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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착한여행과 함께 라오스 산간학교에 햇빛발전을 지원하는 공동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2009년부터 꾸준히 라오스 산간학교에 태양광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민족이 사는 메콩강 유역 산간 학교 학생들은 하루에 10km이상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합니다. 이들 산간학교 기숙사에 지원되는 태양광 시스템은 아이들이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라오스 산간학교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햇볕발전 이야기에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라오스의 남대문인 빠뚜사이(승리의 문).
라오스의 남대문인 빠뚜사이(승리의 문). ⓒ 이영란

[기사 수정 : 12일 오후 2시 30분]

2012년 10월 초 나는 라오스 수도 위양짠에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엽서 한 장을 샀다. 한국으로 치면 이태원과 세종로를 합친 듯한 역할을 하는 남푸(분수라는 뜻. 예전엔 분수를 중심으로 방사형의 골목들이 이어져 있어 공원과 광장의 기능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급 식당, 술집 등이 이를 바로 에워싸고 들어서서 그 밖에선 분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분수가 사유물처럼 되어버린 거다) 거리에 위치한 기념품 상점에서였다. 라오스를 가게 되면 거의 빠짐없이 지나게 되는 거리였고 나는 늘 이 상점에서 서너 장의 엽서를 사서 한국으로 부치는 게 버릇이었다.

엽서가 아주 달랐다. 아름답고 신기해서 관광객들이 기념으로 구입하기에 꼭인, 무난한 여느 엽서들과 달리 얼핏 보아도 좀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을 주는 사진이었다. 우선 샀다.  이런 생소한 느낌의 정체가 뭘까?

처음에 사진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라오스의 어느 궁전에서 왕족이나 귀족들의 기념사진 찍는 것을 지휘하는 프랑스인이 (사진사나 조수의 실수 등으로) 의도치 않게 사진에 등장한 것처럼 보였다. 배경의 석조 건물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루앙파방에서 볼 수 있는 식민지 시기 라오스 왕궁과 다르지 않아보였고 뒤로 거대한 코끼리의 두개골들과 라오스 전통 악기 징 등이 증명서처럼 기둥에 걸려있어서였다.

 '마르세유에서의 식민지 전시회, 오른쪽은 라큐즈씨'
'마르세유에서의 식민지 전시회, 오른쪽은 라큐즈씨' ⓒ 라오스엽서사

일단 사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내가 알 수 있는 것들은 대략 읽었다고 생각하고 출처를 알아보기 위해 뒷면을 돌려보았다. 프랑스어로 '라오스 엽서(CARTERIE DU LAOS)' 사社의 연락처들과 라큐즈(RAQUEZ)라는 사람의 수집품임이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엽서 하단의 사진 설명, 'Exposition coloniale de Marseille ā droite Mr RAQUEZ'였다. 어렵게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 해석해 보니, '마르세유에서의 식민지 전시회, 오른쪽은 라큐즈씨'.

가슴이 철렁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에서 박람회(지금으로 치면 엑스포다)가 들불처럼 유행하던 때, 마르세유에서 열린 프랑스 식민지 전시회에 라오스 풍물들이 심지어는 라오스 사람들이 전시되었던 거다! 마치 동물원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을 전시하고, 샴쌍둥이를 만져보게 하고, 난장이에게 곡예를 시키고 돈을 받았던 그런 박람회들 말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뒤이어 스며든 상상 또는 내 새삼스런 깨달음의 내용이었다. 이 사진의 진짜 목적은 선의로라도 라오스 사람들을 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라오스가 아니라 라큐즈(RAQUEZ)를 그가 하는 라오스 식민지 경영사업의 성과를 기념하는 것이라는 거.

식민지 라오스를 기념하다?

그래서 당연히 라큐즈(RAQUEZ)사진의 배경이, 라큐즈(RAQUEZ)가 하는 일의 증명에 불과한 처지의 라오스 사람들 표정이 또한 나를 아주 불편하게 했다. 지금의 내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라오스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 이 사진 속 라오스 사람들은, 그 옛날 비단 옷에 턱시도, 군인 제복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풍겨 나와야할 여유로움이나 당당함은 찾아볼 길 없이 오직 경직되고 부자연스런 표정으로만 나를 응시하고 있다.

파비양(왼쪽 어깨에서 허리까지 두르는 장식 천. 격식을 갖추고 전통 양식으로 성장을 마무리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을 두른 두 명의 여자는 허리에 손을 짚고 섰지만 우아하기보다 한 명은 뭔가 주저하는 듯, 다른 한 명은 무엇에 버텨선 듯 호전적으로까지 보인다. 반면 라큐즈(RAQUEZ)로 추정되는 사람은 같이 허리에 손을 짚고 섰는데 라오스 사람들 모두를 흐뭇하게 내려다보면서 이들을 지휘 감독하고 있는 자연스런 자세다. 다행히(?) 나를 바라보지 않고 비스듬히 몸을 튼 스님 한 분이 그나마 여느 라오스 사람과 같은 표정이다. 하지만 그 스님마저 맨발이어야 할 율법 대신에 서양식 구두임이 분명한 신발을 신고 있어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라오스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에 있다. 면적은 한반도 크기의 1.1배. 지형도 비슷해 주로 호치민 루트가 있는 북동쪽이 높고 메콩이 있는 남서쪽이 낮다. 물론 남부의 한가운데 커피로 유명한 빡썽 지역은 1000미터에 이르는 넓은 고원이기도 하다. 2005년 센서스를 통해 현재 추정되는 인구는 대략 700만 명 정도. 2007년 라오스정부 공식 통계에 의하면 47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크게 분류해도 전체 인구의 50%가 되지 않는 라오족이 라오스의 지배적인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것이 민족 구분의 기본일 터인데 라오족의 종교인 불교가 라오스의 95%이상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내가 확실히 불교도가 아닌 것을 알고 있는 몽Hmong 족의 여러 분파만을 합쳐도 20% 가까이 된다.) 또 이런 외부의 기준에 의한 분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매긴 소득 기준으로 라오스는 세계 최저개발국가군(LLDGs)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오스 사람들은 나처럼 사업으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생활 습관으로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내가 개괄적으로 이해한 라오스의 근대 역사는, 1940년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후기식민지지배를 꾀하는 프랑스, 그리고 이를 계승한 미국과의 베트남의 전쟁에 맞물려 또 새로이 독립전쟁을 치르고 1975년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으로 수립된 나라이다. 우리만큼이나 숨 가쁘게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전근대사회에서 근대로, 사회주의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의 변화를 맞고 또 그 변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자본주의 이웃 타이는 물론 정치적 맹방 베트남에 비해서도 그 정도는 느리고 미미하다. 상징적으로 개발원조 규모만 보더라도 캄보디아에, 심지어 미얀마(버마)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오늘의 라오스를 보는 나의 시각은?

 라오스 란쌍대로에 위치한 아시아개발은행(ADB) 사무소. 아시아개발은행은 세계은행과 더불어 아시아 개발원조의 2대 물주다.
라오스 란쌍대로에 위치한 아시아개발은행(ADB) 사무소. 아시아개발은행은 세계은행과 더불어 아시아 개발원조의 2대 물주다. ⓒ 이영란

 세계은행이 개발 투자한 '남응음(댐)2 수력발전 회사' 건물 모습. 아시아개발은행(ADB)사무소와 함께 라오스 란쌍대로에 위치해 있다.
세계은행이 개발 투자한 '남응음(댐)2 수력발전 회사' 건물 모습. 아시아개발은행(ADB)사무소와 함께 라오스 란쌍대로에 위치해 있다. ⓒ 이영란

내가 하는 일을 코이카(KOICA)에서는 '민간단체(NGO)의 개발협력 사업'이라고 부른다. 개발원조의 일부다. 우리는 연구소를 NGO가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라고 부르고 우리가 하는 일을 국제연대라고 한다. 용어의 싸움, 시각의 싸움인 것이다. 사실 이건 한국에서 하는 머릿속 싸움이고 라오스에선 현장에선 그럴 틈이 없다. 그런데 이 이상한 라오스 사진 한 장이 나의 싸움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월요일 등교해서 금요일 집에 가야하는 원거리 통학생들을 위해 기숙사가 있는 산골학교에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태양광발전기를 지원한다.' 이 일은 일면, 현재 문제가 많은 개발원조 방식의 유력한 대안 중의 하나로 보인다. 재생에너지원이니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면서 지속가능하고,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근대자본주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게 대부분의 소득증대 개발사업이 이러한 폐해를 낳는다) 문화적 충격을 주지 않는다(특히 대중매체, 텔레비전에 접근에 대한 개발 분야, 과도한 직접 문화교류 사업이 이런 우려를 낳는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는 여전히 많다. 왜 태양광발전기인가? 초소수력발전기가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기술적 질문이 아니다. 그들이 이미 사용해 오고 있는, 더 익숙한, 어둠을 밝히는 기술(예를 들면, 그들이 우리가 여러 가지 천연기름으로 등잔불을 켰던 것처럼 '막냐오'라는 열매로 바이오디젤을 만들 수 있다)을 왜 선택하지 않았냐는 거다. 또 있다. 왜 학교 아니면 집단 단위여야 하는가? 저개발 지역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들에게 자연스런 방식으로 산다고 해서 그게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 중심의 생활방식은 아닐 수 있다.

싸이냐부리의 산속엔 농사를 지으며 정주하는 민족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고, 농사라 해도 가족단위로 이동이 필수적인 소규모 화전을 일구는 소수민족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학교는 지배적인 민족, 근대화된 라오족의 교육행정 단위이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또 발생한다. 당연히 학교는 라오족의 언어 라오스어를 가르친다. 그래서 교사도 대부분 라오족이다. 문자가 있어도 전래되기 어렵기 마련인 소수민족 언어는 이렇게 해서 사라져간다. 우리가 그런 학교의 역할을 지원하는 것은 아닌가?

나의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요즘 개발원조 분야의 새로운 금언이 되고 있는, '수원국과 공여국이 파트너가 되는 개발원조', '수원국 개발과 발전을 위한 원조'에 대해 낱말 하나하나를 뜯어서 본다. 수원국이라는 불리는 진짜 주체는 누구인가? 사실 '나', 원조 공여국 아닌가? 파트너가 되자고? 책임을 나누자, 아니 '너'가 책임지라는 수작은 아닌가? 개발, 발전은 무엇인가? 수원국 사람들이 원하는 개발인가? 개발이란 것이 누구의 의미인가? 꼬리의 꼬리를 문다. 라오스는 무엇인가, 나는 저 '라오스 엽서' 속의 라큐즈(RAQUEZ)와 어떻게 다른가, 달라야 하는가?

☞[캠페인] 라오스 산간학교에 햇빛 발전소를 짓자
☞[착한여행] 지속가능한 여행지 만들기 프로젝트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연구원이며, <싸바이디 라오스> 저자입니다.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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