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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4일, 1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여 대형참사로 이어진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사고로 석유화학공단의 위험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화약고라 불리는 여수국가산단은 1960년대 말 호남정유를 시작으로 지금의 여수국가산업단지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1970~80년대 석유화학공장들이 하나 둘씩 입주하고 지금의 화학단지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1990년대 말 IMF 때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경기활성화에 힘입어 신증설을 해 기존 규모보다 3배 정도 커져 대규모 석유화학단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증설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석유화학공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늘어난 공장을 보면 한숨과 함께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증설이나 리멥핑(기존공장을 리모델하여 생산량을 증대)으로 공장규모는 커졌는데 오히려 운전할 인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기존공장에서 인원을 빼내와 신증설 공장에 배치하고 기존의 공장은 인원이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공정 합리화란 명목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구조조정을 통해 줄어든 인원만큼 남아있는 원청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배가 된다. 때문에 안전관리부터 각종 업무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림산업 폭발사고는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고이다.

눈앞에 보이는 성과 위해 무리수 두는 업체들

 여수산단 폭발사고 현장
여수산단 폭발사고 현장 ⓒ 현재순

정기보수공사(대정비공사)에 많은 협력사(건설업체) 건설노동자들이 들어와 보수공사를 하지만 원청인 공장인원은 공정운전을 하기도 빠듯한 인원이기에 협력사 공사를 지원·관리감독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원청노동자 한 사람이 여러 장의 작업허가서를 들고 안전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대정비 작업의 현실이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화학공장 특성상 수직 계열화 즉, 원부원료와 기타 공장운전에 기초적인 유틸리티를 공유하며 서로 주고 받는 형태이다 보니 어느 한 공장을 정기보수 하다보면 그곳과 연관되어 있는 타공장들은 가동률을 줄여야 한다. 혹 정비 기간이 길어지면 공장 자체를 꺼야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서로 협의 하에 일정을 조정한다고는 하지만 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에 따른 손실이 막대하니, 보수 일정을 최대한 짧게 잡거나 기존에 잡은 일정을 앞당겨 가동하는 일이 늘상 일어난다. 그렇다 보니, 안전은 이미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각 회사마다 경쟁구도에 있다보니 과도한 성과주의도 한 몫 한다. 일단 임원으로 승진을 하게 되면 성과에 따라 자신들의 입지가 정해지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위해 무리수를 두게 된다. 투자나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미 건설하도급문제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 최저가 도급제 뿐만아니라 최저가 낙찰제에 공장들이 멍들어 가고 있다. 석유화학 공장 특성상 소모되는 자재나 기계부품들이 고가이거나 각 공정에 맞는 특수한 재질들이 많이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최저가 입찰이 정착되다보니 가장 싼 제품들이 들어오고 싸게 들어오는만큼 품질에는 기대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청주 염소 누출 때처럼 사람이 밟아 파손될 정도의 부품을 사용하게 되고 사고가 나는 것이다.

더구나 공정의 안정이나 필요시 요구되는 자재나 부품들을 일정부분 확보해야 하지만, 당장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확보자체를 없애거나 수량자체를 줄여 유지보수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지보수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하니 공장 노후화는 그만큼 빨라지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늘 바생하다가 급기야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공장 노후화는 가중되고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다 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강해지고 공장과 노동자의 피로도는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이처럼 화학공단은 이미 계속된 사고를 예고하고 있다.

'또 하나의 속보'를 보게 될 현실, 안타깝다

여수산단의 각 공장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다. 그러다보니 공장의 가동율 역시 늘상 최고를 기록한다. 예를 들어, 30만 톤 공장을 가동하면서 45만 톤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게 뭘까! 가동률이 높을수록 정기적인 보수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고 적시에 보수가 이루어지질 않다보니 각 공장들의 노후화는 그만큼 빨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변해가는 것이다.

여수 대림산업폭발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나가고 있다. 이천냉동창고 화재로 40여명이 죽었을 때나 엘지화학청주공장 폭발로 8명이 죽었을 때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관심 밖으로 사라질 것이다.

정부는 특별안전점검을 한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점검을 나오는 각 기관들의 공무원들은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고 점검기간을 미리 공지하니, 회사는 청소 깨끗이 하고 박자를 맞추어주면 벌금 몇 백, 몇 천으로 끝이다. 결국 사고가 나면 그곳에서 일하는 원청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이다.

적정인력을 보장하지 않고 최저가낙찰제로 정비보수관리를 위한 공사를 강행하는 한, 대림 여수폭발사고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 전국 어느 석유화학공단에서든 앞서 언급된 일들이 무한반복될 것이고 결국 '또 하나의 속보'를 보게 될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일과건강'에서 여수폭발사고 대책사업 과정에서 취합한 현장제보와 증언을 토대로 기사화한 것입니다. <일과건강>에도 실렸습니다.



#여수폭발사고#대림산업#산업재해#안전보건#일과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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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건강 기획국장으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사무국장이며 안전보건 팟캐스트 방송 '나는무방비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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