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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대골목 아래에서 올려다 본 '망대'.
망대골목 아래에서 올려다 본 '망대'. ⓒ 성낙선
춘천은 매우 느리게 변하는 도시 중에 하나다. 춘천은 서울 춘천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서울 상봉역에서 춘천을 오가는 복선전철이 깔린 이후로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하지만 춘천의 옛 도심에 속하는 교동이나 효자동, 약사동과 같은 동네는 여전히 60~70년대에 생겨난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때때로 교동이나 효자동의 좁을 길을 걷고 있다 보면, 이곳에서 60~70년대에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찍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낮은 언덕 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택들, 그 주택가에 시멘트 블록을 쌓아올린 담벼락들, 사자머리 모양을 한 문고리에 검게 녹이 슨 낡은 철문들에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곳에 가면 내가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이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허름한 주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골목은 또 왜 그렇게 좁던지, 더러는 사람 하나 온전히 지나가기 힘든 곳도 있다. 그런 좁디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다 보면, 세월이 유독 이곳에서만 더디게 흐르고 있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할 때도 있다.

춘천에서는 강물조차 매우 더디게 흐르는 곳이다. 춘천호나 의암호 같은 호수로 흘러들어간 물은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봄내'라 불리는 춘천(春川)은 분명 매우 더디게 흐르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춘천을 낭만적인 도시로 부르는 데는 춘천이 가진 그런 특성도 한몫한다.

 도로에서 올려다본 망대와 그 주변 풍경. 주변에 도로 확포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도로에서 올려다본 망대와 그 주변 풍경. 주변에 도로 확포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 성낙선

개발 붐이 불기 시작한 옛 동네, 오래된 주택가

 조합설립을 축하하는 현수막.
조합설립을 축하하는 현수막. ⓒ 성낙선
그런데 그렇듯 느리게 흐르던 춘천이 요즘 한층 더 빨라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하긴 춘천이라고 해서 늘 그렇게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있으라는 법은 없다.

아무리 느리게 흐르는 춘천이라고 해도 세월이 그저 무한정 느리게 흘러가지는 않을 터. 그리고 아무리 느리게 흐르는 강물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거친 바다를 만나기 마련이다.

하물며 인간이 쌓아올린 값싼 조형물들은 또 얼마나 빨리 무너져 내리던가? 오래된 것은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게 마련인데, 섭섭하게도 춘천이 지금 바로 '그 때'를 맞고 있다. 오래된 동네, 낡은 것들을 '새 것'으로 대체해야 할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한 번 일기 시작한 바람은 모든 걸 순식간에 뒤바꿔 놓을 것이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아리랑골목.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아리랑골목. ⓒ 성낙선

효자동이나 약사동 같이 좀처럼 변화가 일지 않을 것 같았던 산비탈 동네에도 어느덧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개발은 한 번 발동이 걸리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변화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어 온 동네로 번져나갈 것이다. 그 바람에 지금 그 동네를 핏줄처럼 연결해주던 골목길들도 조만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다.

개발이 시작되면, 모든 게 한꺼번에 사라져 버릴 터. 그와 동시에 그 집들과 집들 사이를 가르며 지나가는 골목길 같은 것은 애초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말 것이다. 마음 한 구석, 아릿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그 동네에서 그 골목길들이 사라지는 걸 애달파 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떠날 때, 다시 그리워할 것을 알지 못하는 탓이다.

 아리랑골목 이끼 낀 담장.
아리랑골목 이끼 낀 담장. ⓒ 성낙선

시대를 달리하면서 기능을 달리해 온 '망대'

 아리랑골목 들어가는 길.
아리랑골목 들어가는 길. ⓒ 성낙선
골목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효자동과 약사동의 그 많은 골목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용케 개발을 피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게 됐다. 도시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마을에서 조합 창립총회까지 열렸으니 이제 개발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곳 '망대골목'이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망대골목은 춘천을 대표하는 골목 중에 하나다. 그 골목이 마을 중앙 산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망대'와 함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서, 골목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곳을 여행할 수 있는 날도 그리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효자동과 약사동 골목을 걷는 시간은 미래에 되살리기 어려운 여행이 될 것이다.

망대는 일제시대 춘천 시내의 '화재'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망대 위로 올라서면, 그 아래로 춘천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여서 화재를 감시하는 데 더 없이 좋았다. 해방 후 망대는 근방에 자리 잡은 춘천교도소를 지키는 감시 초소 역할을 했다. 이곳에 지금과 같은 마을이 형성된 것은 1981년 교도소가 거두리로 이전한 뒤이다.

교도소가 옮겨 간 자리에는 약사아파트가 들어서고, 그 주변으로는 주택가가 더 넓게 자리를 잡게 됐다. 하지만 망대는 제 기능을 찾지 못했다. 화재 감시 시스템이 현대화되면서부터는 영원히 그 기능을 잃게 된다. 그 결과 지금은 민방위훈련이 있는 날, 사이렌이 울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망대에 확성기가 달려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붕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리랑골목'

 망대 올라가는 길.
망대 올라가는 길. ⓒ 성낙선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초기 망대골목 마을은 산동네 판잣집이었다. 세상의 모든 달동네들이 그렇듯이 산비탈 위로 층층이 집들이 올라서고, 지붕이 다닥다닥 맞붙은 집들 사이로는 좁은 골목이 형성됐다. 마을에 도로가 깔린 후로는 더 많은 집들이 들어섰다. 인구도 부쩍 늘었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 온전한 하나의 마을이 형성됐다.

그 후로 이 마을에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골목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망대골목 중에서도 가장 골목다운 골목은 산 정상을 넘어가는 곳에 있다. 이 골목을 마을 사람들은 '아리랑골목'이라고 부른다. 그럴싸한 이름이다. 사람들은 이 골목이 고개를 넘는 형국이고, 이리 저리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아리랑골목은 다른 골목에 비해 특히 더 좁은 걸로 유명하다. 게다가 골목 양쪽을 지나가는 지붕은 또 얼마나 낮은지 키가 큰 사람은 어깨가 스칠 정도다. 따라서 이 골목에는 태양이 높이 떠 있는 한낮에도 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 담벼락에 이끼가 자랄 정도다. '세월의 이끼'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바로 이곳으로 가면 된다.

아리랑골목을 걷고 난 뒤에 망대를 오른다. 그런데 망대로 올라가는 길이 분명하지 않다. 마을 아래에서 슬쩍 올려다봐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길은 이정표가 따로 없어 주의 깊게 찾아가야 한다. 망대를 찾아가는 골목길은 겉으로 봐선 막다른 길에 더 이상 다른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골목이 너무 좁은 탓에 밖에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망대. 그 아래 백구 한 마리.
망대. 그 아래 백구 한 마리. ⓒ 성낙선

골목이 사라진 자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

 망대골목, 어느 집 담장 너머 봄소식을 알리는 나뭇가지.
망대골목, 어느 집 담장 너머 봄소식을 알리는 나뭇가지. ⓒ 성낙선
길을 찾아 어렵게 찾아간 망대인데, 그 망대에 아무나 오를 수 없다. 게다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망대 밑에 목 끈을 풀어놓은 백구 한 마리가 강단 있게 버티고 서서 좀처럼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 그놈의 백구가 어찌나 사납게 으르렁대는지 망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갔다간 무슨 낭패를 겪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고민 끝에, 망대에서 춘천 시내를 내려다봐야겠다는 생각을 깨끗이 포기하고 내려온다. 망대골목으로는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공사는 2년 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어느 시점까지는 언제든 여행이 가능하다. 아파트 건설은 마을의 오랜 숙원 사업 중에 하나다. 마을 사람들은 개발이 늦어지면서 불이익을 받아 왔다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곳의 낡은 집들과 좁은 골목길은 이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일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골목길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골목길을 걷던 사람들의 정서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골목길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 대신 '향수'가 남는다. 골목은 그렇게 해서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는다.

망대골목 근처에는 죽림동성당, 중앙시장(춘천낭만시장), 명동 닭갈비골목과 같이 춘천을 대표하는 여행 명소들이 여러 곳 있다. 망대골목에서 내려와서는 도로 건너편 눈앞에 보이는 죽림동성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 여행은 거꾸로, 명동에서 시작해 망대골목에서 끝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망대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춘천 풍경.
망대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춘천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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