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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보다 긴 겨울이었다. 해발 500m 산마을의 겨울은 더욱 모질었다.

감기는 또 어찌나 질기던지. 우리 어머니, 가을 끝 무렵 이웃 농가의 배 수확을 돕고 와서 난 몸살을 시작으로 겨우내 감기가 떨어질 만하면 다시 붙고, 거듭 붙고 하시더니 급기야 며칠 전 지독한 감기를 앓으셨다.

"오후에는 올라가서 좀 쉬어야겠다."

점심 밥상을 차리신 후 들어가신 어머니의 방은 어둑해지도록 불이 보이질 않았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가 보니, 끙끙 앓고 열이 펄펄 끓고 있다. 어머니께 꿀차를 타드리고, 곁에서 끔뻑끔뻑 졸 때까지 안마를 했다.

다음날도 어머니는 종일 누워계셨다.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어머니는 아플 땐 속을 비우는 게 최선이라신다, 동물들도 그렇게 한다며. 읍내를 다녀오면서 어머니가 좋아하실 과일들을 좀 사가지고 왔다.

"나중에 먹을게."

평소에는 과일에 벌떡 일어나시는데! 휴... 여간 아프신 게 아닌 모양이다. 나는 결국 어깨며 등이며 팔다리만 열심히 주물러드렸다. 해가 질 무렵에야 어머니는 일어나 책을 집으셨다. 이제 좀 견딜 만하신가 봤다.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이제 그만 나오렴'

 군침 도는 김치국밥
군침 도는 김치국밥 ⓒ 류옥하다

"김칫국밥 먹고 싶다..."

아플 때,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게 보약이라는데... 맞다. 우리 어머니는 김칫국밥을 정말 좋아하신다. 뜨끈한 김칫국물이면 감기에도 좋겠다.

"끓여다 줄까?"
"응. 귀찮게 해서 미안."
"그게 뭐 어렵다고, 헤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10분 끓인 후 건더기를 빼고, 신김치를 썰어 넣고 5분 정도 끓인다. 그 다음 밥을 한 주걱 넣어 살짝 더 끓이고 국간장으로 간을 해주면 냄새만 맡아도 맛있는 김칫국밥 완성!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이제 그만 나오렴,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이제 그만 나오렴~.'

보글보글하는 냄비를 보다 갑자기 어머니가 어릴 때 아침마다 날 깨울 때 불러주시던 노래가 생각났다. 내 나이 열여섯, 이렇게 커서 어머니께 국밥을 해드리는 날이 올 줄이야. 아, 찌개도 끓이고 밥상 차린 지야 진즉이지만 어머니 아프실 때 드시고 싶은 걸 만들고 있으니 내가 많이 자랐구나, 그만큼 우리 어머니 늙으셨구나 싶다.

그릇에 담아 깨를 살짝 뿌리고 참기름도 한 방울 떨어뜨려서 방으로 가지고 가니, 어머니가 국밥냄새를 맡고 벌떡 일어나 수저를 잡으신다.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옆에서 나도 한 숟가락! 이럴 줄 알고 숟가락을 두 개 챙겼지.

그런데, 아, 우리 어머니, 다 나으신 게 틀림없다. 문 앞에 내놓은 쟁반을 보시더니,

"하다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건 '정리'를 강조할 때 하는 우리집 암호!
갑니다요, 가, 잔소리 더 하시기 전에 설거지하러 갑니다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하다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하다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류옥하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시민기자입니다.



#감기#김치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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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서 일하는 일차, 방문, 응급 의료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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