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백화점 꼭대기층 라운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1년에 1억 원을 내고 VIP로 가입해야만 했다. 라임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백화점 사장인 주원은 라임에게 이렇게 말했다.
"VIP들이 1년에 1억씩 쓰면서 원하는 건 딱 두 가지야. 불평등과 차별. 군림하고 지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철저히 차별받기를 원한다고."2011년 인기를 끈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한 장면이다. 지난 8일 만난 김형태(47) 서울교육의원은 최근 불거진 국제중학교 논란의 원인을 이 드라마 장면과 유사하게 진단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학부모들이 전국에 4곳뿐인 국제중에 자녀를 입학시키려 하면서 여러 의혹과 문제점들이 속속 생겨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아래 사배자) 전형이 논란이다. 사배자 전형은 경제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에게 교육기회를 넓히고자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이 서울 영훈국제중에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을 통해 합격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은 소득 요건 없이 다자녀·한부모가정 자녀 등의 자격요건이 되면 지원이 가능하다. 이 부회장의 아들은 한부모가정 자격으로 입학했다. 이 때문에 사배자 전형이 부유층의 입학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태 의원은 "일반 전형으로 합격하기 어려운 성적의 부유층 자녀들이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을 노린다"며 "심지어 위장이혼·입양을 통해 입학한다는 소문이 학부모 사이에서 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뒷돈 입학' 의혹이다. 영훈중이 편입생 학부모에게 입학 대가로 현금 2000만 원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나와 서울시교육청에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학부모의 제보를 공개해 뒷돈 입학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 의원은 "추가로 알아본 결과 입학 대기자나 편입생이 영훈중에 들어가려면 20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 설립된 국제중학교는 현재 서울에 2개교, 경기·부산에 각각 1개교씩 위치했다. 김 의원은 "사배자 전형 악용 사례와 금품 거래는 영훈중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며 국제중 특별감사, 국제중 관리·감독 강화를 주장했다. 사배자 전형 제도 또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해직교사 출신이다. 양천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당시 재단의 비리를 고발한 후 재단으로부터 해직통보를 받았다. 이후 시민단체의 추천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 서울시 제5선거구 교육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김 의원은 최근 불거진 서울 영훈국제중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힌 인물이다. 영훈중 등 국제중 관련 언론 보도 대부분에서는 김 의원의 이름이 언급된다. 영훈중이 편입생 학부모에게 입학 대가로 현금 2000만 원을 요구했다는 의혹은 그가 학부모 제보를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또한 사배자 전형에서 한부모가정 자녀 등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합격한 학생의 절반 이상이 부유층이라는 점도 그가 처음 문제제기 했다. 사배자 학생이 전학을 가 생긴 빈자리를 일반 학생으로 채운 사실 역시 김 의원의 의정활동 결과 확인됐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부유층 학부모, 사배자 전형 등 '뒷문' 노려"- 영훈중을 둘러싼 논란이 '뒷돈 입학' 의혹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뒷돈 입학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영훈중을 졸업한 자녀를 둔 학부모 서너 분이 제보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국제중에 자녀를 보내려 하는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한다. 우리 집이 목동에 있는데, 배우자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전했다. 목동 학부모 사이에서도 '우리 아이가 영훈중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는데, 1000만 원만 있으면 대기자 명단에 들어가고, 1000만 원을 더 보태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더라'는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다른 국제중들에서도 영훈중과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액수의 뒷돈 입학 소문이 돈다.
뒷돈 입학뿐이 아니다. 한 영훈중 학부모는 내게 '졸업장사' 소문을 소개했다. 학생들이 외국어고, 과학고, 혹은 자사고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돈을 받고 성적을 올려준다는 소문이 학부모 사이에서 돈다는 것이다."
- 그런 의혹이 불거질 정도로 영훈중 등의 국제중 편·입학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부유층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 때문이다. 부유층 자녀들이 모인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부모의 욕망이 있다. 사립유치원, 사립초등학교, 외국어고, 과학고 입학이 과열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원래 중학교 중에는 소위 '특별한' 학교가 없었는데, 2009년에 전국 국제중 네 곳이 생겼다. 서울에는 2개교가 있다. 국제중이 설립되기 이전까지 부유층 자녀들은 주로 해외로 조기유학을 갔다. 그런데 비용 대비 효과가 없다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국어·국사 과목을 빼고 전부 영어로 수업하는 특별한 중학교가 생겼다. 부유층 자녀들의 비중도 높다. 부유층 학부모들이 국제중으로 몰리기 시작한 이유다.
그런데 성적이 문제다. 국제중 일반전형의 경우 성적 요건이 까다로워 부유층 자녀가 공부를 못할 경우 들어가기 힘들다. 자녀가 '정문'으로 들어갈 실력이 안 되는 학부모들은 '뒷문'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뒷돈 입학 소문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팽배해졌다. 2011년 신설된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도 '뒷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을 부유층 자녀들의 '뒷문' 입학 통로라고 보는 건가."그렇다. 자녀를 국제중은 보내고 싶은데 성적이 안 되는 학부모들은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을 노릴 수 있다. 영훈중과 대원국제중은 서류심사만으로 사배자 전형 합격자를 최종 선발한다. 다자녀·한부모·다문화가정 등의 조건만 맞으면 지원할 수 있다.
서류심사에서는 주관적으로 채점할 수 있는 영역의 배점 기준이 높다. 서류심사 영역별 배점은 담임교사 추천서 30점, 자기계발계획서 15점, 학생부 및 생활통지표의 교과학습 발달사항 50점, 출석 및 봉사활동 5점이다. 자기계발계획서 배점의 경우 2010년도까지 5점이었는데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이 신설된 2011년부터 15점으로 높아졌다. 이상하지 않나. 성적이 낮아도 추천서나 자기계발계획서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입학할 승산이 있는 것이다.
또 이상한 게, 영훈중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 입학생 중 영훈초등학교 출신 학생이 많다. 매년 16명의 사배자 전형 입학생 중 4~6명이 영훈초교 출신이었다. 올해 영훈중에 입학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도 영훈초교 출신이다. 물론 이 부회장 아들의 학생부 성적이 비경제적 사배자 합격자 정원인 16명 안에 들면 아무 문제를 삼을 수 없다. 그런데 학생부 성적이 16등 밖인데 합격했다면, 다른 영역의 채점을 의심해봐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학교 측에서 특정 아이들의 합격을 염두에 두고 주관적 채점이 가능한 기준의 점수를 높게 줄 수도 있다."
- 이러한 국제중 논란이 불거진 데는 학교 측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인가."앞서 말한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학교 측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다고 생각한다. 뒷돈 입학 의혹도 학부모가 '우리 아이는 특별한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말하면, 학교가 '넣어줄 테니 돈만 다오' 라고 응답하는 식이다. 사립학교, 즉 재단에서 운영하는 국제중들은 부유층 자녀를 많이 받아 수입이 더 올리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영훈중만 해도 그러한 면이 드러났다. 전학을 간 사배자 학생 자리를 일반 학생으로 채운 사례가 확인됐다. 정말 비극적인 현실이다."
"규정 어기는 국제중은 설립 취하해야"
- 사배자 전형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처음 국제중에 사배자 전형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인가."2009년 국제중 설립 당시 반발이 심각했다. 그때 교과부와 학교 측이 국제중 설립을 위해 여론 무마용으로 들고 나온 게 사배자 전형이다. 이들은 국제중 설립 당시 '귀족학교가 안 되도록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전체 정원의 20% 뽑겠다'고 약속했다. 이때는 20% 전원 경제적 사배자였다. 기초생활수급가정 학생은 정부에서 학비 지원을 받고, 차상위계층은 학교 자체 예산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 이후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이 새로 마련됐나."결론부터 말하자면, 학교가 약속을 안 지킨 바람에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이 신설됐다. 국제중 설립 이후 학교가 사배자 학생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안 지키는 일이 발생했다. 영훈중은 사배자 학생의 장학금 지원을 중단해 이사장·교장 등이 2010년 서울시교육청(아래 시교육청)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영훈중은 1년 학비가 약 1000만 원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결국 못 견디고 나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훈중이 사배자 학생의 장학금 지급을 중단해 일부 학생은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
설사 학비를 내더라도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다. 통학버스비, 방과 후 급식비, 수학여행, 어학연수 등의 비용은 학생 부담이다. 대원중은 통학버스비만 한 학기에 96만 원이다. 또한 빚을 내서 학교에서 견딘다고 쳐도 학생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부유층 자녀 사이에서 위화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나한테 제보를 준 학부모는 당시 경제적 배려 대상자 학생들이 왕따를 당한 적도 있다고 전했고, 심지어 교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차별하고 냉대해 떠난 아이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학교 설립 후 1~2년 사이에 국제중은 못 사는 사람들은 갈 수없는 곳으로 알려지게 됐고, 그때부터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지원을 안 해 사배자 전형 입학 비율인 20%를 못 채우게 됐다. 그래서 교과부와 학교 측이 생각해 낸 게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이다.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지 않더라도 장애아동, 시설보호 아동, 북한이탈주민 자녀, 다자녀·한부모 가정 자녀 등 소수자 처지인 학생을 받겠다는 내용이다."
- 그런 취지라면 딱히 문제될 게 없지 않나."취지는 좋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아이들을 국제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영훈중만 해도 장애인, 소녀가장, 시설보호 아동, 북한이탈주민 자녀는 한 명도 없다. 주로 한부모·다자녀·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비경제적 사배자고, 대부분 부유층 자녀다. 최근 3년간 영훈중 비경제적 사배자 입학생의 학부모 직업군 명단을 보면 의사, 변호사, 공무원, 경찰, 사업가가 많다. 법무법인 대표나 유명 성형외과 의사도 있었다. 대부분 고수입 직업을 가진 부모들이다. 사배자 전형이 부유층의 입학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학부모 사이에서는 위장이혼이나 위장입양으로 자녀를 국제중에 입학시킨다는 소문이 돈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특이한 교육열로 보면 가능한 일이다. 만약 한부모 가정 자녀가 국제중에 입학한 이후 학생의 부모가 재결합 하면 어떻게 될까? 부모가 재결합한다고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입학전형 시작 전에 이혼했다가 합격 후 다시 재결합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위장이혼, 위장입양 통해 들어간 학생은 없는지 알아봐야 한다. 특별감사 수사팀이 할 일이다. 이번 시교육청 영훈중 특별감사에서도 위장이혼·위장입양을 통해 입학한 사례가 없는지 조사해봐야 한다."
-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국제중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일단 시교육청 특별감사를 통해 영훈중 의혹을 제대로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감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최근 1~2년 사이에 시교육청 출신 공무원 5명이 영훈재단의 주요 직책에서 근무한 사실이 밝혀졌다. 시교육청 공무원 출신들이 학교 안에 있는데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까. 따라서 검찰이랑 합동수사를 하거나 시민사회단체를 감사에 참여시켜야 한다. 아니면 경기도교육청과 교차 감사라도 실시해야 한다.
그 다음 특별감사를 전국의 국제중으로 확대해 국제중이 설립 취지와 규정대로 운영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규정을 어긴 학교는 설립을 취소해야 한다. 또한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 요건을 개선해야 한다. 전형 요건에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을 둬서 부유층 자녀들이 사배자 전형으로 합격하는 경우를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