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부터 3년 동안 10개 정도의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했고 모두 거절되었습니다. 그동안 원고 전체를 바꾼 것이 5번이었으니, 이번에 낸 <책 놀이 책>은 버전 6.0인 셈이지요.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책을 쓰고 싶은 분이 많은데, 실제로 책을 내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전 책을 갓 낸 새내기 작가이지만, 제 경험을 공유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경험한 9번의 거절과 3년의 습작이라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기자말2011년부터 나의 '책 쓰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제목은 '북 소믈리에'였습니다. 모 출판사에 투고했던 파일을 보니 2011-06-04라고 돼 있더군요. 그 당시 페이스북에서 소셜북스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분들에게 독서 고민 등을 듣고 책을 짝지어주는 일명 '북 소믈리에'를 했었는데, 나의 독서 방법론과 합쳐서 원고를 구성했습니다. 야심찬 첫 번째 원고는 당연히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원고를 읽어본 담당자가 세심하게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아래는 그에 대한 출판사의 답변 일부입니다.
시도 자체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한데, 책의 내용이 그 재미를 오롯이 담아내지는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샘플로 보여주신 사람들이나 그들에게 선정해준 책 역시 특정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해도 보편성과 객관성을 띠어야 하는데 비슷한 책들을 추천해주셔서 '누구에게나 좋은 책'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 같고요. 에세이 형식이 아닌 방법론을 가르쳐주고 있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읽는 힘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고요.(책을 고르고 읽는 방법을 책을 통해서 배우는 건 어떤 면에서는 좀 모순이기도 하죠)(2011-06-28)
저는 출판사의 거절 의견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만약 첫 번째 출판사에서 원고가 통과돼 책이 나왔다면 오히려 오만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의 거절에 익숙해져야 하며, 때로는 거절 의견조차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거절 의견을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로 받아들이면 되고, 거절의견조차 없다면 '뭔가 전혀 다른 변화가 필요해'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두 번째 원고는 100가지 독서론을 정리한 '100개의 독서'(2011-07-25)였습니다. 그 여름에 도서관에서 한달 내내 원고를 썼죠. 아는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냈는데 처음 받았던 거절 의견과 벗어나지 않았어요. (의견생략)
그때부터 어떻게 콘셉트를 잡아가야 할지 고심했습니다. 반복된 거절에 의기소침해졌고 그만 둘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절을 반복해서 당하다 보니 '거절의 원칙'이 생겼습니다. "거절 당한 원고는 90% 이상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예 새로 쓰는 게 좋습니다. 만약 거절 원고에서 보완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또다시 거절당할 확률이 그만큼 커집니다. 이명박 정권이 끝나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는 것으로 비유하면 적절할까요?
주무기가 생겼지만, 또 거절2011년 12월부터는 '독서의 기술'이라는 원고로 바꾸면서 인천 서구도서관에서 강의하면서 개발했던 '메모의 기술'을 반영했습니다. 18년 동안 독서 연구를 하면서 개발한 '메모 리딩'이라는 방식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주무기가 생긴 거죠. 그리고 다시 출판사로부터 거절 의견을 받았습니다.
원고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평하자면, 아직 전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이 정제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선 1부, 2부, 3부가 각각 따로 논다는 느낌이고 2부의 많은 현란한 독서 기술에 대한 이야기들은 책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목을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공부법 책이 있지만, 공부에 대해 자각을 가지고 스스로 작은 원칙을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을 뛰어넘는 방법은 없듯이 독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2011-12-19)그 무렵 나의 책을 내겠다는 도전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 2년차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출판사의 거절 의견을 받아 먹고 있었죠.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나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 부족했을까를 고통스럽게 고민하다가 한동안 팽개쳐 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골몰하는 시간이 반복되었습니다. 한 가지 힌트는 얻었습니다. 바로 '메모'의 방식이죠. 이것이 <책 놀이 책>의 심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결정적인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나는 '말하는 책'과 결별하고 '듣는 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말하려고 이 세상에 난 게 아니라 '들으려고' 난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고 그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경청하기'라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밑받침하는 사건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생겼습니다. 2011년 인천 서구도서관에서 강의할 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아이의 독서 교육 문제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관계, 아이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고민을 들었죠. 나는 직관적으로 사람들의 감정이 가장 집중된 분야가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나다웠고, 상대방도 편안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2012년 여름 노원의 엄마들과 6주간 '책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아예 강의 방식을 바꿨습니다. 강의 취지만 준비하고 100여쪽이 넘는 강의안을 버린 것이죠. 심지어 나의 이야기도 줄였습니다. 나는 '말의 점유율'이라고 표현하는데, "엄마들의 발언이 50%를 넘을 것"이라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들의 말을 녹음해서 반복해서 들으면서 가정의 고민들을 해결할 놀이들을 개발했죠. 나의 '말'이 아니라, 나의 '귀'를 통해서 가족들을 감정이 흐를 수 있었고, 관계가 친근해지고 독서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엄마들의 표정이 점점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그 즈음 전혀 다른 하나의 원고가 완성되었어요. 하지만 제목을 붙일 수 없었습니다.
오래 기다린 출판사의 수락 메일,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출판사를 만난 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평소에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출판사였는데, 제가 프로모션을 돕고 있었죠. 우연히 점심을 먹다가 원고 이야기를 하자 출판사 대표님이 급관심을 보이면서 원고를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원고와 기획안을 보냈는데 출판사로부터 '출판 수락 메일'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내 글이 세상을 만날 기회를 얻은 거죠.
그동안 꾸준히 노력하시고 실천하신 결과를 담은 책이라서 믿음이 가고 더 좋습니다. 저희가 여성과 어린이, 가족의 치유와 성장에 관심이 많아서 대표님의 책을 내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와 함께 출판하시죠! (2012-08-28)정확히 10번째 출판사였고, 그 출판사의 이름은 이야기나무였습니다. 위의 수락 메일을 잘 읽어 보면 단지 '글'만으로 수락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보여주었던 노력과 지향점을 출판사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야기나무 출판사는 페이스북에서 소셜북스 페이지를 만들어 독자들과 4년 동안 댓글 독서 토론을 한 점, 네이버 육아 카페에서 2개월간 독서와 첨삭 프로그램을 진행한 점, 노원골에서 엄마들과 6주 동안 책놀이를 한 점을 높이 샀습니다.
그런데 출판사를 통과한 이후 또다른 난관에 부딪힙니다. 내 글이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허물을 벗어야 했어요. 눈물을 머금고 다섯 번째 원고를 모두 버렸습니다. 나는 다시 백지 앞에 섰죠. 그리고 여섯 번째 원고를 썼습니다.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프로토타입을 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에세이로는 부족했고, 책놀이 매뉴얼은 밋밋했습니다. 그 정도는 세상에 아주 흔했죠. 나는 그 즈음 아동문학에 심취했습니다. 프로토타입 쓰기를 잠시 멈추고 그림책과 아동문학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추억했습니다.
내가 꿈꾸던 게 무엇이었을까? 나의 자양분은 무엇일까? 나는 어디로부터 에너지를 얻을까? 답은 '동화'였습니다. 창작욕구가 왕성하게 일어나더니 동화 한편을 쓰게 되었어요. 그것을 들고 평소에 존경하던 동화작가 선생님을 찾아갔죠. 선생님은 구성과 소재가 독특하다고 인정하시면서 독특한 소재의 동화들이 안고 있는 리얼리티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며칠 고심한 끝에 두 번째 동화를 썼습니다. 그것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죠.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책 놀이 책>에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어요. 출판사 편집부는 '동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책놀이를 하면서 들었던 부모님들의 사례를 모아서 동화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써내려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책 놀이 책> 모양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저는 '자랑'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두렵지만, 책을 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소중한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해피엔딩이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고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야흐로 작가의 홍수 시대라고 합니다. '책 쓰는 방법'에 대한 강의와 책이 열풍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작가가 많다는 것은 세상이 다양해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로 들리지만, '책 쓰는 방법' 열풍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책을 쓰는 작업 중에서 '책 쓰는 방법'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구구절절하게 책을 쓰고 완성한 과정을 기록한 까닭은 '책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책을 쓰는 의미가 정리가 되면, 그 다음에 비로소 '책 쓰는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결과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책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열정과 시간을 바쳐서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운명은 없지 않겠습니까?
책을 쓰는 모든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라는 고통스러운 질문에 직면합니다. 여기에 제대로 답변할 수 있어야 책을 내는 것도,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가 한 대답은 '가족'과 '어린이'입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 앞에 어떤 것을 내놓으시겠습니까?