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8시 37분 울산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 산12번지 능산마을에서 발생한 불이 인근 7개 마을로 퍼져 산림 50㏊와 집·건물 23채, 가축 562마리 등의 피해를 내고 10일 3시 30분쯤 진화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고 두 명이 가벼운 화상과 골절을 입은 데 그쳤다.
이날 불은 울산에 건조주의보가 내린 상태에서 북동풍이 강하게 불면서 삽시간에 이웃 마을로 번졌다. 특히 어둠과 강풍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은 10일 날이 밝자마자 헬기 26대와 소방차량 37대를 투입해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고, 지자체는 공무원 등 4700여명의 인력을 동원해 가까스로 진화됐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지점 인근 서쪽에는 신불산, 가지산 등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고산들이 즐비해 있는 곳인데다 불씨가 번진 1km 인근에는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암각화가 있어 자칫 겉잡을 수 없는 손실을 입는 대형화재로 발생할 뻔 했다.
화재 지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화재가 발생한 울주군의 동남쪽에는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와 여러 기의 원전이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화재 현장에서 북서풍 불었으면 영남알프스로 번져
울산소방본부와 울산시에 따르면 현재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 중이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 규모는 산림 50㏊에 있던 나무 5만여 그루가 불에 타 2억6000여만 원 상당, 그 외 가옥과 가축, 비닐하우스 등을 합해 피해규모가 3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화재는 주말 저녁, 건조한 날씨와 때마침 분 강풍으로 갑자기, 순식간에 번졌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갖게 한다. 이번 화재로 인근 울산양육원에서 지내는 원생 100여명이 대피소로 피신하기도 했다.
만일 9일 저녁 북서풍이 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화재가 난 울주군을 비롯해 경남 밀양시,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는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 등 7개 산군을 영남알프스라 부른다. 이번 불은 영남알프스 중 한 곳인 고헌산 자락까지 불씨가 튀었다. 다행히 바람의 방향이 반대쪽으로 향해 영남알프스에는 불이 옮겨가지 않았다. 만일 영남알프스로 불이 옮겨붙었으면? 고산인데다 산들이 연결돼 있어 엄청난 재앙이 왔을 수도 있다.
화재 지점은 또한 세계적 문화유산인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암각화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만일 강풍을 타고 불길이 이 곳까지 옮겨붙었으며 반구대암각화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화재로 가장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것은 울주군에 석유화학단지와 원전 여러기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만 원전사고를 생중계 화면으로 생생하게 목격한 시민들로서는 주말 저녁 느닺없이 발생한 이번 화재를 접하고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 격'이었다.
대규모 석유화학공단과 유독물 공장이 즐비한 울산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갖가지 화재가 잇따르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울산 남부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울산산업단지에서는 42건의 화재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15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화재 원인은 대부분이 안전관리 부주의였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울산에서 화재나 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의원이 울산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울산 석유화학공단에서는 175건의 화재 폭발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 36억80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민주통합당 박남춘 의원은 "울산은 언제든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석유화학단지와 원자력 발전소가 몰려 있다"며 "하지만 울산시는 제대로된 조치 매뉴얼 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울산환경운동연합과 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말 수명을 다한 울산 인근 원전에 사고가 날 경우를 모의 실험한 결과 월성원전 1호기의 경우 거대사고가 발생했을 때 엄청난 재앙이 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의실험에서는, 울산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를 가정하고 피난을 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할 때 약 2만명이 급성사망하고 암사망은 약 70만3000여명, 인명피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36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같은 안전 위험에도 울산에서는 기존 원전 외 여러 기의 원전이 추가로 건설되고 있어 이번 화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