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 1일, 만우절이다. 아내와 내가 만나 약혼식을 올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지났다니... 세월은 참 화살처럼 빠르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때 우리는 약혼식 예물로 빨간 장미 한그루와 노란 장미 한그루를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시골 아내의 집 화단에 정성스럽게 심었다. 우리는 다이아몬드 대신 향기나는 장미를 심으며 우리들의 장밋빛 인생을 설계했다.
그런데 40년이 지나간 오늘, 우리는 장미를 심는 대신 우리나라 최북단 휴전선 인근에서 감자를 심었다. 우리가 이곳 임진강변에서 감자를 심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아무리 인연 따라 사는 것이 인간사라고 하지만 참으로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늘 이 순간이 중요하다. 아내와 나는 삽과 쇠스랑으로 3월 한 달 내내 일궈낸 자투리땅에 감자를 비롯하여, 옥수수, 당근, 곰취, 참취, 강남콩, 땅콩 등 무려 일곱 가지나 파종을 했다. 그리고 적상추, 치마상추, 꽃상추 씨를 모판에 뿌렸다.
연천의 날씨에 비해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주간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 비가 내리고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없는 것 같아서 파종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씨감자를 자르고 땅콩 껍질을 벗겼다. 씨감자의 눈이 마치 사람의 고사리 손처럼 부드럽게 나있다. 아내는 그 싹눈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감자를 반을 갈라냈다. 마치 보석을 다듬듯 정성스럽게 감자를 자르고 있는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고사리 손처럼 나 있는 씨감자 싹눈을 바라보노라니 40년 전 오늘, 장미꽃을 정성스럽게 심던 아내의 모습이 상기되었다. 그때도 약혼식 예물로 다이아몬드 보석 대신 장미꽃을 선물했는데, 40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아내에게 다이아몬드 대신 씨감자를 선물하고 있다니… 어찌 보면 남자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씨감자는 우리에게 풍성한 먹을거리를 선물해주는 생산적인 다이아몬드가 아닌가. 40년 전 오늘 아내에게 향기 나는 장미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면, 오늘은 영양분이 풍부한 감자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향기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다이아몬드보다, 향기 나는 장미꽃과 먹을 수 있는 감자가 더 소중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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