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1일부터 노조파괴중단 등을 촉구하며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 인근 굴다리에서 고공농성을 151일째 벌여 온 유성기업 아산지회 홍종인(41) 지회장이 3월 20일 오후 2시 농성을 중단했다.
급격한 건강 이상을 보이며 농성을 중단한 홍종인 지회장은 현재 천안의료원으로 후송돼 정밀진단과 함께 체력 회복을 위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유성기업 노조에 따르면 "홍종인 지회장은 151일 동안 한 번도 일어서지 못한 채 고가다리 위에서 농성을 했기 때문에 팔다리 근력이 소진한 상태"라고 밝혔다. 또 "혈전증 우려가 커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라며 "농성 중단 이후 건강상태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홍지회장의 농성을 중단하고 동시에 현장 조합원의 집단적 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한다고 전했다.
김순석 유성기업 아산지회 부지회장 등 노조 지도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성기업의 '공격적 직장폐쇄와 용역폭력,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시나리오, 사용자노조설립 지배개입과 부당노동행위' 등 악랄한 노조파괴 공작은 홍 지회장의 목숨 건 투쟁과 조합원들의 힘으로 사회쟁점화 됐다"며 "유시영 사장은 150일 넘도록 사태해결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고 홍종인 지회장의 목숨을 위태로운 상황까지 몰고 간 당사자"라고 비판했다.
홍종인 지회장은 "그동안 구속된 노동자가 17명이고 해고자가 27명이며 수십명이 용역폭력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유성기업 경영진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은 유성기업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공정한 법의 잣대로 엄중 처벌할 것을 촉구하며, 지금이라도 유시영 사장은 사태해결을 위해 즉각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용역깡패에 맞아 부상당하고, 공권력에 구속당하고"
천안의료원에 입원치료 중인 홍종인 지회장은 정밀검사와 함께 재활을 위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겨울 영하 20℃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추위도 견뎌 냈지만 최근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혈전증과 팔·다리 감각마비 증상을 호소해 왔다.
쪼그리거나, 엎드리거나, 눕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그의 몸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앙상한 다리에는 근력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다음은 홍종인 지회장과 일문일답.
- 지금 몸 상태는 어떤가."나도 잘 모르겠다.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후에 단 한 번도 발을 딛고 일어서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다리에 힘이 없다. 의사도 다리에 근력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고공농성을 시작할 때는 매일 변비로 고생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먹는 것을 소화 시키지 못해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 몸에 온전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 고공농성 151일 만에 내려왔다. 지금 심정은."고공농성장에서 내려올 때 동지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모여 있었다. 용역깡패에게 맞아 부상당하고, 공권력에 구속당하고, 회사에 부당해고 당하고…. 동지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물을 흘렸다. 어떤 동지는 펑펑 울었다. 이런 모습으로 내려오려고 올라간 것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니 착잡하다. 우리는 회사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나 경영진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이게 과연 어떤 심정이라고 말해야 할까. 뭔가 많은 것이 느껴지지만 그게 뭔지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
- 유성기업 사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달라."유성기업 사태는 강도 높은 야간작업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면역력 저하로 급성 폐혈증 사망, 돌연사 등 근로자들의 사망사고가 계속되자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조합원과 이를 수용하지 않는 사측이 충돌하며 시작됐다."
- 고공농성을 하면서 회사 측에서 달라진 점은 없는가. "그대로다. 유성기업은 2011년 5월 기습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노조는 이에 맞서 공장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사측은 공권력을 투입하고, 용역을 비롯한 기업들 사이에서 노조파괴 전문집단으로 알려진 창조건설팅에 의뢰해 노조 파괴공작을 벌였다.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지금도 변함없이 진행되는 것 같다. 유성기업 측은 노조간부와 조합원들에게 수십 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황이다. 정부기관조차 노조 측에 1억2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조합원과 그 가족들은 직접적인 생계곤란을 헤쳐 나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손해배상 청구 등 이중삼중의 탄압을 받고 있다.
- 고공농성을 통해 세상에 알리려 했던 내용은."유성기업 경영진은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대포차로 조합원에게 돌진해 사상자를 내고,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현대자동차가 가세하고, 외부에서 용역을 투입해 근로자를 폭행했다. 이처럼 상상할 수도 없는 불법을 저질러도 어찌된 일인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은 자본가의 편에 서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유성기업사태가 청문회를 통해 부당노동행위와 폭력사태가 여실히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법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가혹하고, 회사에는 한없이 너그러워 수사는 2년째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우리는 노동자의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잘잘못을 명확하게 가려서 처벌할 사람은 처벌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노동자다. 정당한 노동자들의 외침에 메아리가 되어 줄 사회적 연대가 절실함을 알리고 싶었다.
- 지금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유성기업 노조는 그동안 회사 측의 부당행위에 대해 23차례에 걸쳐 고용노동부에 고소했지만 노동부는 아무런 결과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또다시 보강수사를 지시한 상황이다. 조합원의 복직과 부상자처우, 손해배상철회, 노조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 회사 측이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노동자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회사 측의 부당한 행위와 자본의 힘이 이 사회를 지배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 되겠는가. 만일 회사 측이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벌여왔던 투쟁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일 각오가 돼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시사>와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