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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 사람들' 무슨 이야기를 정답게 하고 있는 것일까
'텃밭 사람들' 무슨 이야기를 정답게 하고 있는 것일까 ⓒ 김학섭

요즘 날씨가 사람만큼이나 변덕스럽다. 봄이 왔는가 싶었는데 비 온 뒤끝이라 그런지 찬바람이 매섭게 옷길을 파고 든다. 새초롬한 바람이 겨울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 같다. 동해안 쪽에는 눈이 내렸다니 그럴만도 하리라.

지난 13일 인사동 거리를 기웃거려 본다. 비를 맞은 거리가 목욕이라도 한듯 산뜻하다. 늘 인파로 북적이던 인사동 거리가 오늘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날씨가 차가운 때문인 듯하다. 몇몇 일본인 관광객이 카메라 셔텨를 누르거나 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뿐이다.

사람이 없는 것보다 북적거리는 재미가 있어야 거리를 다니는 재미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란다.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도 어느새 도시인이 다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골을 떠나온 지 사십 여년이 되었으니 그럴만도 하리라.

그래도 문득 고향이 떠오를 때면 배낭을 메고 산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어디를 가도 예전의 그 정겹던 고향 풍경은 구경할 수 없다. 도시 주변 산은 물론, 농촌도 거의 인공으로 보수되고 사람 입맛대로 고쳐졌기 때문이다. 어디 산뿐이랴, 물길도 마찬가지다.

 작가 원용덕 씨, 우리의 정겨운 풍경이 잘 담겨 있다. 밥은 먹을 수 없지만 작품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작가 원용덕 씨, 우리의 정겨운 풍경이 잘 담겨 있다. 밥은 먹을 수 없지만 작품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 김학섭

 텃밭을 가꾸는 우리 어머니다.
텃밭을 가꾸는 우리 어머니다. ⓒ 김학섭

오늘은 인사동 한복판에서 따듯한 고향을 만났다. 나는 한참이나 작은 아틀리에 앞에서 잠시 잊고 살았던 고향을 찾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따듯한 창가에는 우리 조상들의 바쁘게 사는 모습이 투박한 황토흙 조각으로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었다. 문득 지금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건 시골 여인네들이 똥 누는 것 아니에요?"

무턱대고 옆에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맞아요. 잊고 사는 우리의 시골풍경을 한데 모아 보았어요. 우리 조상들이 살았을 풍경들을 말입니다."
"선생은 누구세요. 작가세요? "

그러자 옆집 아저씨 같은 분은 수줍은 얼굴을 하고 대답한다.

"네, 제가 만들었습니다. 시골풍경은 물론, 우리 여인네들의 따뜻함과 가족을 표현해 보았어요, 이것만 있으면 우리의 옛모습을 다 만날 수 있어요."

작가는 제목을 '텃밭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는 가끔 인사동에서 많은 전시 작품을 보았지만 투박하고 황토흙으로 뭉턱뭉턱 빚은 듯한. 도무지 세련미라고는 없는 작품이 이처럼 가슴을 잔잔하게 흔들며 미소짓게 하는 것은 처음이다. 볼수록 정감이 넘치는 우리 조상들, 우리 여인네들, 우리 가족들.

작가 원용덕(53)씨는 텃밭 사람들에게 부치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텃밭 그곳엔 봄, 여름 , 가을, 겨울이 근원의 생명을 땅속에 묻고 희망의 씨앗을 기다린다. 먼 옛날 시골마을 동네 엄니들 저마다 호미자루 허리춤에 차고 노래가락 흥얼흥얼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시며 갖가지 희망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텃밭으로 나가신다. 너도 나도 검정 고무신 벗어 던지고 작년 겨울 얼었던 굳은 땅을 파기 시작한다. 얼쑤얼쑤.

 예전에도 우리 어머니들은 아이를 돌보랴 농사일하랴 바쁘셨다.
예전에도 우리 어머니들은 아이를 돌보랴 농사일하랴 바쁘셨다. ⓒ 김학섭

 볼일을 보시며 우리 어머니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볼일을 보시며 우리 어머니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 김학섭

탄탄스님(대덕사 주지)은 이 작품에 매료되어 한점을 구입한 후 본질적인 고민에 몸져 누울 지경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추구하는 존엄한 종교적 신념보다 우선하는 듯한 이 작품은 먼 산을 보며 쭈그리고 앉아 볼일 보는 여인의 모습이었다고 원용덕 작가론에 적고 있다. 또 이 작품이야말로 세상에 양면성을 진실되게 구체화 시키고 표현했으며 위선 없이 진솔한 우리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나는 문득 이 작품을 보는 순간 60년대 논산훈련소를 떠올렸다. 구덩이를 파고 양쪽에 널펀지를 걸치고 똥을 누고 있으면 중년 아낙네들이 물건을 가져와 팔아달라고 빙글거리던  얼굴이 떠오른다. 아득한 이야기지만  원 작가는 대뜸 그 작품도 만들어 놓았다며 빙긋 웃는다.

이런 작품을 만들어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하자 원 작가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내 덕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작품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인사동 경인미술관 아틀리에서 19일까지 전시된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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