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고 320명, 구속 32명, 수배 45명, 손해배상 가압류 수백억 원…. 창립 10년을 맞은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비정규직 노조)에 그동안 가해진 일들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과 2012년 '자동차 공정 특성'을 들어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은 대법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164일째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 위에서 여전히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여기다 최근 비정규직 노조가 가장 힘을 얻고자 한 정규직 노조(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회사 측이 내세우는 신규채용안을 일부 인정하자며 불법파견 교섭에서 빠졌다.

진퇴양난에 빠진 비정규직 노조.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가 이런 비정규직조합원들에게 참회의 글을 썼다. 그는 29일 아침 기자에게 보낸 글의 제목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결성 10년, 불법파견 10년, 정규직 노동자의 반성문'이라고 했다.

현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교육위원으로, 현대차 노조 부위원장, 2006년~2008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을 지낸 하부영씨는 "비정규직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현대차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의 잘못이며 조합원들에게 반성하고 고백하고 사과한다"며 "조합원들은 비정규직들을 고용안정 방패막이로 사용하자는 회사의 유혹에 내가 살기 위해 어렵고 힘든 일을 떠넘긴 것"이라고 일갈했다.

하씨는 그 글에서 현재 현대차 내의 실상을 고백했다. 그는 "회사의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은 벌써 3년째 본연의 업무는 내팽개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혹시 점거농성을 하지 않을까 공장 출입구와 옥상 입구에서 보초 근무를 선다"며 "빠지고 싶어도 인사평가에서 하위 5%를 받으면 PIP교육(역량강화교육)이라는 퇴출프로그램으로 내몰리게 되므로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학을 나와 보초 서려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느냐'며 무너진 자존감에 괴로워한다"고 전했다.

"비정규직 감시에 동원된 정규직, 무너진 자존감에 괴로워해"

 지난 2006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던 하부영씨(가운데)가 하청노동자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거리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던 하부영씨(가운데)가 하청노동자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거리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 박석철

현장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내려가는 지침에 대한 일갈을 계속했다. 그는 "현장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되어 작업을 하는데, 이를 사내하청업체의 독립적 경영과 노무관리로 은폐하기 위해 서로 말도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가 있다"며 "품질문제 개선의 주체인 관리자들은 보초를 서고, 현장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품질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소통이 단절된 상태로 벌써 3년째 차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하부영씨는 현재 정규직 노조 교육위원으로 조합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정규직 조합원 교육 강사로 자원해서 나선 것은 왜곡되고 비뚤어진 대공장 정규직 노동운동, 자본주의에 부역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를 공격적으로 들추어내 바로잡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낡은 관행과 잘못된 상식이 단번에 고쳐지지 않겠지만, 지금 상태가 정의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조합원들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좋은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으로 과로사로 죽어가는 소위 '노동귀족'의 현실과, 노동자 간 신분차별과 격차의 상징이자 사회 양극화의 상징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는 현대자노조운동의 정당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 고립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받는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한 노동귀족, 대공장 정규직 책임론, 고임금론, 대공장 이기주의, 배부른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정규직의 고용안정 또한 회사는 언제든지 절반의 임금을 주는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차 정규직의 비정규직 외면에 대해 "이 지경까지 온 건 조합원 잘못이 아니라 노조간부와 활동가들의 잘못이며 조합원들에게 반성하고 고백하고 사과한다"며 "조합원들은 비정규직들을 고용안정 방패막이로 사용하자는 회사의 유혹에 내가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고, 어렵고 힘든 일을 떠넘기니 일하기 편해서 비정규직을 선호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정규직 노조, 보수언론 '악마의 덫'에 빠져... 원하청 공동투쟁 복원해야"

 지난해 10월 17일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에서 대법 판결 이행 등을 요구하며 천의봉 사무장과 함께 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병승씨. 29일로 철탑농성 164일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17일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에서 대법 판결 이행 등을 요구하며 천의봉 사무장과 함께 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병승씨. 29일로 철탑농성 164일을 맞았다 ⓒ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하부영씨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현대차 노조가 앞장섰던 시절을 상기했다. 그는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세상을 건설하자는 약속을 망각했고 의식은 마비되었다"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던 정의감은 사라지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현장이 되었다"고 실토했다.

이어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강도요 살인"이라며 "현대차 정규직이 살기 위해 비정규직을 먼저 해고시키자는 담합과 공동모의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일이기에 우리 모두가 반성부터 하자고 호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부영씨는 정규직 노조의 통렬한 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현대차 공장 담벼락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국민들은 회사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운동을 비난과 지탄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보수언론은 이 빈틈을 파고들어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오심과 적개심에 불을 붙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이제이'라는 보수언론 악마의 덫에 걸린 것린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가장 앞장서야 할 이유"라며 "정규직 노조가 원하청 공동투쟁을 복원하고 특별교섭에 힘을 싣는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촉구했다. 그는 "대법원과 중노위의 불법파견 판정에 따라 현대차 노사간에 합의했던 비정규직 관련 모든 합의가 원인무효임을 선언하고 불법경영에 더 이상 동조하거나 협조하지 않을 것을 천명해야 한다"며 "원하청 공동투쟁을 복원해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부영씨는 "나부터 시작해 조합원과 집행부, 대의원과 활동가들과 함께 원하청 연대투쟁 복원에 앞장서고 불법파견을 철폐해 정규직 전환 투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끄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며 "최병승, 천의봉 조합원의 철탑 고공농성이 반년이나 된 것에 미안하고 죄스럽다. 빨리 해결되도록 노력하고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현대차 노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