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꼭 해야 하는 일을 제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누나네에서 하루의 태반을 홀로 보내시는 노모에게 자주 전화 드리기, 아이들과 통화할 때마다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끊기 등이 그것이다. 이 일들은 내 마음을 한껏 따뜻함으로 채워준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들을 잊어버릴 때가 아주 많다.
내가 '전태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알고, 그에 관한 책이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던 때는 아마 20대 중반쯤이었지 싶다. 그때 나는 거의 본능처럼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차원에서라도 그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나름대로 아주 굳은 약속이자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과 다짐은 번번히 뒤로 미뤄지거나 망각되었다. 어떤 사적인 대화에서, 혹은 신문 기사나 어떤 다른 책에서 '전태일'을 만날 때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며칠 후가 되면 예의 도대체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나는 그렇게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그 책에 대한 마음을 깡그리 잊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전태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만난 뒤로 2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작년 7월이었다. 여름방학 중에 읽을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고르고 있던 중이었다. 스쳐 지나듯 컴퓨터 화면을 훑고 있는 중에 우연히 <전태일 평전>(이하 <평전>)을 보게 되었다. 나는 무슨 뜨거운 것에라도 데인 듯 깜짝 놀랐다. '이 책이 왜 여기에서 보이지?' 하는 순간의 의아함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이미 내 손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평전>의 장바구니 아이콘을 누르고 있었다.
그 뒤로 다시 8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평전>은 여전히 내 손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교무실 책상 위에 탑처럼 쌓아놓은 책들을 집으로 옮기기 위해 그것들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나는 거의 맨 밑바닥에서 다른 책들에 무겁게 짓눌린 채로 엎드려 있는 <평전>을 보았다. '이렇게 너를 보는구나.' 내 마음은 무거웠다.
어제는 격일로 돌아가는 야간 자율학습 지도에서 해방된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일찍 재운 후 시한이 맞춰진 어떤 일을 하다가, 며칠 전 학교에서 옮겨온 책으로 우연히 눈길이 갔다. 다시 <평전>이, 애처롭거나, 혹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문득 <평전>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늦은 밤의 공복감을 삶은 달걀과 따뜻하게 데운 우유 한 잔으로 달래면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형광등 불빛이 눈부신 탓이었을까. 눈을 한번 깜작거릴 때마다 눈에서 눈물이 찔금거렸다. <평전>을 향한 내 20여 년간의 약속과 다짐은 그렇게 오늘 새벽까지 이어진 끝에야 간신히 마무리되었다.
나는 두려웠으리라.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전태일을 절망에 빠지게 했던 그 거대한 현실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것이! 순식간에 불타오른 "나의 전체의 일부", 또는 "나의 또 다른 나"(197쪽; 이 표현들은 전태일이 자신의 글에서 다른 모든 인간을 지칭할 때 썼던 말들이다)를 마주보는 일이!
하지만 이제 나는 좀더 정직하게 이 현실과, 옹졸하고 유약한 나 자신을 두 눈으로 보련다. '착실', '겸손', '온건', '성실', '적응성 있다' 등의 "온갖 아름다운 찬사"로 우리를 "길들여진 양들"로 만들려는 이 사회의 강한 자들(이상 128쪽 참조)과 '부(富)한 자들'(전태일이 부유층을 가리킬 때 독특한 표현이다)의 위선과 술수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나는 올해 43세의 국어 교사, 곧 교육 노동자다. 올해는 1주 기준으로 교과 수업 16시간을 한다. 그리고 정식 퇴근 시간인 오후 4시 반 이후에 5시간의 방과후 수업과 1주 평균 10시간 정도의 야간 자율학습 지도를 한다. 이들은 모두 초과 근무여서 별도의 수당이 책정되어 있다.
교육 노동 현장에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잘 버텨나가고 있다. 노동 여건이나 환경이 물리적으로 특별히 열악하거나 심하게 위험한 것도 아니다. 교실의 미세 먼지나, 서서 장기적으로 일하는 데서 오는 관절 계통의 이상 등으로 고통 받는 교육 노동자가 적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시선을 확장하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오늘 자로 실린 <경향신문>의 연재 기사([위험의 외주화] 2011년 산재사망 2114명… 하루 6명꼴)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2011년에 211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1일 평균 6명 꼴이다. 이 중에는 건설 현장의 추락사나 압사 등이 1383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직업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수도 731명이나 된다. 노동자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는 비유가 비유만이 아닌 이유다.
우리는 지금 이 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한국 최고 완판녀"가 되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든 지갑과 가방, 옷에 붙인 브로치에 열광한다. 언론은 '완판녀' 대통령이 패션업계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찬사를 쏟아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고 싶은 우리 시대의 전태일, 그리고 그가 애틋하게 여긴 어린 시다들은 오늘날 이 나라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들은 청년과 노인, 건장한 남자와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 때로는 낯선 외국인의 모습을 한 채 폭발과 추락, 보이지 않는 독성 화학 물질이 가득한 수많은 노동 현장에서 시나브로 죽어가고 있다.
이들을 위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최고 권력자가 된 아버지의 넓은 품안에서 10대 후반을 보내고 있을 때, 전태일은 거리에서 자신의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스스로를 불살랐다. 수많은 이가 '현명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 순응하며 코딱지만한 안위를 누릴 때(153쪽), 그의 '전체의 일부'였던 수많은 어린 노동자들은, 1만 명 이상이 지내는 곳임에도 환기 시설 하나 없는 건물에서 '인간 비료화(肥料化)'라는 '처참한 노동 지옥'(100쪽 참조)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들 사이의 그 차이를 명백히 아는 것, 그리하여 이 사회의 과거와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숨은 진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 일의 시작을 <평전>과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대통령이 '완판녀'로 떠받듦을 받는 세상은 정말 아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 <전태일 평전> 조영래 씀, 전태일재단 펴냄, 2009년 4월, 340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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