위제한(10.1%), 벌금(7.4%), 상담조건부기소유예(6.0%) 순이었다. 이는 소위 "오원춘 사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2012년 4월 1일발생한 이 사건은, 여성폭력피해자가 구조요청을 했으나 경찰이 "단순 성폭행", "부부싸움"으로 취급하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피해자가 살해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어 6월, 같은 지역에서 또 다른 여성이 "온몸에 구타를 당하고 있다"라는 구조요청을 했으나 출동한 경찰관이 확인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가해자 남성의 "신고한 적 없다"라는 말만 듣고 출동하지 않아, 신고한 피해여성이 추가 폭행을 당하여 갈비뼈 2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 두 사건은 경찰관이 즉각 출동하여, 가해자를 체포하고 긴급조치 등을 취하였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실제로 상담현장에서 이 같은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본회 가정폭력상담소의 통계를 보면 경찰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불만사례가 74건이었다. 피해여성들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가해자를 고소를 하더라도 가해 남성의 말만 듣고 경찰이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으며, 경찰이 돌아간 이후 신고했다는 이유로 더 큰 폭력을 당하여 향후에는 경찰에 신고조차 할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스토킹범죄 처벌법 제정되어야
이 같은 사례는 데이트 폭력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구조요청으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더라도, 가해자가 사귀는 사이라고 하면 아무런 조치 없이 가버리거나, 피해자가 저항하다가 낸 상처를 가지고 쌍방폭행으로 사건을 접수하고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상기 통계에 의하면, 데이트폭력으로 인해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37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혹은 헤어진 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질러진 범죄이다. 스토킹은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통칭하는 범죄로 이같은 사례는 스토킹 범죄의 극단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토킹 방지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스토킹 범죄를 신고하기란 쉽지 않다. 스토킹 범죄는 가해행위의 결과에 따라 협박죄, 명예훼손죄, 주거침입죄,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등으로 고소를 해야 하는데, 상해나 기물파손 등으로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증거를 모으기도 어렵고, 피해자가 안전을 보장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편 올해 경범죄처벌법이 개정되면서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나 장난전화보다도 낮은 범칙금 8만원 부과라는 매우 미약한 수준이며, 경범죄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스토킹에 대한 낮은 인식수준을 명확히 보여준다. 스토킹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자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스토킹 방지 및 처벌법 제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경찰과 사법기관의 의식 변화를 위한 교육이 실시돼야
경찰부터 사법기관까지 미흡한 사건처리는 여성폭력피해자들의 신고를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다. 이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이 장기화되는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범죄의 반복, 장기화는 결국 위의 통계처럼 생명손실이라는 극단의 결과를 낳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특별법 등 여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법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집행하는 사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법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법취지를 구현할 수 있도록 사법기관 등 관련기관 종사자들의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이 필수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작년 6월 5일부터 여성폭력희생자를 추모하고 여성폭력근절을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서 '기억의 화요일'이라는 명칭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화요일에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40회차 '기억의 화요일'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기억의화요일'은 스토킹방지법제정, 여성살해범죄에 대한 국가 공식통계 마련, 여성폭력근절을 국정 주요과제로 삼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