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새누리당 박인숙 외 9명의 국회의원이 초중등교육법의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는 교과용 도서의 사용에 관한 법률 규정이다. 제29조의 2항에 "교과용 도서는 한글로 작성하되, 그 뜻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한문교육용 기초 한자를 함께 쓸 수 있다"라는 규정을 새로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즉 초중등 교과서를 한글로만 기술하지 말고, 한자를 병기하자는 주장이다.
법률안 개정의 이유로, 10명의 국회의원은 국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어휘력을 신장시키고 우리 문화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한자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특히 박인숙 의원은 우리말의 70%를 한자어가 차지하고 있기에, 초중등 교과서에서 한자의 병기를 강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 발의한 개정 법률안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한자 병기로 국어의 이해와 어휘력이 신장되지 않는 점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국어사전을 자주 활용하면 우리말의 어휘력은 확장된다. 초등학교부터 잘 모르는 어휘에 대해서는 국어사전을 찾는 습관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이나 전자사전을 통해서도 우리말 어휘를 찾을 수 있다.
둘째, 초중등의 교육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문화의 폭넓은 이해를 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한문 교과에서 한자 교육을 충분히 실시하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에서도 정규교육과정인 재량활동, 특별활동 시간을 통해 한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충분히 한자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우리말과 한글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교과서의 한자 병기는 우리 말글의 읽기, 쓰기, 말하기 교육에 방해만 주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말의 70%가 한자어가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이러한 주장은 일제침략자의 핵심기관인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어사전>(1920)에 뿌리를 둔 것이다. 침략자들은 사전의 올림말 수로 한자어를 70%나 되게, 순우리말은 고작 30%에 지나지 않게 만들었다. 한자숭배파의 좌장이었던 이희승과 남광우가 이런 주장을 계승하였다. 반면에 일제시기 독립운동을 전개한 학술단체인 한글학회가 완성한 <큰 사전>(1957)에서는 순우리말이 47%를, 한자어가 53%를 차지하고 있다. 침략자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다음의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에도 서울 주재 일본대사관은 한글전용을 반대하는 공작을 자행하였다. 1988년 한글신문인 한겨레신문이 창간된 뒤에 일본의 마이니찌 신문의 기자가 찾아와, '신문에 한자를 반드시 써라'라고 강변하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한자를 사용하도록 획책한 이유는 20세기의 망령을 청산하지 못한 데에 있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이 문자생활에서 한글과 한자를 계속 사용하게 한 뒤에, 유사시에 일한혼용체의 일본어 문장을 강요하기 쉽기 때문에 한자 사용의 공작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1세기가 된 지금에 문자생활에서 국한문병기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어리석은 일이다. 국한문혼용 문장의 최후 보루였던 서울대학교의 <대학국어>도 2004년부터 한글전용으로 편찬되었다. 대학교의 교재에서도 사라진 한자가 초중등교과서에 다시 부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나라의 문자 생활은 한자 전용에서 국한문혼용으로, 다시 국한문병기로 이어졌다. 20세기말에 들어와 국문전용(한글전용)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책은 한글로 작성되어 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그런데 해방 이후 50년 동안 한자숭배세력들은 교육당국에 압력을 넣는다든지, 헌법소원을 내서 초중등교과서의 한자병기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하지 못하였다. 최근에도 소위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라는 단체가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의 실시를 주장하면서, 국어기본법의 한글 전용 정책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이 단체는 지난 20세기 내내 한글전용 정책을 방해하여 온 한자숭배파의 노선을 이어왔다.
이 단체의 주장을 대변하고자 하여, 이번에 10명의 국회의원들이 초중등교육법의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것은 아닐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그렇다면 이 개정 법률안을 철회하여 주기를 바란다. 국민 생활에 더 나은 법률안을 국회의원이 발의하여 국민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