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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생각연구소
지난해, 중국 국적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명시했다.

"기괴하고 잔인한 사회상을 환각적 리얼리즘으로 풀어내며 새로운 문학세계를 창조했다."

모옌은 1955년 산둥성 가오미현에서 태어났다. 척박한 시골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가난과 불운 속에서 학업도 중단해야 했다. '기괴하고 잔인한 사회상'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가난과 불운과 정치적 격변 속의 인간상을 슬프거나 고통스럽게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는 '환각적 리얼리즘'을 통해 웃음과 심각함이 공존하는 '새로운 문학세계'로 나아간다.

<모두 변화한다>는 모옌의 자전적 에세이 혹은 자전 소설이다. 머리말에서도 밝혀뒀다시피 이 책은 인도의 어느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청탁을 받아 쓰게 된 것이다. 주제는 지난 30년 동안 중국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모옌은 지나치게 주제가 넓고 감당하기 어려워 청탁을 거절한다. 그러나 편집자는 끈질겼다. 편집자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는 작가에게 3년 동안 매달리며 "어떻게 쓰든 마음대로", "무엇을 쓰든 마음대로"라고 한다. 이에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한 작가는 자신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중국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변화 오롯이 담겨 있는 <모두 변화한다>

총 6장으로 이뤄진 <모두 변화한다>에는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나온다. 이 책의 화자인 모옌 그리고 그의 초등학교 동창생 두 명. 남자 동창의 이름은 허즈우, 여자 동창의 이름은 루원리다. 모옌은 어릴 적에 말이 많아 '재수 없는 아이'로 명명된다. 작문 시간에 '루원리의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글을 쓰고 그대로 학교를 나간 허즈우는 '천재 영웅'으로 그려지고, 가즈51 트럭을 모는 아버지를 둔 루원리는 학교에서 가장 예쁜 '입 큰 여학생'으로 기억된다.

1969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세 명의 인물이 살아온 삶이야말로 중국 사회의 변화를 예리하게 드러내는 절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사람은 아니지만 '소련제 가즈51'이라는 트럭 역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수 없는 아이' 모옌은 입이 큰 류합마라는 선생의 별명을 '류하마'라고 지었다는 죄목으로 퇴학당한다. 사실 '하마'라는 별명은 그가 지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말이 많아서 불운할 것이라는 어머니의 걱정대로 모옌은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쫓겨난다. 따라서 그가 훗날 본명 관모예를 버리고 모옌(莫言)을 취한 것은 일종의 자기풍자라 할 수 있다. 모옌이란 '말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학교를 나온 모옌은 농사를 짓다가 목화 가공 공장에 들어간다. 그는 공장 생활에 만족하지만 출세의 길은 막혀 있다고 느낀다. 그는 가난하고 학벌도 없는 사람이 출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택한다. 바로 군입대였다. 인민해방군에 입대한 그의 꿈은 '가즈51' 같은 트럭을 모는 운전사가 되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운전을 배우기를 바랐던 것인데, 그 꿈은 운전병이 북경에서 오는 바람에 좌절된다.

운전을 배우진 못했지만 그는 우여곡절 끝에 군대에서 예술 단과대학에 다니게 되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 그리고 등단을 하고 중국을 대표할 차세대 작가로서 주목을 받게 된다. 1987년 발표한 <홍꺄오랑 가족>은 장이머우에 의해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로 나왔고, 이후 모옌은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2012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가난한 시골 동네의 '재수 없는 아이'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돼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이다.

'천재 영웅' 허즈우는 자기 발로 학교를 나간 뒤, 덩샤오핑의 등장 이후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번다. 처음엔 말이나 양을 사고 팔아 돈을 벌던 허즈우는 나중에는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칭다오에 빌딩 여러 채를 가긴 대부호가 된다. 그가 이렇게 많은 돈을 번 이유는 루원리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폐차 직전의 '가즈51'을 루원리 아버지에게 사서 호감을 얻는 것에 성공하지만 루원리의 마음은 얻지 못한다. 그는 '가즈51'을 고향집에 놔두고 도시로 나와 러시아계 중국인과 결혼해 두 명의 딸을 낳는다. 후에 그는 고향을 떠날 때 약간의 돈을 빌려준 모옌에게 호텔 스위트룸을 빌려 융숭하게 대접하며 옛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모두를 매혹시켰던 '트럭', 사라지다

가장 예뻤던 여학생 '루원리'는 우체국에서 근무하다가 현 위원회 부서기의 아들과 결혼한다. 하지만 도박과 폭행을 일삼던 남편은 사고로 일찍 죽는다. 과부가 된 루원리는 예전에 자신에게 청혼했던 허즈우를 찾아간다. 하지만 허즈우는 그녀에게 자신은 이미 결혼을 했으니 '첩'이 되겠느냐고 묻는다. 첩이 되면 모든 생활을 다 책임져 주겠다고 하면서. 그녀의 자존심을 그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루원리는 모옌을 퇴학시켰던 하마 선생 류합마와 재혼한다. 둘 사이에서는 딸이 태어난다. 모옌이 다시 만났을 때 루원리는 또 남편을 잃어 과부였고, 딸의 앞날을 위해 그에게 일종의 '뇌물'을 주러 온다. 젊은 날 모옌이 고향을 떠날 때,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했던 루원리, 싸늘한 시선으로 모옌을 돌려보내던 바로 그 콧대 높은 미녀가 50대 과부가 돼 그의 앞에 초라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 세 동창생의 삶의 궤적을 통해 모옌은 중국의 지난 30년을 반추한다. 세 동창생의 개인사 속에는 배꼽 빠지는 유머도 있고, 서럽고 슬픈 이야기도 있다. 중요한 점은 모옌이 웃음과 슬픔의 기우뚱한 균형을 기가 막히게 잡으면서 '변화'가 갖고 있는 쓸쓸함의 속성을 핍진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세 인물의 희로애락과 중국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역사적 과정은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교직된다. 문학이 한 개인의 삶을 통해 그 시대와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때 <모두 변화한다>는 매우 훌륭한 교과서라 할 만하다.

참고로 '가즈51'은 루원리에게 퇴짜 맞은 허즈우가 고향집에 그대로 세워두고 있다가 장이머우 감독이 <붉은 수수밭>을 찍을 때 영화 소품으로 팔린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불타 없어져 버린다. 한때는 동네 사람들 모두를 매혹시켰던 트럭이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모두 변화한다> (모옌 씀·문현선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12. | 1만2000원)



모두 변화한다 - 모옌 자전에세이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생각연구소(2012)


#모옌 #모두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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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씁니다. 문피아에 '천재 아기는 전생을 다 기억함'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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