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폐업(휴업) 결정과 관련한 갈등이 깊은 속에, 지역거점 공공병원에 시설·장비 등의 국고지원을 해왔던 보건복지부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백근 경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주의료원에 2005년 이후 130억 원 이상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폐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자세는 매우 애매모호하다"며 "정부가 의료원을 육성할 때는 지원했다가 폐원할 때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1일 오전 경남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발제했다. 이날 토론회는 경남도의회 민주개혁연대(공동대표 김경숙·석영철)가 마련했다. 당초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었던 경남도청 담당자가 불참했다.
정백근 교수 "의료원 폐업은 모순"
정백근 교수는 '진주의료원 사태를 통해 본 한국 공공의료의 현실진단과 해결 모색'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의료원 폐업 결정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병상(병원)에서 10%도 되지 않는다.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하는데, 경남도는 그나마 있는 공공병원을 없애겠다는 것"이라며 "이 문제가 진주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전국 병원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진주의료원 경영 현황에 대해, 정 교수는 "진주의료원 부채는 253억 원(2011년)이라고 하는데, 전국 300병상 이상을 운영하는 지방의료원의 평균 부채는 261억 원이다. 진주의료원(320병상)의 부채는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급 지방의료원의 평균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진주의료원 적자의 가장 큰 부분이 지역개발기금 차입액과 퇴직급여 충당금이다. 지역개발기금 원금·이자 상환은 주요한 적자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지역개발기금은 해당 차지단체가 지역기관에서 빌려서 쓴 돈으로, 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지방의료원은 수익성이 나지 않지만, 지역주민들의 건강 향상에 필수적인 다양한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기에 건전한 적자가 발생하게 된다. 공공의료를 할수록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남도는 '공공보건의료에관한법률' 개정으로 공공보건의료를 민간의료기관에서 수행할 수 있다고 한 것에 대해, 정 교수는 "법 제정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법 개정은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체계가 너무나도 취약하기에 취약성을 민간의료기관이 보완하게 함으로써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백근 교수는 "지방의료원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이사회인데, 경남도는 이사회 논의도 없이 결정해 무시하고 있다. 이사회에 보면 소비자관련단체가 추천하는 1명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지역주민들의 실질적인 대표체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며 "지역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법과 관련해, 정 교수는 '지역개발기금 차입금 상환 지원'이 필요하다며 "경남도는 공공의료를 위해 오히려 중앙정부에 진주의료원을 살려달라고 지원요청을 해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공공병원 역할에 기인한 적자액 보전'과 '지역주민 대표에 의한 거버넌스 실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강화' 등을 제시했다.
"의료원 폐업은 인권침해 사태로 비화"토론이 이어졌다. 박진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은 "진주의료원 폐업사태는 사회적 정당성을 잃은 채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면서 인권 침해사태로 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강성노조의 해방구'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박 부지부장은 "경남도에서 직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은 기본적인 마인드가 없는 무지의 발상"이라고 밝혔다. 경남도의 갖가지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박 부지부장은 "의료원은 폐업이 아니라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길 공인회계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존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진주의료원은 경영분석을 일정기간에 걸쳐 실시하고 나서 폐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적어도 1년 이상의 개선사항을 시행해 보아야 하고, 공공기관을 경제성과 공공서비스 양면으로 생각하고 그 이후에 폐업 문제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2012년 신포괄수가제 인하로 단위당 진료가가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일정 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 개선 희망이 있다"라며, "퇴직급여는 부채로 이월처리할 것이 아니라 매년 연금으로 바꿔 지출해야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강성훈 경남도의원은 "공공보건의료에관한법률 개정안에 따른 보건의료 환경변화를 경남도는 법 개정 이유를 잘못 해석하여 진주의료원의 폐업 근거로 삼고 있다"며 "경남도의 각성과 보건복지부의 이 법률에 따른 세부지침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화와 소통의 시대에 지역민과 함께하는 공공병원의 운영모델로 거버넌스 구축을 제안했는데, 이는 지역에서 제안했지만 집행부에서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폐업 결정을 최소 2년 이상 보류하고 경남도의 지원금을 늘리면서 경영정상화 노력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제시했다.
최권종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진주의료원 폐업사태 해결은 공고의료 강화·확대의 길로 가느냐, 공공의료 축소·포기의 길로 가느냐는 박근혜 정부의 공공의료정책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라며 "의료민영화를 막고 공공성 강화에 뜻을 같이하는 각계 시민사회단체의 입장발표와 동참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임금 체불 7개월이 신의 직장이냐"
토론회에 앞서 김경숙 의원(민주통합당)은 "행정은 공공의료 포기를 철회하지 않고, 이 토론회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앞으로 의회 활동을 통해 집행부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영철 의원은 "경남도가 신문에 낸 광고를 통해 '강성노조 해방구' '신의 직장' 등이라고 주장했는데, 홍준표 지사가 여론에서 밀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주의료원이 차라리 강성노조가 되었으면 한다. 홍 지사는 이념문제로 끌고 가고 있다"며 "월급 7개월이나 받지 못하는데 '신의 직장'이냐. 경남도는 도민들을 이간질 시키고 있다. 고도의 여론전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홍준표 지사는 처음에는 박력이 있다고 봤다. 차기 대선주자로도 봤다"며 "홍 지사는 당근과 채찍을 쓰고 있는데, 진주에 '제2 도청사' 설치를 내걸었다. 홍 지사는 여론을 돌려 세우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쓰고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포기하든 물어뜯든 결정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후자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 사회는 조효래 창원대 교수가 맡았다. 강병기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위원장, 김재명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을 비롯해 진주의료원 직원 등 많은 사람들이 토론회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