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네요. 대통령이 달라져도, 여전해요. 다시 움직여야죠. 봄날의 싹이 움터 오르는 것처럼요.(웃음)"
찬바람이 봄을 시샘하는 3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천 송이의 국화가 담긴 상자가 놓여 있었다. 김성주(33·서울 도봉)씨가 국화 한 송이를 집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윤형씨의 1주기다. 36살이던 1년 전 이날, 이씨는 자신이 살던 임대아파트 23층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쌍용차 대량 해고 사태 이후 22번째 희생자였다.
"분향소가 죽음의 행진을 멈추게 한 것 같다"사망자가 이어지던 지난해 4월,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대한문 앞에 희생자 분향소를 세웠다. 김성주씨는 지난해 4월 첫 추모미사가 열릴 때에도, 그해 6월 '함께 걷기' 행진에도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함께 했다. 그 사이, 분향소는 관할 구청의 행정대집행, 방화로 인한 전소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행히도 분향소가 생긴 후로는 희생자가 2명밖에 안 생겼어요. 분향소가 죽음의 행진을 멈추게 한 거죠. 더 이상 희생자가 없어지길 바랄 뿐이에요"김씨의 주변으로 하나둘 국화를 든 사람들이 모였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노동위원장,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 조희주 노동전선 공동대표도 국화를 들었다. 경찰 추산 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대한문 앞에 섰다. 곧 범대위가 주최한 이씨의 1주기 추모대회가 시작됐다.
묵념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소프라노 권미숙씨의 아리아와 민중가수 박준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동영상을 보며 지난 1년을 회상했다. 이들은 "국정조사 실시하라" "박근혜가 해결하라"는 구호로 찬바람에 움츠려 있던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철탑에서 온 메시지..."쌍용차 해결 없이는 국민행복 기만"
경기도 평택에서 메시지가 왔다. 쌍용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서 131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 한상균 전 위원장의 목소리였다. 반가운 목소리에 대한문 앞은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다.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이 시대의 복지국가도 노동정책도, 국민행복도 모두가 기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추모대회 함께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그 소중한 한 분, 한 분 동지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이어 무대에 오른 김정우 현 쌍용자동차 지부 위원장은 "힘을 비축하기 위해 지난 3월에는 동지들을 A조, B조로 나눠 휴가를 보냈다"며 "박근혜와 맞서 한판 투쟁을 벌여 공장으로 꼭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지부장은 "철탑 골방에 갇혀 있는 동지들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좀 더 열심히, 그리고 강하게 투쟁하겠다"고 덧붙였다.
추모대회는 투쟁 선포문을 낭독하며 마무리 됐다. 이들은 "우리와 연대하는 모든 이들의 투쟁과 희망으로 지금까지 온 것처럼, 더 굳센 연대로 싸워나갈 것"이라며 "4월부터는 해고자 복직과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는 범국민선언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함께 살자"고 외친 행진, 경찰벽에 막혀...해고노동자 1명 연행
집회가 끝난 오후 6시 5분부터, 추모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을 거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행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찰이 막아섰다. 교통 혼잡이 발생한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대한문 앞 모든 길목을 차단해 행진을 가로 막았다.
참가자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 행진 막지 마라"며 거세게 항의하며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씨가 경찰에 연행돼 서울 관악경찰서로 이송됐다. 고씨가 연행된 후, 참가자들은 "연행자 석방하라"고 외치다가 오후 7시께 해산했다. 범대위는 이날 관악경찰서를 방문해 고씨 석방을 요구할 예정이다.
쌍용차 범대위는 다음달 30일, 쌍용차 평택 공장 앞에서 범국민대회를 열고, 5월 25일에는 '전국민 희망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