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오마이북)를 발견했을 때, 이 책은 그저 빛바랜 희망처럼 보였다. 진보의 꿈에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던졌던 지난 대선이었다. 이길 수 있으리라 믿었던 선거에서, '99퍼센트의 희망'은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보수세력은 대통령과 의회를 장악했고, 그들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다.
진보적 공약은 슬그머니 폐기된다. 대선 직후부터 노동자들은 다시 죽음의 행렬을 잇고, 강정마을의 구럼비는 부서지고 활동가들은 잡혀간다. 따돌림을 당했던 아이와 전교 1등이었던 아이 모두 비슷한 이유로 자살하는 세상이다. 도대체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두 주저앉아 있었다.
뭔가에 대한 희망이 패배했을 때, 그 좌절의 쓰라림은 더욱 고통스럽다. 일어서기 힘든 것은, 그만큼 상처가 깊은 까닭이다. 이명박 정권을 견디던 단 하나의 희망은 '5년 후'였는데, 이제 그 희망은 기약마저 잃었다. 그토록 강렬히 열망하던 우리 희망은 이렇게 속절없이 스러지고 있는데 다시 희망이라니, 허망하다. 하여 대선 직후 출간된 이 책도 그렇게 보였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촉발돼 아랍과 북아프리카 등지로 확산된 반(反)정부 시위 '아랍의 봄'은 전 세계에 진보의 가치를 강렬히 각인시켰다. 집권세력의 부패·빈부격차의 심화·청년 실업 등으로 인해 분노한 민중들은 연대해 강력히 저항했고, 마침내 이집트·리비아·예멘 등에서 승리했고 부패한 정권을 물리쳤다.
불붙은 민중의 자각은 '99퍼센트의 함성'으로, '오큐파이 운동(Occupy Movement)'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깨어나자 2012: 석학을 만나다'를 묶은 것이다. 기사가 연재될 때마다 감동과 감탄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 책에서 만난 석학들은 대부분 오큐파이 운동에 사유와 이론을 제공하는 정신적·학문적 지도자들이었고 지지자들이었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어떤 가시적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고 있다(<르 몽드 리블로마티크> 1월호 '오큐파이 운동이 빠진 함정' 참조). 같은 해, 한국 대선에선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건 박근혜 정부가 진보 진영의 후보를 이기고 당선됐다.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행보를 볼 때 그리고 집권 직후 진보적 대선 공약을 폐기하는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볼 때, 오큐파이 운동이 한계에 부딪힌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의 '희망 연대'는 결국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민중들의 자괴감, 그 절망의 깊이다.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같은 것을 바란다는 그 본심을 이해하려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생기는 현실의 원인을 진단하며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세계의 석학들은 생존 가능한 사회, 억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답을 한국인이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본문 12쪽, 프롤로그).희망이란 단어를 허망하게 인식한 나의 지친 감수성은 문득 저자의 문장에 생기를 되찾았다.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아니라 '같은 것을 바란다는 그 본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진 그 마음과 문재인에게 한 표를 던진 나의 마음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의 같은 마음은 바로 공동선(共同善)을 향한 갈망에 닿아있다는 것 말이다. 더욱이 세계의 석학들은 그 해답을, 우리의 가야 할 길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단다. 안희경은 이 지점을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설정했다. 그것을 인식한 나는, 이미 <오마이뉴스>를 통해 읽었던 이 대화록을 다시 새롭게 만나기로 했다.
인터뷰어(interviewer) 안희경은 한국인의 지평에서 민주주의·정치·사회·교육·환경생태·여성 부문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이(interviewee)인 세계의 석학들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본의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서 지켜내던 공동선(共同善)의 가치에 대해 답변했다. 그리고 그 두 지평이 만나는 지점에 하나의 생각이 온갖 난해한 절망을 딛고 다시금 희망을 추동한다.
세계의 석학들에게 희망을 찾다
안희경이 놈 촘스키 교수를 찾은 것은 구럼비 바위에 대한 첫 번째 발파가 있었던 지난해 3월이었다.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되던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Don't Kill Kangjung Kurumbi'의 첫 글자를 딴 'D.K.K.K 운동'이 국제적으로 이슈가 됐다. 촘스키 교수와의 대화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부터 시작했고, 그는 'D.K.K.K'가 쓰여 진 종이를 들고 마음을 함께했다.
안희경은 '신자유주의의 논리 아래 구럼비 바위가 파괴되듯 세계질서의 변화 속에서 오랜 시간 이어온 인간의 고유한 터전이나 생명에 대한 존엄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토로했고, 촘스키는 신자유주의 규칙을 거부하는 오큐파이 운동을 주목하며 다수 민중의 의지를 구현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촘스키의 연구실에 걸려 있던 이스라엘 소인이 찍혀 반송된 편지 한 통이었다. 팔레스타인으로 보냈지만, 그런 주소를 찾을 수 없다는 '수취인 불명' 통지가 찍혀 반송된 편지였다. 유대인 촘스키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통 속에 함께 있고자 했다. 그는 2012년 10월 18일 여든다섯의 나이로 처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방문해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본문 38쪽)두 번째로 만난 석학은 로버트 서먼 교수였다. 그는 피의 혁명, 뜨거운 혁명은 강력해 보이나 한시적이며 또 다른 역동을 야기하기 때문에, 개인 내면의 혁명을 통한 비폭력적 '차가운 혁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여성이었다. 여성이야말로 '평화를 지키려는 본성'을 가진 존재로, 군국주의적이며 산업적 탐욕에 물든 남성의 폭력적 세상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봤다. 또한 진정한 여성성은, 평화의 본성을 거스르는 '마초적 여성'과 남성적 관습에 지배당하고 길들여진 여성을 극복할 때 구현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옳은 지적이다.
4·11 총선 직후 만난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프레임' 이론의 권위자였다. 그는 진보 진영을 향해 "도덕적 가치 속에서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보통 진보 정치인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 접근으로 정책적 우위를 점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종종 실패한다. 레이코프는 공감의 언어를 그리고 네거티브 캠페인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디어를 장악한 보수에 맞서 진보의 언어는 더욱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진보 정치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충고가 아닐까 싶다.
자유주의적 활동을 가동시키려면 고유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거죠. 저들의 언어가 미디어를 장악했고 저들의 언어가 표준이 됐기에, 우리는 창의성을 발휘해서 우리의 언어를 개발해야 합니다.(본문 109쪽)우리나라에 <몰입>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하이 첵센트미하이 교수와는 교육의 문제를 다룬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학생에게 자율권을 주고, 학생 스스로 배움에 책임감을 갖게 하고, 동료와 함께 팀을 이뤄 문제를 풀어가게 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교육 시스템의 근간이 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안희경은 카밀리아 발도로프학교의 예를 들어, 경쟁보다는 협력을 배우면서 스스로 행복을 찾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그 학교의 모토 '교육은 경주가 아니라 여정(旅程)이다'를 소개한다.
윤리학의 거성이자 실천하는 지식인 피터 싱어 교수는 '동물의 산업화'를 호되게 비판하며, 빈곤의 문제와 좌파가 역사적으로 실패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가 주장한 것은 '다윈주의 좌파'였다. 그는 정치적인 세력으로서의 좌파가 아닌 더 나은 사회를 이루려는 하나의 사상으로서의 좌파를 모색했다. 즉 공공의 이익을 향한 공리주의적 실천이었다.
신학자이자 민중 지도자인 코넬 웨스트는 마틴 루서 킹의 뒤를 잇는 상징적 존재다. 인종 문제·빈곤문제에 맞서 싸웠고 강력히 저항했다. 그는 가난을 신자유주의 폭거의 산물인 '현대판 노예'로 정의했다. 그는 완벽한 한국어 발음으로 '민중'이라는 단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The Dictator's Daughter)'로 불렀다. 또한 예언자적 영성을 강조했다. 불평등과 타협하지 않고 현실에 저항한 예언자적 영성은, 종교와 세상, 종교와 민주주의를 잇는 고리로서 공공선을 추구한다. 한국의 기독 교회들이 외면하는, 그래서 무기력한 교회들이 들어야 할 통찰이다.
마지막 대화는 에코-페미니스트인 반다나 시바와 함께한다. 시바는 인도 델리에 기반을 두고 토종 종자 보전과 생태적 환경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나는 특히 그녀와의 대화가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여성을 수동적 존재로 보는 것에 단호히 반대했다. 되레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자연이 착취의 대상이므로 마땅히 죽는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여성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고, 나는 훗날 나의 딸의 성장한 다음 이 문장을 주기 위해 옮겨 놨다.
보통의 여성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첫째, 열등하다고 느끼지 말자는 겁니다. 두 번째는 소외감을 느끼지 말자는 것이고, 세 번째는 그대의 가슴이 그대의 마음에게 말하도록 허락하자는 것입니다.(본문 258쪽)또한 그녀는 한국의 자랑인 기업 '포스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세계은행은 한국의 자산을 사유화했고, 포스코의 실제 오너는 5%의 주식을 가진 워런 버핏이다. 포스코는 중국으로 철강을 수출하기 위한 넓은 육로 확보를 위해 농민들을 강제 이주시켰고 땅을 수탈했다. 경찰이 무력으로 어린이와 여성을 공격했고 살해했다. 그곳은 원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숲과 폭포가 있는 곳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것이다.
저는 세계은행이나 포스코가 한국의 부를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한국의 부는 열심히 일한 한국인들이 만든 겁니다…. 제가 한국인들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겁니다. "여러분은 인도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 죽음에 기초한 번영을 얻고 싶은가요? 우리는 하나의 인류입니다." 이는 '나는 오른손의 번영을 돕기 위해 내 왼손을 자를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본문 259쪽)"미국은 부시로부터 살아남았다는 걸 기억하길"<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당시 기사로 읽던 느낌과 책으로 읽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아랍의 봄' 이후,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곧 점령할 것만 같았던 오큐파이 운동을 접하며 흥분하곤 했다. 죽음을 담보로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희망버스로 309일만에 기어코 구출했던 감격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껏 부픈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그런 맥락 속에 석학들의 대담은 희망의 전조로 읽혔다. 곧 다가올, 불과 며칠, 몇 달만 견뎌내면 도달할 희망처럼 보였다. 하지만 희망은 결국 좌절했다.
다시 읽은 이 대화록은 여전히 희망의 전조로서 유효하다. 되레 세계의 석학들은, 정치적 역학 구도 따위로 희망의 가능성을 가늠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의 민중들, 그들의 결기어린 희망. 그 거대한 흐름에 주목하되, 그 시작은 나의 삶의 영역에서, 나란 존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다나 시바는 온 세상이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임을 강조했다. 온 세상이 연결돼 있기에 결국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로버트 서먼은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라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또한 세계의 석학들은 한국의 역사에 주목했다. 피터 싱어는 한국의 대선 결과를 접하며 "무엇보다도 이걸 기억해주세요, 미국은 조지 W. 부시로부터 살아남았다는 걸 말입니다!"라고 위로했다. 희망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 촘스키는 "그 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을 희망의 상징으로 기억했다.
1980년대, 그때 한국인들은 잘 조직됐고, 함께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매우 용감하게, 매우 효율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던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무너뜨렸죠. 이 땅에 대단한 민주적 혁명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바람을 일으켰죠. 그때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해냈습니다.(본문 42쪽)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 총선이나 대선은 오히려 작은 싸움이다. '롬니에 비해 오바마는 단지 차악(次惡)일 뿐'이라는 로버트 서먼의 지적처럼, 지난 대선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더라도 어쩌면 그것은 차악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동선의 가치는 결코 한걸음에, 단숨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단호한 실천으로 시작된 한 사람의 희망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생각, 하나의 실천이다. 그리고 연대하는 것이다. 2011년 10월 주코티에서 오큐파이 운동을 펼치던 시위대에게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길로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유쾌한 순간을 맞고 있지만, 축제를 여는 데는 그렇게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중요한 건 축제가 열린 그 다음날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엇이 변화되어 있을까요?(<르 몽드 리블로마티크> 1월호 중에서)자, 우리 자신이 희망의 전조임을, 이제 우리 스스로 입증할 차례다.
덧붙이는 글 |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안희경 대담·글 | 오마이북 | 2013.01. | 1만5000원)
이 기사는 제 블로그(http://soli0211.tistory.com)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