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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서대문구 금화동 산동네 골목길의 벽화
▲ 벽화 서대문구 금화동 산동네 골목길의 벽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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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경기대학교 윗쪽으로는 산동네가 있다. 그 꼭대기에는 재개발을 앞둔 금화아파트가 몇 년째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으며, 금화아파트 아래에 자리한 집들도 가파른 계단과 구비구비 좁은 골목길로 올라야 한다.

작년부턴지 그곳엔 여느 달동네나 산동네처럼 벽화가 하나 둘 그려지고 있다. 낡고 허름한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는 다소 우울할 수 있는 곳을 밝게 만들고, 외지인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

주변의 환경과 잘 어울리는 벽화나 잘 그려진 벽화를 보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 아름다움의 그늘에 숨어 있는 삶의 애환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벽화 잘 어울리는 벽화일까?
▲ 벽화 잘 어울리는 벽화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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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려진 그림일 터이다. '강남스타일'과 '애니팡'과 광고홍수 속에서 절로 익혀진 카피 등이 그것을 말해준다. 벽화를 그린 이들의 수고를 평가절하 하자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이 그림이 어울릴까 싶은 것 뿐이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여긴 '강남스타일'과 거리가 멀뿐 아니라, 빨리빨리 달려가며 살아가는 경쟁사회에서 숨가쁘게 살아도 이 정도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공간이다. 마치, 손가락 하나에 터져 죽어버리는 동물의 신세와 다르지 않은 이들의 삶의 공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벽화 느릿느릿 살면 안되는 것일까?
▲ 벽화 느릿느릿 살면 안되는 것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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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의 삶과 너무도 괴리된 단편들을 본다. 국민을 위한다거나, 100% 국민 행복시대를 만들겠다는 허울좋은 공약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불편해진다.

조화 진짜 꽃은 시들었건만 가짜꽃은 여전히 화사하다.
▲ 조화 진짜 꽃은 시들었건만 가짜꽃은 여전히 화사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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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어느 집 앞 화분에 조화가 꽃혀있다. 만든 꽃, 그것은 진짜 피어나는 꽃과 비교한다면 가짜꽃이다. 진짜 꽃이었던 나팔꽃은 시들어 버렸는데, 혹한의 지난 겨울에도 가짜 꽃은 여전히 화사하게 피어있었을 터이다.

죽음과 생명이라는 큰 틀에서야 살아있는 것은 시든 꽃이요, 죽은 것은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목도하는 현실에서는 가짜 꽃이 화사하다. 어쩌면,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진짜는 어디로 가고, 가짜들만 진짜라고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니던가!

벽화보다 차라리 화분 한 점이 이곳의 삶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옥상 옥상위 빨래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옥상 옥상위 빨래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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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른다. 족막염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이 아프다. 어쩌다 이런 병이 걸린 것인지 모르겠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통증만큼 혹은 그보다 더 심한 아픔을 그들은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밤이면 서울을 내려다보며 '전망 좋다'는 위안을 받았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교통수단도 별로이던 시절, 교통수단이 접근할 수 없는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 집을 짓고 이사하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일터로 나가는 일만으로도 그들은 족막염이 주는 통증보다 더 아픈 아픔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빨래가 난다. 그냥 바람에 '휘익!' 날아가는 빨래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앙다문 빨래집게가 자기의 맡은 바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훨훨 날아가고 싶은데 날아가지 못하는 듯 빨래는 몸부림을 친다.

새싹 시멘트 콘크리트 틈에서도 봄은 온다.
▲ 새싹 시멘트 콘크리트 틈에서도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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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삶과 빨래의 삶은 닮았다. 뼈대가 다 드러난 금화아파트 담벼락에 초록생명이 자리를 잡고 새싹을 냈다. 이것이 삶이구나, 희망의 메시지구나. 여기도 봄이 온다는 사실,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사실, 이것이 복음이구나 싶다.

나는 벽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왕이면 벽화가 그려진 마을의 삶이 녹아진 벽화가 좋고, 때론 조금은 동떨어진듯해도 예술적인 감수성이 가득한 벽화가 좋다. 그런 수고를 하시는 분들, 그 마음을 조금 더 담아 그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벽화를 그려주길 바랄뿐이다.

오늘 밤부터 전국에 봄비가 내릴 것이란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목마름을 해갈하고, 겨울을 씻어내는 봄비면 좋겠다.


#강남스타일#애니팡#벽화#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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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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